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세번째 대통령 탄핵안 폐기…왜 무산됐나

尹 탄핵안 투표 참여자 195명…5명 부족해 폐기
국민의힘 투표자 안철수·김예지·김상욱 3명
박근혜 때는 62명 이탈했지만…이번에는 '당론 부결'
尹 거취 표명한 기자회견 이후 친한계 부결 기류 선회
8년 전 탄핵 이후 보수 괴멸 트라우마…배신자론도 작동

국민의힘 의원들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17차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본회의장에서 퇴장한 가운데 안철수 의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종민 기자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사 세번째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지만 여당의 투표 불참으로 결국 폐기됐다. 대통령 탄핵안이 본회의까지 상정됐다가 통과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 대통령에 대한 반발과 우려는 여권에서도 상당했지만, 친한계는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즉시 사과,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겪은 '보수 괴멸' 트라우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거부감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 때 62명 이탈한 여당, 이번에는 당론으로 '부결'

국회는 7일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을 상정해 표결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서 단 3명만 표결, 총 투표 참여자가 195명에 그쳐 의결 정족수 200명에 다다르지 못했다. 투표에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은 안철수·김예지·김상욱이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열고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다. 그러나 탄핵안 표결 투표는 익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깜짝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있어, 투표장에 아예 불참하는 방식을 택했다.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본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통령 탄핵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의 의사를 표시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정지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탄핵에 동참하지는 않았다. 계엄 직후 탄핵 찬성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반대로 선회한 것이다.

이는 8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 야권·무소속이 172명이었고 가결을 위해서는 200명이 필요했다. 여권에서 최소 28명이 이탈해야 탄핵안이 가결되는데, 실제 표결에서 예상보다 많은 62명이 가결해 탄핵안이 통과됐다.

단순히 사안의 경중 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당시 여야 구분 없이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고, 내란죄 적용 여부 논의까지 제기되면서 탄핵 논의가 급물살을 탔기 때문이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4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504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3.6%로 나타났다. 반대는 24%, 잘 모르겠다는 2.4%였다.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에 응답률은 4.8%다

尹의 거취 표명, 8년 전 탄핵 트라우마, 이재명 거부감 등 작용했나

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친한계가 움직이지 않은 이유로 우선 윤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방송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친한계도 계엄 사태 직후에는 탄핵 찬성 기류였다가, 윤 대통령의 사과 방송 이후 부결로 크게 기운 것으로 파악됐다. 

윤 대통령이 "제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말하면서 여권이 요구해 온 '임기 단축 개헌'과 '거국 내각 구성' 등을 해법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거취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8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경험했던 트라우마도 이번 탄핵에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다. 당시 탄핵 여파로 보수 세력이 쪼그라들고 분열해 사실상 '궤멸했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당시 여파를 경험한 권성동 등 중진 의원들의 탄핵 반대 주장이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 각계에서 '적폐청산'의 명목으로 보수 인사 찍어내기가 횡행하는 등 여러 명이 고초를 겪기도 했다는 인식에서다.

신 수석대변인도 위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8년 전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남긴 건 대한민국의 극심한 분열과 혼란이었다"며 "그 상흔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깊게 남아 있다. 또다시 대통령 탄핵으로 헌정 중단의 불행을 되풀이할 수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 대표에게 '배신자론'이 씌워질까 우려했다는 시선도 있다. 한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배신자' 김무성·유승민 전 의원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발 심리도 탄핵에 거리를 두게 된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을 치를 경우 여론조사 등을 볼 때 이 대표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강성 지지층을 필두로 강력한 대여공세를 펼쳐 온 이 대표와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여당의 정치 지형이 더 불리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여권 내 '이 대표의 당선은 막아야 한다'는 인식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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