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 에이스이자 주장 박지원(28·서울시청)이 안방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를 앞두고 특유의 입담을 선보였다. 석사 출신답게 깊은 의미가 담긴 출사표를 던졌다.
박지원은 11일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2024/25 KB금융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 투어 4차 대회' 미디어 데이에서 "서울에서는 항상 기억이 좋았다"면서 "어려운 시기 때는 좋은 터닝 포인트 만들어줬다"고 밝혔다. 이어 "기분 좋은 마음으로 경기장에 왔다"고 덧붙였다.
목동아이스링크는 지난해 3월 ISU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가 열린 장소다. 박지원은 1500m와 1000m 2관왕에 오르며 쇼트트랙 황제로 우뚝 섰다. 2022-23시즌 박지원은 ISU 월드컵에서 금메달만 14개를 따내며 시즌 종합 우승자에게 주는 초대 크리스털 글로브를 수상했다. 세계선수권은 최고 시즌의 화룡점정 격이었다.
그러면서 박지원은 "많은 분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우리 경기가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지만 '12.3 내란 사태'로 어지러운 국내 상황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어려운 시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묻자 박지원은 "구체적으로 설명드리지 않더라도 같은 생각을 느끼실 거라 본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어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민감한 부분을 피해가면서도 힘든 국민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스포츠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답변이었다.
박지원 본인 스스로도 힘을 내야 하는 대회다. 박지원은 2022-23시즌에 이어 지난 시즌에도 남자부 세계 랭킹 1위로 크리스털 글로브를 연속 수상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월드 투어 체제로 바뀐 올 시즌에는 3차 대회까지 1500m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로 앞선 두 시즌보다 페이스가 떨어진다. 시즌 종합 랭킹에서도 캐나다의 윌리엄 단지누에 이어 2위다.
이에 대해 박지원은 "첫 수상 이후에 다른 선수들이 나에 대해 굉장히 많이 공부하고 분석했다"면서 "두 번째 수상 이후 세 번째 시즌엔 더 많이 공부한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어 "나도 변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모든 외국 선수들이 나를 공부하고 들어온 경기에서 이기긴 어려웠다"고 돌아봤다.
집중 견제를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박지원은 "내겐 성장의 기회"라면서 "이런 부분을 이겨낸다면 나는 아마 한 단계가 아니라 두세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1000m에서 굉장히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올 시즌에는 결승 진출도 한번뿐이었고, 메달도 따지 못했다"면서 "500m와 1500m를 합친 듯한 복합적인 종목이라 경쟁이 심했는데 이번 대회 1000m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앞으로 충분히 좋은 흐름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주장답게 대표팀 전체도 아우르는 듬직함을 보였다. 박지원은 "외국 선수들이 정말 많이 성장한 것 같아 보는 분들은 더 많은 재미를 느끼실 것"이라면서 "우리나라의 금메달 수는 줄었지만 경기력이 떨어진 게 아니라 경쟁이 심해진 것"이라고 밝혔다.
대표팀 윤재명 감독도 "우리 선수들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면서 "남녀 대표팀에서 각각 (금)메달 2개를 따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을 앞둔 만큼 "중국 등 상대 전력 분석도 많이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대회는 오는 13일 예선을 거쳐 14, 15일까지 열전이 펼쳐진다. 하얼빈아시안게임을 앞둔 마지막 국제 대회라 대표팀으로서는 전력을 점검할 최종 모의고사다. 과연 박지원의 말처럼 세계 최강을 다투는 한국 쇼트트랙이 국민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