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방자전' '인간중독' 김대우 감독이 10년 만에 밀실 스릴러 '히든페이스'로 돌아왔다. 동명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히든페이스'는 감독의 욕망을 통해 더욱더 뒤틀린 관계와 어두워진 욕망의 스릴러로 재탄생했다.
지휘자 성진(송승헌)이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이자 약혼녀 수연(조여정)이 어느 날 영상 편지만 남겨둔 채 자취를 감춘다. 성진은 수연을 잃은 상실감에 고통스러워하지만, 그녀를 대신한 첼리스트 미주(박지현)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비 오는 밤, 서로의 욕망에 휩쓸린 성진과 미주는 수연의 집에서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다. 한편, 사라진 줄 알았던 수연은 혼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집 안 밀실에 갇혀 숨겨진 민낯을 지켜본다.
안드레스 바이즈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히든페이스'는 '방자전' '인간중독' 김대우 감독답게 자신의 영화 철학인 '에로티시즘'을 더하고 더 어둑하게 뒤틀린 관계와 욕망으로 채워 넣었다.
기본 뼈대는 원작과 동일하다. 남자의 마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여자가 스스로 밀실에 자신을 가두지만, 밀실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남자의 숨겨진 욕망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히든페이스'가 원작과 다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밀실'이라는 공간과 이로 인한 상황보다 성진, 수연, 미주의 관계와 그들의 욕망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극의 긴장을 자아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캐릭터들의 기본 설정 역시 원작과 다르게 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자 서로의 욕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관계로 묶어두면서 '히든페이스'는 세 인물의 외피 아래 숨겨진 진짜 욕망을 자극한다. 영화가 진짜 보여주고자 했던 건 각자 내면이라는 밀실 안에 억눌러 뒀던 숨은 욕망을 꺼내놓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밀실이 주는 긴장감도 다를 수밖에 없다. 원작이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바탕으로 누군가 사라졌다는 사건과 '밀실'이라는 공간성을 활용해 긴장감을 유발하고자 했다면, 김대우 감독의 '히든페이스'는 밀실이라는 물리적 공간보다 인물 내면의 밀실이라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을 활용해 긴장감을 자아내고자 했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는 사건의 스릴러라기보다는 인간, 더 정확히는 관계의 스릴러이자 욕망의 스릴러다. 그렇기에 '히든페이스'가 스릴러 영화로서의 진정한 면모를 나타내는 건 세 인물이 어떻게 얽히고설켜 있는지 그 관계가 드러날 때다.
흥미로운 건 세 사람이 지닌 욕망의 근원은 사실상 비슷하다는 데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얻고 말겠다는 욕망, 그것이 어떤 수단을 통해 어떤 형태로 이뤄지든 결과적으로 '소유'한다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세 인물은 닮은꼴이다. 다른 것은 무엇을 소유하고 싶은가 하는 점이다.
'히든페이스'가 엔딩에 다다랐을 때, 세 인물의 욕망이 실현된 결과를 보며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질문들이 남는다.
그중 하나는 수연과 미주의 관계에서 진짜 노예가 된 것은 누구일 것인가 하는 지점이다. 수연에게 길들어진 후 순종적으로 굴다가 결국 스스로 발목에 족쇄를 찬 미주가 노예일까. 아니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자신감을 가득 찼던, 끝끝내 미주에게 족쇄를 채운 수연이야말로 진정한 미주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닐까. 누구의 히든페이스가 가장 광기 어렸을까. 스스로 밀실에 갇힌 미주 그리고 그런 미주를 위해 다시 밀실을 오가길 자처한 수연의 관계는 여러모로 여운을 남긴다.
'히든페이스'는 감독의 전작들을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는 듯이 배우들의 노출 신이 등장한다. 그러나 원작과 리메이크작의 특성상 배우들의 노출 자체는 불필요한 노출이 아니다. 다만 아쉬운 건, 노출이 아니라 '보여주기'의 문제다.
노출 신과 베드 신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 무엇에 중점을 두고 보여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의 에로티시즘 밀실 스릴러라 해도 영화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히든페이스' 속 베드 신이 과연 지금의 결과물만큼 필요했는지 질문했을 때, 과잉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관계와 욕망을 영화의 중심에 뒀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욕망에 설득될 수 있도록 인물의 감정선을 구축하는 데 조금 더 공을 들였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외적으로 우려되는 지점은, 영화가 의도와 다르게 왜곡된다는 점이다. '히든페이스'는 얽히고설킨 세 인물의 관계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다양한 스펙트럼의 욕망과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각자가 마주한 엔딩은 해피 엔딩인지 배드 엔딩인지, 관계의 최종 승자는 누구인지, 누구의 욕망이 더 뒤틀렸는지 등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감독의 업보라면 업보일까, 일부 예비 관객들이 영화 자체와 배우들의 열연을 놓고 기대하기보다 '노출' '고수위'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에로티시즘이라는 요소를 단순하게 포르노처럼 소비하려는 방식이 우려될 따름이다.
'히든페이스'를 '배우의 재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다가가도 좋을 것이다. 세 배우 모두 열연을 선보였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조여정과 박지현이다. 조여정은 자신감이 두려움으로, 두려움이 광기 어린 질투로, 질투가 소유욕으로 변하는 과정을 눈빛과 근육의 미세한 떨림으로 표현하며 관객들을 스크린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특히 '올드보이' 오대수의 군만두 먹방 못지않은 생라면 먹방은 생라면을 향한 식욕을 자극한다.
박지현이 연기한 미주는 어떻게 보면 세 인물 중 가장 잔잔한 인물일 수 있다. 그러나 미주 안에 숨겨졌던 욕망은 그 누구보다도 어둡고 깊다. 박지현의 연기는 고요한 호수에 서서히 일렁이는 파문으로 시작해 해일처럼 덮쳐온다. 노출이란 단어에 가려지기에는 아까운 열연이다.
116분 상영, 11월 20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