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도 끝났는데…출구 '오리무중'인 의·정 사태, 왜?

3주後 수시합격 발표에도…양측 내년 의대정원 '평행선' 여전
전공의 지지 업은 新의협 비대위, '대정부 강경노선'에 힘 실어
'반쪽짜리' 협의체, 기존 이견만 재확인…연내 접점 쉽지 않아
9개월 넘게 의료개혁 당위성만 강조한 정부…'일방통행' 반감도

개혁신당 허은아 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대한의사협회 박형욱 비대위원장,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 2월 정부의 '의대정원 2천 명 증원' 발표로 촉발된 의·정(醫政) 갈등이 10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증원 규모는 당초 정부안(案)보다 적은 1500여 명으로 감원됐으나 양측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또 최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진용을 재정비한 대한의사협회(의협)가 기존의 '증원 철회' 주장을 넘어 아예 '의대 모집 중지'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봉합은커녕 출구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앞서 임현택 의협 회장이 탄핵되면서, 여·여·의·정 협의체 참여 등 대화 기조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지만 미망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임 회장 체제에선 '2026년도 의대정원 감원 가능성' 보장 시 대화를 고려해볼 수 있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던 반면, '박형욱호(號) 비대위'는 "(현 정부에게) '의료농단'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나선 상태다.
 
2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열흘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지고 수시 합격자 발표가 3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도, 사태 해결이 난망한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①'증원 전면 백지화'→'모집 중지' 액셀 부른 전공의·의대생 

박형욱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전날 열린 첫 회의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초에 보건복지부와 의대정원 문제를 포함한 의료현안을 '맨투맨' 협의체에서 논의했던 카운터파트는 의료계 유일 법정단체를 자처하는 의협이었다. 의사증원 추진에 앞서 각계각층과 '130차례 이상' 소통했다고 강조한 정부는 지난 2월 6일 의대증원 발표 브리핑 당시 "작년 1월부터 의협과 의료현안협의체를 발족해 총 28회 소통했다"고 밝혔다.
 
의협-복지부가 1년여 간 협의체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단발성 개진 외 의견을 온전히 피력하기 어려웠다. 의대 증원 여파를 직접적으로 겪게 될 피(被)교육·수련생임에도 논의 중심에선 비껴나있던 셈이다.
 
의대 증원 관련 이들의 반발이 가장 거센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물론 의협도 협의체 회의에서 '2천이란 숫자는 전혀 거론된 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대정부 투쟁 강도에서 줄곧 '증원 전면 백지화'를 내세운 전공의·의대생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본래 의협 내에서도 강성으로 분류됐던 임 전 회장이 전공의들의 비토를 받은 것도 수차례 '센 말'로 설화를 빚었다는 점보다는, 이렇다 할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전공의들은 지난 13일 박형욱 의협 비대위원장이 선출되는 데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를 업고 당선된 박 위원장은 비대위 1차 회의 이튿날인 22일 브리핑에서 "정부의 의료농단에 맞서 싸워 온 대전협과 의대협의 입장을 적극 지지한다"며 "2025년 의대 모집을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 이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전국 40개 의대생들이 모인 의대협도 지난 15일 확대전체학생대표자 총회에서 '(증원 백지화 등) 대정부 요구안 관철을 위한 투쟁을 내년에도 진행한다'는 안건을 압도적 찬성률(99.3%·269명 중 267명 찬성)로 가결시켰다.
 
현재 의협 비대위에서 전공의·의대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비대위원 15명 중 6명)에 달한다. 이들의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②'반쪽짜리' 못 벗은 협의체…"연내 성탄선물" 공수표 확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여·야·의·정 협의체 1차 회의' 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의료계의 제한적 참여와 야당(더불어민주당)의 불참으로 인해 '반쪽짜리'로 출범한 여야의정 협의체는 지금의 난맥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의·정과 여야가 함께 거국적으로 중지를 모아 보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연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 국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드리겠다"는 포부의 실현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날에도 국회에서 3차 전체회의를 가진 여야의정 협의체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 관련 이견조차 좁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의료계에서 협의체에 참여 중인 단체는 학술단체인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 둘뿐이다.
 
대한의학회 등은 이번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등급 미달, 의대 중복합격 등으로 발생한 미충원 인원을 정시로 이월하지 않는 방안 등을 활용해 내년도 의대 정원을 감축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이 2024년도 대비 1509명 늘어난 4565명으로 이미 확정된 만큼 추가 조정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다시 변경하려면 관련 법령 제·개정 등이 필요하고, 소송 위험 등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관해서도 합의점을 보지 못했다.
 
정부는 향후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를 통해 증원 규모를 합의하자는 의견인 데 반해, 의료계(의학회·의대협회)는 2026학년도는 증원 전 기존정원(3058명)을 뽑고 2027학년도부터 추계위 합의안을 반영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협의체 운영기한이 연말까지인 점을 고려하면, 그 안에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핵심 당사자인 전공의단체와 의협 등이 당분간 참여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고, 민주당 또한 '정원 문제 해소 없는 협의체는 의미 없다'는 입장이다. 의협 비대위는 한술 더 떠 의학회 등을 향해 "무거운 짐을 벗고 나오라"고 촉구했다.
 

③'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정부 태도 향한 앙금도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2.5년 계기 보건복지분야 주요성과 및 향후 추진계획 발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사태가 전개되는 동안 '의료개혁'의 당위성만을 주로 부각해온 정부의 태도가 의료계의 앙금을 키운 측면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내년 '예과 7500명' 교육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도 불신에 한몫하고 있다.
 
정부가 초반에 강조한 '원칙'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의료계 요구(휴학계 승인 등)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국면을 연이어 연출하면서도, 개혁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지난 14일 '윤 정부 보건복지 분야 주요성과 및 향후 추진계획' 브리핑)고 자평하는 것 역시 민심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다.

이제 와서 '의대 모집 중지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반론이 의료계 일각에서도 제기되는 가운데, 그럼에도 정부가 증원 관련 책임자 문책 등의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내부에서 아직 힘을 받는 이유다.
 
박형욱 위원장은 지난 22일 "도대체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학생의 휴학 승인을 교육부 장관이 결정하나"라며 "대학 총장들이 교육부의 횡포에 항의조차 못하고 입을 다무는 현실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는 사태를 해결할 생각 없이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다. 내년부터 의대 교육은 파행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의대 증원 등을 진두지휘해온 윤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 조규홍 복지부 장관, 이주호 교육부 장관 등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의과 교육·수련이 '파탄'에 이를 때 "이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편히 지내는데 의대생들과 의대 교수들은 혼란과 고통 속에 10년 이상 후유증을 앓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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