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현실의 억압과 공포를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그려낼 수 있는 장르가 '호러'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현대 여성을 향한 억압과 통제, 폭력을 '바디 호러'를 통해 대담하게 풍자했다. '서브스턴스'는 '올해 최고의 미친'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러나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는 함부로 '미쳤다'라는 말을 내뱉어선 안 되는 영화로 완성됐다.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한때 아카데미상을 받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했다.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라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 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한다. 그러나 여기엔 단 한 가지 규칙이 있다. 바로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이다.
제77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 제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미드나잇 매드니스 관객상에 빛나는 영화 '서브스턴스'(감독 코랄리 파르자)는 여성을 향한 억압과 통제, 폭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이러한 억압과 상품화가 정점에 이른 산업인 할리우드라는 쇼비즈니즈 생태계를 대담하게 풍자한다.
영화는 세포 분열 모습으로 문을 연 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이름이 새겨지는 과정과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그의 이름이 퇴색되는지 보여주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할리우드에서 여성의 아름다움, 정확히는 '젊은' 여성의 아름다움은 곧 성공을 의미한다. 잘 팔리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성은 아름다움을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고, 통제받아야 한다. 예쁘고, 마름에 가까운 날씬함을 유지해야 하고, 주름이 없어야 한다는 등 사회가 정한 미의 기준은 여성에게 폭력적일 정도로 압박을 가한다.
영화에서 대표적으로 묘사하는 억압 중 하나가 음식이다. 예를 들어, 미투 운동을 촉발한 하비 와인스타인을 떠올리게 하는 프로듀서 하비는 기름진 음식을 먹는 데 있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반면 엘리자베스는 쇼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몸을 통제해야 하고, 이를 위해 먹는 것을 강박적으로 제한한다. 후반부에 엘리자베스가 우울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의 통제에서 벗어나 기름진 음식들을 폭식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자연스럽게 노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늙는다는 것은 남녀 모두의 두려움이지만, 여성은 특히 더 가혹한 잣대에 놓인다. 하비는 주름진 얼굴로도 업계에서 승승장구하지만, 엘리자베스에게 주름진 얼굴과 탄력 잃은 몸은 퇴출의 신호다.
결국 세월이 가져온 노화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혐오에 빠진 엘리자베스는 '더 나은 나'를 만나기 위해 서브스턴스를 투약한다. 그러나 서브스턴스 사용법에서도 나오지만, 원형인 엘리자베스와 그를 통해 나온 수는 '하나'다. 엘리자베스가 존재해야 수가 존재하듯이, 현재의 엘리자베스에게 수라는 과거가 있었고, 수라는 과거가 존재했기에 현재의 엘리자베스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받은 카드에서는 그를 'were', 즉 '과거'로 대하고 수의 카드에는 'are'라는 현재로 지칭한다. 할리우드에서 나이 든 여성은 과거에서만 존재해야 할 인물이고, 젊은 여성에게만이 '현재'가 존재함을 한 단어로 축약해 보여준다.
그러나 둘이 받은 꽃과 카드, 이를 비추는 카메라의 구도는 동일하다. 과거와 현재는 동떨어질 수 없는 단어이고, 엘리자베스와 수는 '하나'다. 과거와 현재를 분절시킬 수 없다. 영화 초반, 두 개의 세포핵으로 분리되지만 결국 두 게포는 동일한 DNA를 지닌다. 이처럼 엘리자베스와 수는 분절된 존재가 아니라 동일한 존재임을 영화 내내 강조한다.
'당신은 하나다'라는 서브스턴스의 사용법이자 경고문이 어떤 의미인지 극단적인 묘사로 알려주는 것이 '몬스트로 엘리자수'라는 엘리자베스와 수의 복합체다.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거울을 보면서도 공포마저 느꼈던 두 사람, 서로를 부정하고 혐오했던 두 사람이 '몬스트로 엘리자수'가 됐을 때 오히려 괴물이 된 자신의 모습에 놀라거나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 동시에 둘이 '하나'가 됐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자신을 억압하던 미적 기준이 모두 제거된 모습에서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감추지 않은 채 대중 앞에 나선다. 대중은 괴물인 몬스트로 엘리자수를 죽여야 한다며 부정하지만, 오히려 엘리자수는 자신들의 기괴한 모습을 인정한다. 억압과 통제, 폭력에서 벗어난 두 여성은 사회가 여성에게 정해준 미적 기준을 벗어던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해방되고 '당신은 하나'라는 정체성을 되찾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할리우드 산업과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모든 사람을 향해 피와 내장을 흩뿌리며 그 책임을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피와 내장은 영화 속 객석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향한 게 아니다.
스크린을 마주한 관객들은 영화에서 쇼걸이 된 수의 얼굴부터 발끝까지 노골적으로 훑는 카메라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 사이 관객은 알게 모르게 산업의 참여자, 즉 가해자의 시선에 동화됐다. 그 질책을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든 140분에 우리는 이미 빠져 버렸다. 그렇게 감독은 '서브스턴스'를 본 모든 사람을 향해 어쩌면 우리들 역시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탄생에 있어서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책임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미친 풍자극의 결말은 산산이 조각나 겨우 얼굴의 형태만 남은 엘리자베스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속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별 안에 안착해 그의 성(姓)인 스파클(Sparkle)처럼 반짝이는 환상 속에서 녹아드는 장면이다.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여성에게 걸맞은, 비극과 희극을 동시에 지닌 아름다운 결말이다.
영화에서는 전반적으로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감독에게 남긴 흔적들이 발견되며 '서브스턴스'의 원형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바디 호러의 거장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존 카펜터 그리고 20세기 영화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향 역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데미 무어의 출연은 여러모로 뜻깊다. 할리우드 산업의 정점에 섰던 여배우가 할리우드 산업을 비판하는 영화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몸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발화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거기다 영화만큼이나 '미친' 열연은 데미 무어를 올해의 배우로 꼽는 데 있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최고의 연기였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시작부터 끝까지 대담하면서도 신랄하고, 그로테스크하게 아름다운 장면들로 관객들을 밀어붙인다.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길 주저하지 않은 감독에게 '차세대 바디 호러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는 건 절대 빠르지 않다.
141분 상영, 12월 11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