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비상계엄 사태로 국내 금융시장도 몸살을 앓고 있다. 당국은 우려보단 빠르게 진정세에 접어들었다며 시장을 달래고 있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계엄이 남긴 상처를 치료하려면 하루 빨리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장 힘들어도 '밸류업' 믿었는데…"큰 배신감"
3년 전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한 A(35)씨는 "국장(국내증시)은 하면 안된다"는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보취득이 쉬운데다 본인이 소비자이기도 해 친숙한 기업들에 관심을 갖고 함께 성장한다는 데서도 뿌듯함을 느꼈다.A씨는 "정치색과 무관하게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 정책을 진심으로 응원했다"며 "기업가치를 높이고 투명하게 드러내고 주주환원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을 공감하고 믿었지만 간밤 느닷없는 계엄 선언에 완전히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3일 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개장한 코스피시장에선 사흘간 외국인이 1조335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달 트럼프 리스크에 억눌려 2400선대로 떨어졌던 코스피가 간신히 2500선을 회복한 상태였지만, 4일 개장 직후 2400대로 밀려났고 6일엔 장중 2400선마저 붕괴되기도 했다.
외국인은 금융업권에서만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7097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A씨 같은 국내증시 투자자들이 밸류업 정책 수혜주로 최근 가장 많이 담은 업종이다.
익명을 요구한 자산운용사의 한 운용역은 "미국 대선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산타랠리를 기대하는 시점이었는데 대통령이 폭탄을 투척했다"며 "정치테마주만 날뛰는 지저분한 시장으로 또 후퇴시켰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국내증권사의 한 선임애널리스트도 "3분기 이후 미국과 한국의 경기 모멘텀이나 기업실적이 벌어지는 상황이었고 이러한 국내 펀더멘탈의 둔화로 외국인이 빠르게 이탈하는 중이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계엄사태가 터지니 불확실성이 매우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 선임애널리스트는 "내년 1월 20일 미국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새로운 정책이 가동된다"며 "지금 우리 정부가 제대로 돌아가도 잘 대응할지 걱정인데 당장 대응 주체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결론이라도 빨리 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불확실성 빠르게 정리하고 정상화 집중해야"
비상계엄은 시장과 투자자들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시민과 국회의 빠른 대응을 통한 계엄해제는 우리나라의 공고한 민주주의·시장체계에 대한 신뢰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시장에선 탄핵 국면이 장기화되지 않고 국정 난맥이 조속히 정리돼 불안을 잠재우길 갈망하고 있다.또 다른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여러 외국 기관에서 '매우 놀랐지만 신속하고 평화로운 계엄해제 과정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는 평을 들었다"며 "남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 이상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빠르게 정리해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변호사)은 "국가의 거버넌스가 흔들리는데 어떻게 기업의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냐"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같이 가는 것인 만큼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빨리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서민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금융당국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안들이 이번 사태로 지연되거나 중단돼선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지난 몇 년간 손을 못 댔던 대부업 관련 제도를 최근 금융당국에서 세팅하는 등 추운 겨울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고 있었다"며 "빠르게 안정을 찾아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곳에 실행을 위한 손길도 미쳤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