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파트가 준공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남은 여생 인천에서 잘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은 망가졌고 자식들하고 연락도 끊겼습니다. 제가 뭘 잘못해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까요?"
지난해 10월 준공했지만 시행사 부도와 시공사의 유치권 행사로 1년째 '빈집'이 된 인천 중구 미단시티 '영종 베네스트 위홈 골든마레' 아파트의 입주예정자 A(80)씨의 말이다.
인천 영종신도시에 지은 민간임대주택이 시행사의 부도와 시공사의 유치권 행사로 입주예정자들이 1년여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와 시공사, 입주예정자들의 전향적인 합의가 필요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입주예정자들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시행사 부도로 입주도 못하고 공매 위기…'십시일반'으로 위기 넘겨
28일 인천시 중구와 입주예정자 등에 따르면 중구 영종도 미단시티에 9개동 1096세대 규모로 지어진 민간임대주택 '영종 베네스트 위홈 골든마레'는 지난해 10월 준공됐지만 한 달 여 뒤 시행사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 2800억원을 만기에 갚지 못하면서 입주 지연 사태가 발생했다.
대출 금융회사 단체인 대주단은 올해 1월 이 시행사의 부도를 선언했고, 아파트는 올해 4월 공매에 넘어갔다. 이에 입주예정자들은 돈을 모아 시행사가 PF 대출을 받으면서 대주단에 담보로 맡겼던 주식을 매입한 뒤 연체 이자를 지급하면서 공매 위기를 넘겼다. 또 기존 시행사 경영진을 해임한 뒤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하면서 입주예정자 스스로 시행사 자격을 확보했다.
이후 입주예정자들은 매달 세대당 150만원씩, 15억원을 연체 이자로 지불하고 있다. 급한 불을 끈 뒤 입주예정자들은 입주 절차를 밟았지만 이번엔 시공사가 지난 8월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며 아파트 시설 일부를 점거해 유치권을 행사하면서 입주가 또다시 지연되고 있다.
"건설비 달라" 시공사 유치권 행사에 또다시 좌절된 입주
입주예정자들과 시공사는 공사비 산정, 상환 방법 등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시공사 측은 잔여 공사비와 지연이자 등을 포함해 789억원을 입주예정자들에게 요구했다.
다만 입주예정자들의 입장을 감안해 내년 1월까지 379억원을 먼저 갚으면 유치권 행사를 멈추고 나머지는 임대공급 보증금과 상가 담보 대출 등으로 내년 말까지 상환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입주예정자들은 시공사의 요구가 과도하다고 반발한다. 매달 세대당 150만원씩 PF 이자를 부담하는 상황에서 두 달 안에 입주 전 지급해야 하는 임대 보증금 3500만원과 추가 분담금 3100만원, 임대료 등 7000여만원을 한 번에 마련해야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임대 보증금 3500만원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고 있는 예정자들에게는 갑절 이상되는 돈을 당장 마련하라는 요구와 다름없다. 더구나 이마저도 1년 안에 4000여만원을 추가로 갚아야 한다.
인천시장이 추진하고 대선 후보 공약이었던 사업
사회적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이른바 '누구나집' 방식으로 지은 이 아파트는 2014년 송영길 당시 인천시장이 제안한 주거정책에 기반해 추진됐다.
'누구나집' 민간임대주택은 조합원으로 가입한 개인이 아파트 최초 공급가의 10%만 내면 10년 동안 주변 시세의 80~90% 수준의 임대료를 내며 지내다가 최초 공급가에 분양받을 수 있는 사업이다. 나머지 90% 가운데 15%는 사업 주체 등이 출자 형태로 부담하고, 75%는 주택도시기금 대출과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으로 충당하는 구조다.
거주자인 임차인은 10년 후 최초 공급가로 주택을 구매해 소유권을 가질 수 있고 원할 때까지 평생 임대로 살 수도 있다. 분양 시점에서 '10년 전 가격'으로 아파트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저소득 서민들을 위한 새로운 주거정책으로 주목받았다.
'누구나집'은 2021년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주거공약에 포함됐다. 당시 민주당은 전국에 기본주택 140만호를 건물분양형·지분적립형·누구나집형·이익공유형 등의 방식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종 베네스트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를 3억5000만원으로 확정했다. 이 아파트가 지난해 10월 준공된 걸 감안하면 2032년 10월 3억5000만원에 이파트를 소유할 수 있는 셈이다.
가족과 연락 끊기거나 뿔뿔이 흩어져…더 어려워진 입주예정자들
입주예정자들이 시공사의 요구가 과하다고 받아들이는 또다른 이유는 입주예정자 대부분이 60세 이상 고령층이거나 신혼부부들이기 때문이다.
당시 인천국제공항과 면세점, 몇몇 호텔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경제기반이 없는 영종신도시의 임대주택을 거주지로 선택할 수 있는 계층은 영종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노년층이거나 직장 인근에 주거지를 마련하기 어려워 공항철도를 이용해 수도권으로 출퇴근하려는 저소득 청년층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입주예정자들은 지난 9월부터 아파트 앞 보도블럭에 텐트를 치고 시공사와 대립하고 있다. 시공사의 요구가 너무 과하다는 항의 표시이자 동시에 입주를 코앞에 두고 시행사 부도와 시공사 유치권 행사가 발생하면서 기존 거주지를 미리 정리한 입주예정자들이 갈 곳이 없게 된 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아파트 앞 텐트에서 만난 입주예정자 A(80)씨는 "서울에서 15년째 암투병 생활을 하면서 수년전 우연히 영종도 미단시티를 찾아왔다가 서울보다 공기가 좋고 요양생활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조합원에 가입했다"며 "무엇보다 임대 보증금만 있으면 10년간 임대료만 내면서 지낼 수 있다는 말에 마지막 정착지로 인천을 택했다"고 말했다.
A씨는 입주가 늦어지면서 아내는 처갓집에, 자신은 텐트와 찜질방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입주를 위해 돈을 더 마련해야 하지만 고령인 데다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어 볼까도 했지만 오히려 서로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 사이가 됐다. 그는 "올해 손주가 수능을 봤는데 어떻게 시험을 치렀는지 연락도 않오고, 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입주예정자 B(60대·여)씨는 "혼자 식당일 등을 하며 힘들게 두 자녀를 키웠고, 더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조합원에 가입했다"면서 "하지만 입주가 늦어지고 추가 분담금 마련도 어려워 자녀들을 강제 독립케 하고 혼자 월세방에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입주예정자인 공인중개업자 C(50대)씨는 "누구나집 방식에 대해 주변에서 우려가 있었지만 당시 집권당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도 포함돼 있어 믿었는데 나를 따라 조합원에 가입한 수십명에게 얼굴을 들 수 없게 됐다"며 말끝을 흐렸다. 실제 이 이파트는 2021년 2월 착공에 들어갔고, 민주당은 같은 해 6월 '누구나집'을 대선 공약에 포함시켰다.
불안정한 주거와 높은 이자 부담으로 공황장애를 겪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도움과 관계기관의 적극적 행정 절실"
입주예정자들은 정치권의 도움과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행정을 호소한다. 애초 이 사업이 송영길 당시 민주당 대표가 주도했고 이재명 현 대표가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법률지원단 지원 등을 제공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입주를 위해서는 임대보증금 보증 계약서를 발급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민간임대주택 공급을 승인하는 중구 등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행정이 필수다.
입주예정자들은 사업 자금을 제공한 금융대주단에게도 입주시까지 PF이자 납부 유예를, 시공사에게는 유치권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시공사의 유치권 철회는 입주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한 입주예정자는 "대주단, 시공사, 입주예정자 모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입주예정자들의 삶의 기반이 무너지기 전에 사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