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투표의 가치를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보다 명확하게 규정한 사람은 없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The ballot is stronger than the bullet)"고 말했다. 1인 1표 투표권 말고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평등을 꼽으라 한다면 무엇이 있을까. 선거제도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빈부격차·남녀노소·개인의 타고난 경쟁력 등을 떠나 투표권을 빼놓고는 자로 잰 평등은 있을 수 없다.
선거제도에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산 역사였다. 대통령 직선제가 그 실증적 사례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1인 1표를 염원했다. 피를 흘리고 얻은 1인 1표에도 불구하고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선거제도를 망가뜨리려는 불법은 끊임없이 있었다. 2003년 대검중수부의 불법대선자금 수사는 이 투명한 선거제도를 지탱하기 위한 사법적 메스였다. 당시는 '차떼기'로 대표되는 돈다발 선거가 한국 정치사에서 흑역사였던 시절이었다.
돈 선거가 사라지자 이번엔 정보시대가 도래하며 또 다른 부정이 등장했다. 정보시대의 허점을 틈타 선거제도에서 혼탁한 새로운 훼방꾼들이 나타난 것이다. 국정원 댓글과 드루킹 사건이 그런 사례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 즉 1인 1표의 투표라는 민주주의 근간을 허물어뜨리고 불법을 자행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인터넷 댓글 공작은 충격을 던졌다. 얼마나 충격이 컸던 사건이었던지 그 댓글 수사팀장이 현재의 대통령까지 오르게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왜곡된 여론형성이 민주주의 선거를 어떻게 타락시키는지 드루킹 사건의 1심 판결문은 잘 지적한다. 오늘날 일반 대중은 손 안의 모바일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다. 모바일은 정치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관한 각종 정보를 접하고 그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는 장이다. 온라인 방향이 사회 전체 여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만큼 여론조작에 대한 유혹 또한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명태균 사건은 대선자금 사건에 비견되는 불법 선거조작이라고 판단된다. '차떼기당'이라 불린 당시 한나라당은 당 간판을 내리고 새롭게 당명을 바꿔 달았다. 그리고 새로운 선거법은 이전의 돈 선거를 탈바꿈시켜 놓았다. 그러나 선거의 파괴범들은 댓글보다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여론조사 조작이라는 신기술을 동원했다. 여론 조작을 넘어서 아예 허위의 여론조사 결과를 창작해 내는 범죄까지 이르렀다. 국정원 댓글과 드루킹 사건은 피라미급이요, 새발의 피에 불과한 몇십 배, 몇백 배의 폭발력을 뛰어넘는 부정 행위이다.
명태균 게이트는 크게 두 갈래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공천개입이라는 여당의 당내 경선 부정선거 논란이고, 두 번째로 문제 되는 것은 대통령 부부를 등에 업은 명 씨의 국정농단 의혹이다. 명태균의 여론조작 방식은 말 그대로 선거제도와 그 제도의 본령인 1인 1투표제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허무는 것들이다. 그는 지인들에게 박완수 경남지사, 김진태 강원지사,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 등도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 방식은 여론조사 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원초적이었다.
첫째는 수치 조작이다. 500명을 조사하고 4배의 곱하기로 응답자 수를 늘리는 원시적 방식이다. 둘째는 그리기 창작이다. 아예 28%, 56%와 같이 지지율 목표치를 불러주고 여론조사표를 그림처럼 그려낸 방식이다. 셋째는 사전 여론조사에서 진흙탕 만들기이다. 국민의힘 당 경선에서 실시되는 사전 여론조사를 코 앞에 두고 비공식 여론 조사를 함으로써 투표권을 가진 당원들의 투표행위가 이미 이뤄진 것처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당원 명부를 갖고 비공식 여론조사를 함으로써 당원들의 특정후보 지지성향을 미리 파악한 뒤 이를 재활용하는 방식이었다.
명태균 사건은 모바일 시대의 민주주의 선거제도가 얼마나 취약하고 위험에 처해 있는지 거울처럼 보여준다. 현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은 이 모든 의혹의 중심에 서 있건만, 부정선거 논란에 대한 일말의 죄의식이나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과정에 철저 수사를 당부했고 그나마 친윤과 대립하는 한동훈 대표가 당 압수수색에 죄송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투표가 총알보다 강하다"고 말했던 때가 150년이나 지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를 가장 초단기에 이룩했다는 나라에서 "부정한 여론조작이 총알보다 강하다"고 링컨 어록을 거꾸로 뒤집게 생겼다. 불법대선자금 수사처럼 국기를 흔드는 선거범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데 국민의힘에선 여전히 "검찰에서 오후 1시 이후에 압수수색 하러 온다니까,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고 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