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여당의 비토로 1차 무산됐지만, 여론이 '탄핵 찬성'으로 기울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되면서 현 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내세워온 의료개혁도 추진 동력을 잃게 된 모양새다.
특히 '이탈 전공의 처단' 관련 포고령의 여파로 의료단체가 모두 탈퇴를 선언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사실상 파행 수순을 밟게 됐다. 의료계는 애초에 '의대 2천 명 증원'을 추진한 주체가 윤 대통령인 만큼 이제라도 사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공의 처단' 포고령에 완전히 돌아선 의료계
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의 의료개혁 세부정책을 논의하는 사회적 협의체인 의개특위에 참여해온 의사 관련 단체는 전부 참여를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 5일 먼저 특위 참여를 거부한 대한병원협회(병협)에 이어 대한중소병원협회, 국립대학병원협회도 최근 특위 불참을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단체가 특위 탈퇴를 결심한 이유는 명확하다. 지난 3일 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에 전공의를 콕 집어 명시한 조항 때문이다. 해당 포고령(제1호)에는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문장이 담겨 의료계의 공분을 샀다.
특정 직역이 계엄령에 언급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인 데다, 현재 대부분의 전공의는 사직절차가 완료됐다는 점에서 문장에 전제된 사실관계조차 틀렸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또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을 이르는 '처단(處斷)'이란 단어 사용을 두고도 의사들에 대한 대통령의 '사적 감정'이 반영됐다는 반발이 거세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교수 A씨는 "내부에서는 사직 후 다른 병원에 취업해 일하고 있는 전공의를 다시 불러 일하게 할 경우, 오히려 '채용 비리'가 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며 "또 계엄 포고령은 보통 어기면 처벌이 (응당) 뒤따르게 돼있는데, '위반 시 처단'이란 말이 들어간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 교수 B씨도 "상상 이상의 무도함"이라며 "(관련)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병협의 입장문에는 이 같은 의료계 분위기가 잘 담겨있다. 병협은 "이번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이 사실을 왜곡했을 뿐 아니라 전공의를 마치 반(反)국가 세력으로 몰아 '처단'하겠다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강력 항의한다"며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존중받고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해질 때까지 의개특위 참여를 중단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에 유감을 표하며 "지속적으로 의료계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개혁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의료개혁의 최대 당사자이자 파트너인 의사단체를 다시 논의의 장에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당초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발표할 때부터 정책 구체화를 위한 싱크탱크로 구상했던 의개특위가 '대통령 직속' 위원회란 한계 때문이다.
尹탄핵 '시간문제'…'대통령 직속' 위원회 힘 못 받을 듯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탄핵안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힘 덕에 탄핵 고비를 넘겼지만, 야당이 '가결 시까지 반복 발의'를 천명한 만큼 일시적 모면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전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약속하며, 윤 대통령이 더 이상 정상적으로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못 박은 것도 고려 대상이다. 의료계에서는 명분 없는 계엄으로 내란을 주도한 윤 대통령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하야 또는 탄핵'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의개특위는 본래 이달 안에 비급여·실손보험 개선안 등이 담긴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논의테이블이 와해된 상황에서 연내 공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련 의견수렴을 위해 열기로 한 공청회 일정도 미정이다.
그간 특위 위원으로 직접 참여하진 않아도, 정책안 자문 등으로 힘을 보탰던 의대 교수들도 정부에 등을 돌린 상태다. 일부 이견으로 인한 '냉전'이 아니라, 아예 현 정권 퇴진 운동에 가세하겠다는 방침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지난 7일 성명서를 통해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위해 국민과 함께 투쟁할 것"이라며 "내란 관여자의 지시로 행해지는 정부의 모든 정책에 대한 참여와 자문은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교수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도 전날 시국선언대회에서 "(정부는) 계엄령 포고령에서 파업도 하지 않은 사직 전공의를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전공의를 바라본 시선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사직하고 병원을 떠날 때부터 사실상의 계엄치(治)가 이어져 왔다"고 주장했다.
의대 교수들은 지금도, 윤 대통령이 밀어붙인 의대 증원이 전면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해 휴학계가 승인된 기존 학생들에 더해 예과 1학년만 7500명에 이르는 의대생을 온전히 교육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취지다. 이러한 상황 초래에 일조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및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기도 하다.
정부가 개혁성과로 내세운 의대 증원은 의료개혁의 '첫 단추'일 뿐이란 점을 감안하면 향후 산적한 후속정책과 과제가 힘을 받기는 더 난망해졌다.
"대학들 정원조정 나서야…여야 합의 시 협의체 재가동 가능성"
다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탄핵 추진과 별개로 당정이 최대한 빨리 의대정원 조정안을 내놔야 한다는 조바심도 읽힌다. 이번 주 말까지는 해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재발의를 통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다고 해도 헌법재판소 판단이 남아 있고 정국 안정까지는 시일 소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전의교협 등은 금주 여당이 내놓을 윤 대통령의 퇴진로드맵을 살펴보며 여야와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또 각 대학 총장들에게 입학정원을 최종 조정할 권한이 있다고 보고 즉각 조율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물론) 여당의 책임이 크지만, 야당에도 탄핵 외 이 문제 해결에 (함께) 노력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의대정원 조정에 대한) 여야 의견이 합치된다면 여야의정 협의체는 재가동될 가능성이 있다. (그간) 용산이 최대 장벽이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