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퇴진 집회를 경찰이 과잉 진압했다는 논란에 대해 경찰청 인권위원회가 경찰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의 공식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관련 대법원의 판례와 배치되는 행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과 집회 참가자 양쪽에서 부상자가 나온 이번 집회와 관련해 주최 측은 경찰이 과잉 대응을 했다며 조지호 경찰청장의 사퇴까지 촉구했지만, 경찰 활동 전반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출범한 경찰청 인권위는 사실상 경찰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경찰의 강경한 집회 관리 기조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해산명령 후 경찰-시위대 간 충돌…경찰청 인권위 "경찰의 직접 해산조치 없어"
경찰청 인권위는 경찰 정책 또는 법령을 제‧개정하는 과정에서 인권영향평가를 하거나, 인권정책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자문기구다. 12명의 외부 전문가와 경찰 1명 등 13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현 경찰청 인권위는 고려대 장영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CBS노컷뉴스는 지난 9일 열린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 집회에서 불거진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에 대한 경찰청 인권위의 공식 의견서를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을 통해 확보했다. 경찰청 인권위는 의견서에서 "(경찰이) 현장에서 해산 명령은 했으나 직접 해산 조치에는 이르지 않았으므로 대법원 판례에 배치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집회가 해산된 것은 강제 해산이 아니라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자진 해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이 집회신고 장소 이외 공간에서 집회가 열리더라도 즉각 해산할 수 없다는 집시법 관련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대응을 한 것 아니냐는 질의에 대한 답변이다.
사전 협의대로 행진하던 집회 참가자들을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세워 막아 법을 위반했다는 주최 측 주장에 대해서도 경찰청 인권위는 "본 집회 장소에서의 인원 밀집에 따른 위험방지와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했던 조치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인권위는 경찰이 당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민주노총 조합원 등을 연행하고, 이후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것에 대해선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서, 이에 대해 위원회가 직접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답했다.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로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을 비롯한 참가자와 경찰관 다수가 부상을 입은 것에 대해선 "집회 참가자가 폴리스라인을 밀치는 과정에서 시민과 경찰관 다수가 부상을 당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대립과 갈등이 아닌 성숙한 집회시위 문화가 확립될 수 있도록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불법 집회'로 사실상 판단…법조계 "완전 무장해서 물리력 행사했다면 해산조치"
장 위원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찰의 강제 해산 조치가 없었다고 판단한 근거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회의에서 경찰청 경비과장 등 관련자들의 설명을 듣고, 해당 집회 관련 자료와 영상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장 위원장은 "(집회 주최 측은) 8개 차로 중 6개 차로를 사용하기로 했지만 8개 차로를 모두 점거했다. 불법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경찰이) 해산명령을 내린 것이 맞고, 해산명령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서 세 차례 내린 것도 맞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그 이후에는 (경찰이) 강제력을 동원해서 해산한 것은 아니"라며 "(집회 신고 시간을) 45분 넘긴 것이고 이후 열리는 더불어민주당 집회에 참가하러 온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해산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해산조치는 (경찰관들이) 그곳에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집회 참가자들을) 강제력으로 몰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선 당시 경찰의 집회 관리가 대법원 판례 등을 준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검경개혁소위원장 이창민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찰이 불법 집회라고 판단하더라도 경고음을 울리는 등 다른 방법으로 (집회 관리를) 할 수 있음에도 경찰이 완전 무장을 동원해서 유형력(신체에 고통을 줄 수 있는 물리력의 작용)을 행사하는 게 해산 행위"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경찰은 법 집행기관으로서 (현장에서) 집회를 보호해주고 통행자들에겐 우회로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며 "이동할 권리와 집회‧시위의 권리 모두 보호할 수 있음에도 (두 권리가) 충돌되는 가치라고 전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달 9일 '尹 퇴진 집회' 다시 열린다…투쟁 수위 격해질 듯
앞서 경찰은 지난 9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렸던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 현장에서 사전 신고된 범위를 넘어선 집회 참가자들에게 내려진 해산명령에 불응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 등으로 집회 주최 측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 10명 등을 체포했다.이들 일부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은 전부 기각됐지만, 경찰은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전에 불법 집회를 기획했다고 보고 양경수 위원장 등 집행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양 위원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지난 22일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에 출석해 약 12시간 조사를 받기도 했다.
양 위원장은 출석 당시 "우리는 집회를 하기 위해 신고를 했고, 법에 보장된 권리대로 집회를 진행했을 뿐"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주말인 다음 달 7일로 예정된 '윤석열 정권 퇴진 3차 총궐기'에서 민주노총 등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 간 긴장 기류가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편 지난 25일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범야권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한층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