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뜨더니 손님들이 싹 빠져나갔어요. 주말 예약도 다 취소됐는데, 누가 책임지나요?"
3일 밤 11시를 조금 넘긴 시각, 경기도내 대학가 인근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는 하나둘 손님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직후였다.
스포츠 경기 상영으로 매출 좀 올려보겠다고 설치한 대형 스크린에 난데없는 계엄 선포 속보가 뜨자, 사람들이 불안에 떨며 집으로 향한 것. 사장 박모(40대·여)씨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연말 대목에 대한 희망마저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장기 불황으로 자신의 전공인 음악 과외를 병행, 밤낮 없이 뛰어다니며 가게 적자를 메워 왔다고 한다. 직원을 고용할 형편도 되지 못해, 남편과 단둘이 주방과 홀을 각각 맡아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다.
이런 상황에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여파로 휴일 예약돼 있던 30명 규모 식사공연 등 단체 예약들까지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당장 400만 원 넘는 매장 임대료와 관리세가 걱정이다.
4일 박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최근 1~2년 사이 장사가 너무 안 되고 있다"며 "그런데 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우리도 그렇고 이웃 가게들도 그렇고 다 망하게 생겼다"고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자영업자뿐만 아니다. 여당과 보수진영에서조차 거센 반발을 사며 실패로 끝난 이른바 '윤석열발 나홀로 계엄'은 가장 밑에서 내수를 떠받치는 경제계층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기업과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강의하는 프리랜서 최모(30대·여)씨는 전날 계엄 소식을 듣고 '멘붕(멘탈 붕괴)'이 왔다고 했다. 서울 자택에 어린 자녀 셋을 두고 제주도에 홀로 출장 중이었는데, 대통령이 초래한 국가 혼란 사태에 아이들부터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주말까지 계획됐던 강의 일정도 일부 축소되거나 바뀔 수 있다는 업체 측 통보가 내려진 상황. 다둥이를 둔 워킹맘인 최씨는 수십만 원의 강의료를 포기한 채 서울행 비행기 예매를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최씨는 자신과 함께 활동하는 충청·경상 지역 행사 사회자나 기획사 관계자 등도 계엄 사태로 대형 행사들이 연기되거나 무산되면서 200~300만 원 넘는 단기 수익을 포기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그는 "평온한 일상이었는데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졌다. 누구의 책임이냐"고 따지며 "어차피 돈도 못 벌게 된 판국에 주말에 거리로 나가 목소리라도 내야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계엄 사태로 숙박업계 역시 울상이다. 이날 새벽 국회 의결(190명 찬성)을 거쳐 계엄이 해제되기는 했으나, 해외 언론들도 관련 사안을 집중 조명하면서 국내외 관광객들의 예약 취소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서울 중심지역에서 여러 지점을 운영 중인 대기업 계열 한 호텔 측은 윤 대통령 공식 발표 이후 외국인 여행객들 중심으로 계속해서 취소 문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이 호텔 관계자는 "중국 관광객들이 많은 지점에서 예약 취소 건이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호텔 주변의 일부 도로는 계엄이 해제된 뒤에도 지속되고 있어 고객들이 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앞서 주한 미 대사관은 윤 대통령 계엄 선포·철회 사태에 관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자국민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계엄령을 철회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미국 시민은 잠재적인 혼란을 예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대사관은 비자 면접과 여권 면접 등 일부 업무를 4일 중단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