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MBK와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이 반격의 카드를 연일 꺼내고 있다. 앞서 일반공모 유상증자 철회로 스텝이 꼬이는 듯했지만, 국가핵심기술 지정과 금융당국 조사를 밀어붙이며 경영권 사수의 명분을 차곡차곡 쌓는 모양새다. 고려아연은 향후 있을 표 대결에서 '필사 저지' 각오로 총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국가핵심기술 추진…분할 매각 사전 차단
고려아연은 전략광물자원인 안티모니 제련 기술과 아연 제련 독자 기술에 대해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추진한다고 21일 밝혔다. 앞서 산업부는 고려아연의 전구체 원천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판정했는데, 여기에 더해 본업인 제련 기술까지 추가로 지정받아 영풍·MBK 측 공세에 맞서겠다는 취지다. 업계에서 영풍·MBK 연합이 전구체 기술을 제외한 사업이나 계열사를 분할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이마저도 사전에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정부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 안보와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고 있다. 현재 반도체·디스플레이·원자력 등 분야에서 70여건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관리중이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이를 보유한 기관이나 기업은 법률로 보호 받는다. 해당 기술을 수출하거나 해외 인수합병이나 합작 등 외국인 투자를 진행하려는 경우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게 대표적이다. 고려아연의 전구체 기술은 이미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만큼 정부 승인 없이는 해외에 매각될 수 없는 상황이다.
시장 안팎에서는 고려아연이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됨에 따라 경영권 확보를 시도중인 영풍·MBK 연합의 구상에도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해외 매각시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게 된 만큼 기업을 인수한 뒤 재매각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사모펀드의 통상적인 사업 수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고려아연 측은 "시가총액 20조원에 육박하는 고려아연의 몸집을 고려했을 때 국내에서는 인수를 시도할 기업이 없다는 점에서 해외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이마저 불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고려아연으로서는 경영권 사수 명분을 강화하는 카드가 추가로 생겼다. 전구체 기술에 이어 제련 기술까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명분은 더 탄탄해진다. 지금만 해도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이 사모펀드에 넘어가면 국내 산업과 공급망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태다. 잇따른 국가핵심기술 지정은 그동안 국가 기간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고려아연 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논거로 충분하다.
금감원 추가 진정으로 회심의 공격
국가핵심기술이 명분의 카드라면 금융당국 조사는 회심의 공격 카드다. 고려아연은 이날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과 장형진 영풍 고문·강성두 영풍 사장 등 영풍·MBK 연합의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해 달라며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지난달 17일 시세조종 행위를 들여다봐 달라며 낸 진정서에 이은 추가 조치다.
고려아연은 "영풍·MBK 연합이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 공개매수(자사주 공개매수) 절차를 중지해 달라며 법원에 2차 가처분을 신청하고 이를 시장과 언론에 적극 알려 시장 불안정성을 조장하면서도 오히려 지난달 18일 심문기일에는 고려아연 지분을 저가에 매수한 행위가 사기적 부정거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영풍·MBK 측은 MBK의 특수목적법인(SPC)인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1일까지 고려아연 지분 1.36%(28만 2366주)를 장내에서 추가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지난 9월 13일부터 10월 4일까지 진행한 공개매수 기간 이후 추가로 지분을 사들인 것으로, 이로써 영풍·MBK 측이 확보한 고려아연 지분은 39.83%로 확대됐다.
고려아연은 "해당 기간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을 상대로 1차에 이어 2차 가처분 신청을 한 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과정의 법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가처분 인용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하는 등 시장의 불확실성 키웠다"며 "그러면서도 영풍·MBK 측은 10월 18일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하는 등 사기적 부정거래를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같은 행위는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투자자들에게 특정한 시장 기대를 형성하게 해 주가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정보를 제공한 것"이라며 "이런 와중에 영풍·MBK 측은 10월 18일 법원에서 가처분 심문기일이 진행된 당일 고려아연 주식 2만주를 장내매수했다. 결국 MBK 측이 주가 상승을 방해하고, 이로 인한 주가 수준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저가에 지분을 매입하는 이익을 취하려 했다는 의혹이 생기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고려아연이 추가로 금감원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영풍·MBK 측의 시장 교란과 사기적 부정거래 행위 의혹 등에 대한 진정 사안은 2건으로 늘어났다. 앞서 고려아연은 영풍·MBK 연합의 공개매수 과정에서 '단시간 주가 급락'이 이뤄진 사실에 대해 금융당국이 시세조종 여부를 조사해달라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고려아연은 영풍·MBK 연합의 공개매수 마지막 날 "주가가 계속 오르면서 자칫 공개매수가 무산될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 대량 매도가 수차례 쏟아졌다"며 "의도적으로 특정 세력이 주가를 끌어내리려 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