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했는가. 대한민국 제 20대 대통령 윤석열의 한밤의 비상계엄 선포는 정신 분열적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무슨 맘을 먹고 국헌문란을 기도했을까. 어설프기 짝이 없다. 전두환을 꿈꾸었던 것 같다. 친위 쿠데타를 통해 자신의 정적인 이재명,한동훈을 쌍끌이로 몰아내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1980년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5.17 전국비상계엄 확대'라는 초강수를 뒀다. 꼭두각시 대통령 최규하와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3김을 청산하기 위한 군사적 모험이었다. 전두환은 날로 격화되는 학생 소요를 명분 삼았다. 그는 보안사 정보처에 시국수습방안을 지시했고 정보처장인 권정달은 비상계엄 확대와 국회 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을 가져왔다.
그는 5월 16일 일정을 앞당겨 중동을 순방 중이던 최규하를 귀국시켰다. 정부 중앙청사는 외부와의 전화선이 모두 끊겼고, 무장 군인들은 공포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날 국무회의에서 아무런 토론도 없이 전국비상계엄 확대는 단 8분 만에 결정됐다.
하나회 신군부가 장악한 국방부도 일사천리로 돌아갔다. 전국 주요 지휘관회의가 긴급 소집됐다. 군을 시위진압에 투입할 것인가에 관한 회의였다. 지휘관들 사이에서 찬반양론이 엇갈렸다. 이번엔 특전사령관 정호용이 분위기를 다잡고 나섰다. 결국 반강제적 분위기 속에서 군 투입은 결정됐다. 전국 대학엔 5월 18일 새벽 휴교령이 선포됐고 탱크를 앞세운 군 부대가 진주했다. 서울역 회군 직후 이화여대에 있던 전국 학생회장단도 모두 검거됐다.
그날 새벽 2시경, 경기도 부천에 주둔중인 무장한 보병 33사단 101연대 병력이 국회의사당을 점령하고 봉쇄했다. 33사단은 오늘날 수방사의 전신인데, 그들의 임무는 의원들을 검속하고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3김씨들은 전격 체포하는 작전이었다. 무력봉쇄로 사실상 의회는 해산됐다. 전두환이 정적으로 삼은 김대중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김영삼은 가택연금, 김종필은 보안사령부에 각각 감금됐다. 5.17 내란은 치밀하게 준비했던 전두환 신군부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44년이 흐른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윤석열은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처럼 시민들은 큼지막한 텔레비전 자막을 의심했다. 만화에나 나오는 계엄이고 남미나 아프리카에서나 벌어졌겠지 하며 잠시 착각했다.
비상 계엄 선포 이유가 뜬끔없다. 국회가 범죄자들의 집단 소굴이고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체계적이지 못한 윤석열은 전두환의 1/10에도 못미쳤다. 보병사단에 비해 월등한 무력을 가진 공수 특전단이 계엄군으로 국회에 진입했다. 헬리콥터가 날고 분위기가 살벌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어설펐다. 촛불명예혁명의 대한민국을 제 혼자만 우습게 본 처사였을까. 국회에 무장병력이 도착했지만 시민들이 막아섰다. 2024년의 계엄 쿠데타는 6시간만에 그렇게 희극으로 종쳤다.
윤석열은 왜 어설픈 계엄 쿠데타를 감행했을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비상계엄은 국방장관 김용현 등 군부내 '충암파(충암고 출신)'가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극소수 군부 세력과 윤석열의 친위참모가 비상계엄을 주도한 탓인지, 아니면 불행 중 다행인지 그들은 전두환처럼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했다. 윤석열은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겠다"고 일갈했지만 국회 봉쇄에 실패했다.
그가 지켜낸다는 '자유 대한민국의 실체'는 무엇일까. 기자는 이번 계엄 쿠데타의 목적이 정적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추정한다. 국회의장 우원식을 체포해 국회기능을 마비시키고 이재명과 한동훈을 동시 제거하려는 쌍끌이 꼼수 말이다. "가능한 한 빠른 시간내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은 그런 속셈이다.
국가 정상화란 그의 권력 행사를 제약하는 정적 제거이다. 결국 제 발등을 스스로 찍고 말았다. 형법에서 내란죄는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국헌문란은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헌법 또는 법률 기능을 소멸시키려는 행위를 말한다. 전시·사변이나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상태로 볼 수 없는 절대적 환경에서 비상계엄을 발동했다.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전두환은 비극으로, 윤석열은 희극으로 비상계엄 사태는 민주 공화국 헌정사에 엄청난 상처를 남기게 됐다. 권력을 오롯이 독점하려는 제왕적 권력욕이 스스로를 발등찍게 만들었다. 정적은 무력으로 제거되던 시대는 40여 전의 일이다. 권력에만 신명을 바치고 분열적인 행태를 드러낸 제 20대 대통령의 불행도 클라이막스에 도달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