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가장 가까운 2차 병원 '4시간 48분'…지역의료 붕괴 '골든타임' ②사라지는 마을, 학교…대한민국 '소멸 쇼크' 현장 보고서 ③"지역에 돈이 안 돈다"…기업·청년 실종보고서[영상] (계속) |
대전광역시에 있는 전기차 소재 생산기업 A사는 미국과 독일의 유수 기업에도 부품을 공급할 정도로 지역에서 탄탄히 자리잡은 첨단기업이다.
그러나 대표이사 B씨는 직원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2030세대 인력이 언제 떠날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들을 붙잡기 위해 사업장 내에 구내식당을 짓고 직원들에게 하루 3끼를 무료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풋살장, 헬스장, 개인 통화방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B씨는 "수도권 등 타지에서 채용한 직원들의 안정적 정착을 돕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오피스텔을 계약해 제공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혼자서 모든 직원들의 정주환경을 책임지기는 어려운 구조"라며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지원을 호소했다.
A사처럼 지금 당장은 버티고 있는 중소기업들도 향후가 걱정스럽다. 지역에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2세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도 마땅치 않아서다. 지역에서 기업 인수합병(M&A)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김정열 파트너(상무)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실제 지역에 있는 중소·중견기업 1세대들을 만나보면 일이 힘들고 성장성이 별로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식들은 모두 해외로 유학 보내거나 서울에 취업시키는 경우가 많다"면서 "좋은 사람 키워 전부 외부로 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업계가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지역 점포 정리를 결단하면서 당분간 지역 내수 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지역 인구 감소가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에 회복 가능성조차 없다고 보는 분위기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미래 성장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버틸 텐데, 일단 지역은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가기 싫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본사에서도 출점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수도권에 상장사 70%…지역격차 5년내 7.7%p 더
그나마 충청권이 지역 가운데서는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역시 충청이 서울, 경기 등 수도권과 지리적으로 붙어있고 무엇보다 정부기관이 몰려있는 세종시를 포함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5년 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GRDP 격차는 7.7%포인트 더 벌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지역은 국가적 위기가 찾아왔을 때 더욱 취약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지역별 일평균 개인 신용카드 이용 규모를 살펴보면, 수도권은 전년 대비 5.5% 증가한 1조1220억원이었다. 그러나 그 외 지역은 카드 이용량이 모두 줄어들었다. 제주가 10.1% 감소했고, 대전·충남 9.2%, 대구·경북 7.8%, 부산·경남 7.2% 등 모든 지역에서 소비가 줄었다. 그만큼 평소 수도권 사람들이 지역에서 소비하는 규모가 컸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기업 수가 적다보니 지역에 인프라가 부족하고, 이는 청년들을 떠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4월 수도권·비수도권 거주 2030세대 남녀 6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비수도권 거주 의향의 결정 요인은 정주여건(41.2%), 연봉(29.8%) 순이었다. 그리고 정주여건 중에서도 '대중교통 접근성과 편리성(50.9%)'을 가장 우선 시 여겼고, '주거환경(46.8%)', '의료 인프라(33.6%)', '문화·쇼핑 등 편의시설(33.3%)', '교육기관 수준(23.6%)'이 뒤를 이었다(복수응답).
결국 기업이 지역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3월 수도권 소재 기업 159개사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실시한 결과, 28.9%만이 지방 이전을 고려한다고 밝혔고, 이들 중 가장 많은 응답자인 37.7%가 법인세 감면 등 '세제혜택'이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답했다. 그 뒤로 중앙·지방정부의 행정지원(19.7%), 보조금 등 재정지원(13.1%), 필요한 인력 공급(13.1%) 등이 이전을 선택하는 주요 고려 요인이었다.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전남 경쟁자는 텍사스"
대한상공회의소 조성환 조사본부 지역경제팀장은 인터뷰에서 "지역 입장에서는 기업이 해당 지역으로 와 투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히 그 지역의 여건뿐 아니라 같이 경쟁할 수 있는 해외 국가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결국 전남의 경쟁자는 강원이 아닌 텍사스고, 충청의 경쟁자는 부산이 아닌 유럽"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적 입김이 기업들의 지역 이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특별구역(특구) 지정 문제가 대표적이다. 2022년 8월 기준 전국에 특구만 909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추진하는 기회발전특구 등까지 포함하면 1천개가 넘는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제는 이들 특구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역별로 중구난방 식으로 분산 지정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업이 특정 지역에 들어가도 제도 역량이 집중되지 않아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지리학회장을 맡고 있는 강원대 정성훈 교수는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특구라는 소재를 너무나 좋아한다"면서 "서로 각자 지역에 특구를 지정해달라고 정치적으로 압박도 하다 보니 계속 특구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인천이 처음 경제특구로 지정됐는데, 그 후 경제특구는 2020년까지 부산, 경기, 광양, 대구, 충북, 강원, 광주, 울산 등 9곳으로 늘어났다.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이 경제특구판으로 뒤덮이면서 지역이 경쟁력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전국 어디를 가도 특구인데 그냥 수도권에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푸념했다. 결국 유사 특구를 합치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하는데 상황은 녹록치 않다. 한국항공대 박철우 교수는 "특구별로 담당 부처가 다르고, 관련법도 다른 경우가 많아 유사 특구를 통폐합하는 작업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에 특구가 있다고 해서 공공기관이 지역별로 골고루 분산돼 있는 것도 아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현재 전체 공공기관 339곳(부설기관 12개 포함) 중 46%에 해당하는 157곳이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다. 서울이 122개로 전체의 36%를 차지했고 경기 27개(8%), 대전(26개), 세종(25개), 부산(21개) 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말 완료할 예정이었던 '혁신도시 성과 평가 및 정책 방향' 연구용역 기간을 내년 10월로 연장했다.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해 지역 간 입장차가 컸기 때문이다. 이로써 최근 수도권에 위치한 공공기관과 소속기관 300여 곳을 지방으로 옮기는 '2차 공공기관 이전' 추진 일정이 내년 말 이후로 미뤄졌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추가 지방 이전과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공약했지만, 산업은행 직원들의 강한 반대와 정치권의 이해관계 등이 얽히면서 이 역시 요원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