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죄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며 퇴진 요구를 일축했다. 비상계엄 조치에 대해선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라고 주장하고, 야당을 향해선 "내란죄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은 "극단적 망상의 표출이자 대국민 선전포고"라며 즉각적인 탄핵과 체포·구속을 촉구했다.
28분 동안 '내란' 합리화한 尹…퇴진 요구도 '일축'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약 28분 동안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내란 사태 이후 칩거 상태를 이어가던 윤 대통령은 이날 담화 녹화를 위해 닷새만에 대통령실에 출근했다. 윤 대통령을 태운 차량은 이날 오전 8시 21분쯤 청사 정문 앞에 도착했으며, 30여분 뒤인 오전 8시 57분쯤 다시 청사를 빠져나갔다.
이후 담화 영상은 오전 9시 43분부터 오전 10시 11분까지 방영됐다. 담화문은 각 언론사에 제공됐다.
짙은 남색 정장에 빨간색 넥타이를 멘 윤 대통령은 내내 비장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담화를 이어갔다.
윤 대통령은 "지금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며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벌이고 있는 세력이 누구인가"라고 반문했다.
야당의 탄핵 집회, 공직자 탄핵, 특검 발의, 셀프 방탄 입법, 예산 삭감 등을 언급하면서 '의회 독재', '폭거'로 규정했고 "사회 질서가 교란돼 행정과 사법의 정상적인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유에 대해선 선거관리위원회의 해킹 방어 취약과 야당의 검사 및 감사원장 탄핵 등을 들었다.
또 계엄의 형식을 빌려 작금의 위기 상황을 알리고자 했다며 병력 역시 소수로 투입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이 있자 즉각적인 병력 철수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병력 투입도 국회를 해산시키거나 기능을 마비시려는 게 아니었다며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면 평일이 아닌 주말을 기해 계엄을 발동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국회 관계자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도록 했다"라고 주장했다.
비상계엄 준비에 대해선 오로지 국방장관하고만 논의했고 대통령실과 내각 일부 인사에게는 선포 직전 국무회의에서 알렸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면서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살리려는 비상조치를 내란 행위로 보는 것은 우리 헌법과 법체계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여기저기서 광란의 칼춤을 추는 사람들은 나라가 이 상태에 오기까지 어디서 도대체 무얼 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란 사태 이후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이번이 네 번째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4일 새벽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어 7일 담화에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사과하며 거취 문제를 포함한 권한을 당에 일임하겠다는 등 '2선 후퇴' 의사를 밝혔다.
與 '탄핵 찬성' 충돌, 野 "대국민 선전포고"…관련자 증언과도 '배치' 논란
담화 이후 국민의힘 내부는 정면 충돌했다. 한동훈 대표는 의원총회에 참석해 "사실상 내란을 자백했다"며 '탄핵 찬성' 당론 채택을 제안했다. 이에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그만하고 내려오라" "사퇴하라" 등 고성이 터져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은 거세게 비판하며 즉각적인 탄핵과 체포·구속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수석최고위원은 기자간담회에서 "오전 담화로 윤석열의 정신적 실체가 재확인됐다"며 "이미 탄핵을 염두에 두고 헌법재판소 변론 요지를 미리 낭독해 극우의 소요를 선동한 것이다. 나아가 관련자들에 증거 인멸을 공개 지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상태가 매우 심각한 만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라며 "이에 따라 민주당은 탄핵 가결 때까지 엄중하고 비상한 각오로 준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아직도 미쳤다. 미치광이에게 대통령직 군 통수권을 1초라도 맡길 수 없다"며 "공수처와 경찰은 내란 수괴 윤석열을 당장 체포하라"고 적었다.
김태년 의원은 "미치광이의 내란 자백으로, 내란 수괴가 대통령 자격으로 국민 앞에 나타나는 것 자체가 범죄이며 2차 가해"라며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 등은 당장 윤석열을 체포하고 구속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담화에서 밝힌 국회와 관련한 주장은 이번 내란 사태 관련 인물들의 증언과는 배치돼 논란이 예상된다.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대통령께서 비화폰으로 제게 직접 전화했다"며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정치인 체포'와 관련한 언급이나 해명도 하지 않았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시 전화 통화에서 "싹 다 정리하라"고 지시했고, 여인형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체포 대상을 파악해보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고위 정치인이 포함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지시를 따르지 않았단 이유로 경질됐다고 폭로했다.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은 국회에서 "구금 시설 및 체포와 관련된 지시는 제가 여인형 사령관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며 "처음 지시받기로는 B1 벙커 안에 구금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지시받았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14명으로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정치인 체포'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국회 마비 지시를 적극 부인하는 배경에는 향후 법적 공방이 자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란죄 핵심 쟁점은 '국헌 문란의 목적이 있었는지', '국가기관인 국회를 강압에 의해 전복시키거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했는지' 등으로 예상된다. 정치인을 체포하거나 끌어내려 했다면 혐의를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가 되는 셈이다.
윤 대통령이 최근 '자진 하야' 대신 차라리 '탄핵'을 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담화를 통해 현실이 됐다.
윤 대통령은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는 발언은 향후 법적 다툼을 통한 '반격'과 지지층 결집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행보는 재차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7일 담화에서 "임기 문제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을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힌 것을 뒤집고 거취의 주도권을 쥐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내란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와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정면 돌파 방침은 여론에 전면 역행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