"수어 통역 없는 계엄 발표" 청각장애인 알 권리 어디로

시·청각장애인, 12·3 내란 당시 정보 사각지대 갇혀
"수어 통역도, 재난문자도 없었다" 소통 부재에 '혼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인권위 진정 예정…정보 접근성 강화해야"

임예봉씨가 12·3 내란사태 당시 상황을 수어로 설명하고 있다. 김혜민 기자

12·3 내란사태 당시 시·청각장애인들은 수어 통역과 해설 방송 등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혼란이 더욱 컸다는 지적이다. 재난이나 전시 상황이 발생한 경우라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정보 접근성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각 장애가 있는 임예봉(52·남)씨는 지난 3일 12·3 내란사태를 TV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자막으로 표시된 단어는 낯설고 어려워 결국 다음 날 날이 밝아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다고 전했다.
 
당시 TV를 보고 있었다는 임씨는 "속보가 나온 후 화면이 바뀌면서 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이 나왔다. '비상계엄'과 '포고령'과 같은 생소한 단어가 자막으로 표시됐다"면서 "군인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서도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며 그때의 당혹스러움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면서 "유튜브와 인터넷 기사도 찾아봤지만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워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아침 아내에게 물어봤다. 글을 읽고 쓰는데 능한 아내는 옛날에 광주에서 일어난 일과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해 줬고 그제서야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뉴스 화면에 수어 통역이 없어 어떤 상황인지 제때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며 긴급 상황에서의 수어 통역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다음 날까지도 주변 농인(청각장애인)들 가운데 소식을 아예 모르는 분이 많았다. 농인은 비장애인과 소통 체계가 달라 수어 통역 없이 글자나 영상만으로는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특히 나이가 많은 농인들일수록 글을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다. 계엄 상황이 더 길어졌다면 더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하는 김예지 의원. 연합뉴스
이처럼 청각장애인 사이에서 계엄 선포 상황을 전혀 듣지 못하거나 들었음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등 고립감을 겪었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 8일 국민의힘 소속 김예지 의원도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주변에는 장애인분들도 많이 있다"며 "청각장애인들은 계엄을 선포하는 것조차 전혀 알 수가 없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농인인 강우석(44·남)씨 역시 "지인 연락으로 계엄 선포 소식을 전달받았지만 누가 뭘 어떻게 하고 있다는 건지 상세한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농인들이 각자 알아보고 몰랐던 부분을 서로 알려줬다. 계속 뉴스를 보면서 차츰 상황을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홍연숙 수영구 수화통역센터장도 "TV로 소식을 처음 접하고 '군인들이 왜 갑자기 국회에 갔지' 의문을 가졌다"며 "자막 송신기로 뉴스 내용을 파악하는데 생소한 단어가 많아 수화 통역이 있었으면 했다. 채널 1곳에서만 뒤늦게 나온 걸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도 계엄 소식을 뒤늦게 접한 경우가 많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지인(60·여)씨는 "늦은 시간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지 않느냐. 시각장애인들은 주로 TV 대신 라디오나 유튜브를 사용하기 때문에 소식 자체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며 "주변에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이 밤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계엄 선포 당시 통화를 하고 있던 조카가 소식을 알려줘 우연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TV를 켜두고 있었지만 앵커야 시민들이 국회 앞에 맞서고 있다는데 어떻게 맞선다는 건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며 "아침이 돼서야 소식을 접했다면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제대로 몰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측은 재난이나 전쟁 등 긴급한 상황에서 정보 접근성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해당 사안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해 장애인의 알 권리를 보장하도록 촉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계엄이 처음인 상황에서 뉴스 화면 해설이나 수어 통역이 없어 정보 파악이 어려웠던 분들이 많다. 재난문자도 발송되지 않았다. 계엄이 장기화됐다면 더 큰 혼란과 불편을 초래했을 것"이라며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 실질적인 정보 전달이 이뤄지도록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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