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가심비 모두 잡은 마법의 세계 '위키드'[노컷 리뷰]

외화 '위키드'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 스포일러 주의
 
팬데믹 이후 여러 차례 오른 티켓 값에 영화관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 관객, 일반관 1만 5천원-특수관 2만 2천원(주말 기준)에 달하는 티켓 값을 지불하고 극장을 갈 것인지 고민하는 관객에게 '위키드'는 가성비는 물론 가심비까지 모두 잡을 수 있는 '극장용' 뮤지컬 영화다.
 
자신의 진정한 힘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엘파바(신시아 에리보),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 전혀 다른 두 사람은 마법 같은 우정을 쌓아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법사의 초대를 받아 에메랄드 시티로 가게 되고, 운명은 예상치 못한 위기와 모험으로 두 사람을 이끈다.
 
2003년 10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전 세계 6천만 명이 관람한 뮤지컬 '위키드'가 드디어 영화로 재탄생했다. '인 더 하이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나우 유 씨 미 2' 등 개성 넘치는 작품을 선보였던 존 추 감독은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를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레고리 매과이어의 소설 '위키드'를 원작으로 하는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 '위키드'를 영화화한 '위키드'의 강점 중 하나는 뮤지컬 무대라는 현실의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펼쳐질 수 없는 오즈의 세계가 무한하게 뻗어 나간다는 점이다.
 
외화 '위키드'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특히 소설이나 뮤지컬에서는 만날 수 없는 마법의 세계, 판타지라는 장르만이 가질 수 있는 상상의 나래가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영화 '위키드'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을 그린 여성 투톱 뮤지컬 '위키드'는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 '파퓰러'(Popular)를 비롯한 넘버로 전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 버전 '위키드'가 더욱더 기대되는 것은 후시녹음이 아닌 현장 라이브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다는 점이다. 라이브는 현장성은 물론 배우들의 감정선이 스크린이라는 벽을 뚫고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이처럼 뮤지컬적인 측면에서의 장점도 상당하지만, '위키드'는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 이야기를 메인으로 하면서 그 안에 차별과 이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았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들이 있다.
 
외화 '위키드'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를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됐지만,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나가며 살아왔다. 그런 엘파바가 쉬즈대학교에 입학한 후, 동물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폭력과 차별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들이 말(언어)하는 동물들에게서 말을 빼앗고, 동물들을 철창 안에 가두거나 제거하는 모습 등이 나온다. 언어를 빼앗긴다는 것은 발언권을 빼앗는 것이자 정체성을 빼앗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약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이기도 하다.
 
"실망이 반복되어 희망을 잃으면 모두가 침묵하게 된다"라는 말처럼 다른 학생들이 동물들을 탄압하는 모습을 보며 침묵할 때, 엘파바는 동물들을 위해 나선다. 그 역시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서 공감하고 약자에 연대하기 위함이다. 영화에서처럼 약자에게서 말을 빼앗고, 약자를 폭력적으로 대하는 사회,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연대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또한 학생들은 과거를 배우는 것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인간 교수는 과거는 불필요하고 오로지 미래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란 역사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지만 오즈의 인간들은 이를 외면한다. 그런 가운데 차별의 중심에 선 엘파바와 곧 말을 빼앗기게 될 말하는 염소 딜라몬드 교수만이 과거, 즉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외화 '위키드'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이처럼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 아래 담긴 '위키드'의 메시지들은 모두 지금 현실에도 유효하다.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고, 이에 침묵하고, 또 폭압의 역사를 부정하고 잊어가는 사회에서 '위키드'는 여러 가지 질문들을 남긴다.
 
우정과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위키드'의 중심축은 바로 엘파바와 글린다이고, 두 캐릭터를 연기한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엘파바와 글린다를 보여준다.
 
신시아 에리보는 토니상 여우주연상 수상자다운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다. '겨울왕국'의 엘사로 유명한 이디나 멘젤의 엘파바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신시아 에리보의 엘파바는 스크린뿐 아니라 무대에서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완벽하다.
 
특히 1막을 마무리하는 '디파잉 그래비티'가 신시아 에리보의 목소리를 타고 울려 퍼지는 순간 느껴지는 전율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라도 N차 관람을 할 수밖에 없다.
 
외화 '위키드'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글린다 역의 아리아나 그란데는 글린다라는 캐릭터의 특성을 특유의 음성과 노래 실력으로 잘 그려냈다. 특히 신시아 에리보의 엘파바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글린다의 음성은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또 다른 엘파바와 글린다 조합을 완성했다.
 
'위키드'가 갖는 독특한 지점 중 하나는 보통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외화의 경우 원어 버전을 선호하는 데 반해 많은 관객이 '더빙판'을 기대한다는 점이다. 뮤지컬 '위키드' 한국 초연부터 엘파바와 글린다를 맡아 '엘파박'과 '정글린다'라는 수식어를 얻은 박혜나와 정선아를 비롯해 국내 정상급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더빙에 참여했다. 신시아-아리아나 버전과 박혜나-정선아 버전은 각각 어떤 매력을 가졌는지 비교해 보는 것 역시 '위키드'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160분 상영, 11월 20일 개봉, 전체관람가.

외화 '위키드'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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