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사태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국정 운영 전면에 나섰지만, 실질적인 각종 권한은 윤석열 대통령이 쥐고 있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한 총리와 한 대표가 결정을 해도 '막후 결재'는 윤 대통령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당에 일임', '2선 후퇴' 등은 선언적 의미에만 그친다는 지적이다.
이번 내란 사태에 무거운 책임이 있는 한 총리가 모호한 국정 운영을 지속하는 건 위헌적이라는 비판도 지속되고 있다.
허울 뿐인 '한-한 체제'…막강 권한 尹 그대로
한 총리는 지난 8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의 뜻을 최우선에 두고 여당과 함께 지혜를 모아 모든 국가 기능을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 역시 담화를 통해 "대통령의 퇴진 전까지 국무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고 했다.12·3 내란 사태 이후 당에 권한을 일임하고 2선으로 물러난 윤 대통령 대신 이른바 '한-한 체제'가 국정 운영 전면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은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다. 헌법상 대통령은 국군통수권, 공무원 임면권, 조약체결 및 외교사절 등 외교권한, 선전포고·강화, 계엄선포,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 등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다.
반면 총리는 헌법상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장관 임명을 제청하거나 해임을 건의할 권한을 갖지만 최종 재가는 대통령이 한다. 외교·국방 등 다른 주요 사안도 마찬가지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며 인사권을 행사했다. 국방부는 9일 브리핑에서 '지금 국군 통수권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의에 "대통령께 있다"고 밝혔다.
'한-한 체제'를 중심으로 한 내치가 위헌적이며 허울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애초에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 권한을 일체 위임, 재위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헌법적으론 말이 안 되는, 그야말로 코미디"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 스스로 권한 행사를 안 하겠다고 했으니 이를 '사고' 상태로 해석해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할 수도 있다"며 "문제는 윤 대통령은 전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면직안을 재가한 것처럼, 권한을 여전히 사용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위헌적'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한 총리는 지난 8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려다가 '비공개 국무위원 간담회'로 격을 낮춰 개최했다.
간담회에선 국무위원들에게 "국정 운영은 헌법 테두리 내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의 국정 관여 배제와 '조기 퇴진'을 주장해온 한 대표와 결을 달리한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총리의 행동은 철저하게 헌법과 법률에 따라 하고 있으며 국무위원들에게도 같은 뜻을 당부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내란 사태에 주요 책임을 진 한 총리가 모호한 국정 운영을 지속하는 것을 두고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한 총리를 내란죄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고 내란 특검 수사 대상에 포함하는 한편, 탄핵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피의자 尹, 출금 조치까지…내란특검법·김 여사 특검법 거부권 '딜레마'
여전히 권한을 쥔 윤 대통령은 '칩거 상태'에 들어갔다. 내란 사태 나흘 만인 지난 7일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게 공개석상에서 마지막 모습이었다.
통상 월요일 오전에 윤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는 열리지 않았고, 오찬을 겸한 한 총리와의 주례회동도 일찌감치 취소됐다. 다만 정진석 비서실장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현안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에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됐고, 공수처 신청에 의해 출국금지 조치를 받는 등 전방위 수사 압박도 받고 있다.
대통령실은 혹시 모를 강제수사에 대비하는 분위기다. 일부 참모와 직원들은 보안 문제로 카카오톡 대신 주로 사용했던 텔레그램을 탈퇴하거나, 새로 가입하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내란특검법과 네 번째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발의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이 여전히 살아 있지만, 이를 행사한다면 '권한 일임'이 역시 허구였다는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입장에선 거부권 행사 '딜레마' 속에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란특검법과 김 여사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서 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수사가 진행되면서 혐의 사실이 구체화할수록 국민의힘 내부는 분열되고, 탄핵 반대 기조는 계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