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CBS는 창사70주년 특별기획 <아이가 있는 삶, 미래와의 협상> 연속 보도를 통해 저출생 인구위기의 현실을 진단하고 그 해법도 모색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생애주기를 아울러 미래세대를 지원하는 스웨덴의 상황을 살펴봤는데요. 오늘은 이웃나라 일본으로 가보겠습니다.
약 30년 전 한 싱글맘의 공동육아 사례를 직접 돌아본 취재팀의 이은지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자]
네, 안녕하세요.
[앵커]
취재팀이 일본 현지에서 '비(非)혈연 공동육아', 그러니까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공동육아라는 거죠? 이 사례를 살펴보고 왔다고요?
[기자]
네. '비혈연', 그러니까 말씀하신 대로 가족관계로 묶이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아이를 키운 사례를 왜 조명하려 했는지부터 짚어야 할 것 같은데요.
앞서 저희가 다룬 사례들, 아이 양육에 발 벗고 나선 '케이(K)-육아대디'나 스웨덴의 성평등 육아는 우리에게 익숙한 핵가족 형태를 상정했을 때의 개선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혼이나 비혼(非婚) 등의 이유로, 갈수록 한부모 가정이 느는 추세고요.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이 때문에 약 30년 전, 일본 도쿄에서 한 싱글맘이 시도한 이른바 '침몰가족(沈沒家族)' 사례가 완벽한 대안은 아닐지라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앵커]
'침몰가족'이란 이름만 들으면 뭔가 무섭고 특이한데…이게 무슨 뜻인가요?
[기자]
이 이름은 당시 어느 일본 정치인의 말에서 따왔는데요. "남자는 일하러 가고, 여자는 가정을 지키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사라진다면 일본은 침몰하고 말 것"이라는 얘기를 비틀어 작명했습니다.
20대 초반에 출산을 한 비혼 싱글맘의 이름이 가노 호코고요, 1994년 호코가 낳은 아들의 이름은 가노 쓰치입니다. 호코는 아들이 돌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지하철 역 앞에서 공동육아 참가자 모집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나는 쓰치를 만나고 싶어서 낳았다", "집에만 틀어박혀 종일 가족을 생각하느라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았고요. 그러면서 평일 저녁 오후 5시 반에서 10시까지 아이를 돌볼 사람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금전적 보상은 따로 약속하지 않았고요, 음식과 음료 정도가 무상제공되는 조건(?)이었습니다.
혹시 앵커께선 사람이 얼마나 모였을 거라고 보세요?
[앵커]
이런 낯선 사람들의 모임이라…많아야 서너 명 정도 모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기자]
네 그렇게들 많이 보실 것 같은데요, 최소한 '20명 안팎'이었다고 합니다. 친구의 친구처럼 인맥을 통한 참여자들도 있었지만 오사카에서 도쿄로 넘어온 20대 여성 등 전혀 연고가 없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자발적으로 모인 돌보미들은 대부분 2030 청년들이었는데요. 취업은 물론, 연애-결혼과 거리가 멀고 딱히 (그에 대한) 의지도 크지 않은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다메렌(だめ連)', 즉 낙오연대라고 불렀습니다.
공동육아에 참여하기 전 자신이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은둔형 외톨이)와 비슷했다'고 밝힌 사토 나미에 씨도 그 중 한명이었는데요, 침몰가족원 집담회에 참석한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인서트: 사토 나미에]
"(저는 당시) 23살이었는데 일도 제대로 안 하고,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결혼해서 애를 낳거나, 부지런히 일을 하는 사람들만 제 주변에 있어서 기운도 없고 약간 은둔형 외톨이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혹시 이런 커뮤니티라면 잘…'잘'이라기보다는 '즐겁게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노 모자(母子)는 나미에씨를 포함한 돌보미들과 약 7년을 함께했고요. 당시 이들이 살았던 집엔 또 다른 싱글맘 가정과 독신 입주자들이 함께 부대끼며 살았습니다.
[앵커]
굉장히 흥미로운데, '엄마' 입장에서는 완전히 초면인 사람들한테 아이를 맡긴다는 게 좀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거든요?
[기자]
그렇죠. (다만) 조금 헐거워 보인다 해도 나름의 '룰'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가령 공동육아 공간인 '침몰하우스'에 처음 온 참가자는 그 사람을 데려온 기존 구성원과 반드시 동석해야 했습니다.
또 교대로 아이를 돌본 돌보미들이 그날그날 아이의 상태, 함께한 활동이나 감상 같은 기록을 남기는 육아노트가 있었고요. 한 달에 한 번은 공동육아자들이 한데 모여 일종의 '보육회의'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호코씨는 생계 유지를 위한 노동을 포함한 외부활동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엄마인 호코씨 목소리도 들어보시겠습니다.
[인서트: 가노 호코]
"육아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혼자만 하는 건 아까운 일이기도 해서(…)제가 쓰치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저도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지내고 싶고 아이도 그렇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 취재팀이 만나본 쓰치는 서른 살 청년으로 잘 자랐고요. TV프로그램 제작사에서 영상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데, 본인의 이런 독특한 일대기를 대학 졸업과제용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침몰가족에서 보낸 자신의 어린 시절이 "너무 즐거웠"고, "세상에 별의별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일찍 배울 수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앵커]
싱글맘은 독박육아 부담을 덜어서 좋고, 또 아이는 다양한 관계성을 통해 많은 추억을 쌓은 것 같은데요. 이 얘기가 '실화'라는, 진짜 있었던 얘기란 게 가장 놀랍네요.
[기자]
맞습니다. 마찬가지로 취재팀이 현지에서 만난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는 "역사상 아이를 100% 홀로 키운 엄마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장기요양보험(※일본의 개호보험)이 고령자 돌봄을 커버하는 것처럼 육아 역시 꼭 가족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상식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는데요.
육아부터 간병돌봄까지 전 세대에 걸친 사회보장을 꿈꾼다는 우에노 교수의 마지막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다.
[인서트: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옛날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3살 신화를 믿었습니다만, 지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의 상식은 간단하게 바뀝니다."
한국보다 먼저 인구위기를 겪은 일본의 조언인 셈인데,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들을 구상하는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끝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CBS의 이번 연속기획은 유튜브 '노컷' 채널과 노컷뉴스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앵커]
네, '역사상 아이를 홀로 키운 적이 없다'…이 말이 굉장히 와닿는데요. '독박육아'라는 말이 사라지는 그 날이 빨리 오길 바라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은지 기자였습니다.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