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 선포가 그나마 큰 불상사 없이 조기에 무력화된 데에는 계엄 작전의 실패와 시민들의 완강한 저항정신이 맞물려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회 추산 280여명의 계엄군은 특전사 707특임대와 1공수여단, 수방사 특임대 등 우리 군의 정예 중의 정예였다.
규모는 작지만 이들이 작심하고 제대로 작전을 펼쳤다면 국회의사당을 장악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특수부대답게 특수 기관단총과 야간투시경 등 첨단장비까지 갖추고 국회로 진입한 이들은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정작 물리력 행사에는 최대한 신중한 모습이었다.
국회 보좌진 등과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키긴 했지만 폭력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극적 대응에 가까웠다. 포고령 위반자는 계엄법에 따라 '처단'하겠다고 한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군내 사정에 정통한 김병주(예비역 육군 대장)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4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준비가 잘 안 된 상태에서 몇몇이 비밀리에 움직인 걸로 보인다"고 이들이 우왕좌왕한 배경을 짚었다.
계엄군은 국회 진입 목적이 단순히 점거를 통해 의사진행을 저지하려는 것인지 또는 핵심 인사들을 체포하려는 것인지도 불분명해 보였다.
명확한 작전 목표와 지침이 하달되지 않았고 부대 간 소통도 원활하지 않아 혼선이 빚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군사전문기자 출신인 박성진 안보22 대표는 "군 내부에서도 쿠데타나 정당성이 결여된 계엄령 선포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이를 따르는 것은 역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동원된 지휘관들도 사후에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시키는 대로 하는 척만 하는 분위기였다"고 덧붙였다.
어느 계엄군 장병이 철수하며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모습이나, 흥분한 시민을 얼싸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진정시키는 장면이 당시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런 가운데 21세기 초유의 비상계엄 선포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시민들의 결기는 사태를 조기 종식시킨 또 다른 힘이었다.
계엄 포고령 자체가 내뿜는 위압감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국회로 달려가 항거하거나 SNS 등을 통해서라도 거센 분노를 표출한 민심이 없었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중무장한 계엄군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결연하게 입법부를 지켜낸 야당 의원과 보좌진, 국회 관계자들의 역할도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혼연일치와 젊은 계엄군 장병 간의 이심전심까지 어울리며 자칫 유혈참사로 번질 수 있던 사태는 불행 중 다행한 결과로 마무리됐다.
비록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와 경제, K-국격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향후 대응 여하에 따라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