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만 18세, 아직 어린 나이지만 '성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나와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 '문을 여는 법'은 자립준비청년에게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응원함과 동시에 우리와 사회에는 그들이 문을 열 수 있도록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질문한다.
보육원을 나와 자립하게 된 하늘(채서은)은 부동산 중개인의 소개로 첫 자취방을 구한다. 자립 지원금 천만 원에서 한 줌 햇빛이 들어오는 방을 구하고, 하늘 취향의 가구와 소품들로 채우다 보니 어느새 통장 잔고는 0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집의 구조는 바뀌었고, 살림살이는 물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마저 모두 사라진 가운데 현금 인출기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인출기 화면에 나타난 '다시 시작하겠습니까' 문구와 함께 점점 좁아지는 집, 때마침 보육원 친구 철수(김남길)가 하늘을 돕기 위해 나타난다.
철수는 집을 되찾기 위해선 '노랑새'를 찾으라는 미션을 주고, 하늘은 '노랑새'를 찾기 위한 만만치 않은 여정을 시작한다.
'문을 여는 법'은 자립준비청년들의 사회 첫걸음을 응원하고, 사회적 관심을 독려하기 위해 배우 김남길과 KB국민은행이 함께 기획 제작한 영화다. 기본적으로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경쾌한 톤의 판타지 드라마로 접근하기 쉽게 만들었다.
자립준비청년이란 아동양육시설 및 위탁가정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되어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하는 청년을 의미한다. 만 18세 기점으로 그들을 '성인'으로 구분 짓지만, 사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도 관람할 수 없는 나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는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으니 '자립'해야 한다며 세상으로 등을 떠민다. 주인공 하늘도 만 18세가 되어 자립 지원금 천만 원을 들고 보육원을 나온다.
'문을 여는 법'은 지하철 계단을 올라 지상에 선 하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시작부터 하늘이 오로지 홀로 세상에 나와 '성인'으로서 자립해 나가야 함을 보여주는 영화는 곧바로 자립준비청년의 경제적인 자립 과정, 즉 본격적인 홀로서기의 현실을 그린다.
자립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하늘의 손에 쥐어진 돈은 천만 원. 많다면 많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집부터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새롭게 마련해야 하는 하늘에게 천만 원은 결코 많은 돈이 아니다. 성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천만 원은 사회가 일방적으로 건넨 최소한도 안 되는 출발선이
다. 더군다나 자취방 계약부터 모든 것이 하늘에겐 처음 만나는 순간들이다. 어른들조차 어렵고 낯선 세상을 하늘은 홀로 헤쳐 나간다.
하늘이 원한 건 그저 한 줌 햇빛이 들어오는 방이었다. 비록 반지하라 할지라도 그토록 바라는 햇빛 드는 방, 자신만의 방을 가진 하늘은 방을 조금씩 채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을 뜬 하늘 앞에 나타나는 건 자신의 집이 아닌 사방에서 자신을 옥죄어 오는 공간이다.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하늘 앞에 뜬금없이 나타난 어른이 된 철수(김남길)는 하늘에게 눈앞에 문을 열고 나가 '노랑새'를 찾으라는 미션을 부여한다.
정체불명의 문을 연 후 하늘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과 마주한다. 진실과 거짓의 방, 자동은 없는 자동 세차장 알바, 미아보호소 등의 장소에서 하늘은 자신의 과거를 마주한다. 모두 하늘의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은 채 상처로 남았던 기억들이다.
어른 철수의 조언에 따라 하늘이 열었던 문은 내면의 문이었다. 지금까지 홀로 살아내고, 견뎌내며 부딪혀야 했던 현실과 미처 고백하지 못했던 진실, 부모의 부재와 이로 인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외로움 등 자립준비청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고, 공감할 기억들이다. 그러한 과거를 하나씩 거쳐오며 하늘은 마음의 문을 점차 닫았을 테다. 결국 어른 철수가 준 미션은 하늘이 닫아놓았던 문을 열고 나오길,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선에 서길 바란 마음이었다.
한여름 밤의 꿈 같은 내면의 여정을 마친 하늘은 스스로 문을 만들어 열고 나온다. 그 과정을 통해 하늘이 배운 것은 그동안 애써 닫아왔던 내면의 문을 열어도 된다는 것, 문을 열고 도움을 청해도 된다는 것, 그리고 열면 안 되는 문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문이든 말이다.
내면의 여정을 판타지로 그려낸 영화는 혼자 외로움을 삼키고, 삼켜진 외로움을 다시 자기 안에 가둬두며 상처받아야 했던 하늘과 모든 자립준비청년에게 다정한 손길을 내민다. 문을 열고 나와도 된다고, 문을 열고 나오면 손잡아 줄 누군가가 서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문을 여는 법'은 자립준비청년에게는 다정한 응원을 보내는 동시에 우리 사회와 시스템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역으로 질문한다. 우리는 하늘이가 문을 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는지, 문을 여는 법을 알려주기 전에 문을 열어주고 문을 열고 나와도 되는 사회를 먼저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사회적이면서도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두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힘을 충분히 사용하며 재기발랄한 판타지로 풀어내되, 다정함과 세심함을 잃지 않으며 다가갔다. 여기에 채서은, 심소영, 노이진, 김남길, 고규필, 유현수는 엉뚱한 상상의 공간 안에서 각자 맡은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들의 호연 덕분에 영화가 관객들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한 가지 더 바란다면, 배우 김남길이 앞으로도 이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길, 우리가 먼저 문을 열고 다정함을 건네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
31분 상영, 11월 20일 롯데시네마 단독 개봉, 전체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