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앞으로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해외 출장 중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취지의 이 대표 발언과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은 국토부 협박이 이유라는 발언을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김 전 처장을 몰랐다고 한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1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 대표의 130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이 대표가 당선을 목적으로 고의로 이런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백현동 부분에서는 2021년 10월 20일 국정감사(국감) 전후로 이 대표가 한 말과 글이 핵심 판단 근거가 됐다.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정확하게 증언한 법정 증인도 없었다. 이 대표 본인이 한 국감 전후 발언이 발목을 잡고, 법정에 나온 증인들의 말이 이 대표를 옭아맨 모양새다.
경기도지사면서 대통령 후보로서 '백현동 발언'
백현동 발언은 2021년 10월 경기도 국감장에서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백현동 용도 변경' 발언의 의미는 이렇다. ①이 대표 당시 성남시장 방침과 달리 국토부의 의무조항에 근거한 변경 요구를 받고 불가피하게 용도 변경을 했고, ②바꾸지 않을 경우 국토부 공무원들이 성남시를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는 것이다.1심은 판결문에서 ①국토부 요구에 어쩔 수 없이 한 것이 아니라 이 대표 스스로 검토해 백현동 용도를 변경했고 ②그 과정에서 이 대표나 당시 성남시 공무원들이 협박을 당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국감에서 한 발언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이 대표 측은 국감에서 피감사기관의 기관장인 경기도지사의 지위에서 국회의원의 질문에 답했을 뿐이지 대통령 후보자로서 답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통령에 당선될 목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근거로 국감 전후로 이뤄진 이 대표의 인터뷰와 글을 들었다.
백현동 발언이 있기 한 달 전인 그해 9월 이 대표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국감을 치를 때마다 제 지지율이 오히려 올라갔다. 기회 요인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고 했다. 또 같은 해 10월 기자회견에서는 경기도지사로서 국감에 임하겠다고 하면서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한 정치공세가 예상되지만, 오히려 대장동 개발사업의 구체적 내용 등을 설명하는 좋은 취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감을 마치고 이 대표는 '토건 세력 특혜 폭탄 설계자는 국민의힘 전신 정권들과 관계자들임이 분명히 드러났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를 인용한 재판부는 이 대표의 '백현동 발언'은 유력 대권 후보자가 자신에게 불거진 대장동 백현동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함이라고 봤다.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 中 |
경기도지사이면서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이기도 했던 피고인(이 대표)은 국정감사를 지지율 상승의 기회이자,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한 의혹에 대응할 기회로 삼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백현동 부지 관련 의혹에 대응하는 이 사건 백현동 발언을 했다고 판단된다. 백현동 발언에 '당선될 목적'이 인정된다. |
성남시 주거환경과 주무관으로 일했던 한 공무원은 법정에 나와 "국토부의 협조 요청이 이 사건 의무조항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한국식품연구원 직원이 민간업자인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회장과 함께 국토부에 가 들었다는 발언도 적혔다. 그는 '의무조항을 근거로 국토부 장관이 성남시에 용도변경을 요구하면 성남시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에 국토부 공무원들이 '규정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명확히 말했다. 정 회장도 국토부 공무원들이 동조하거나 수용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 中 |
이 사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한 성남시 담당 공무원들은 모두 국토부가 이 사건 의무조항에 근거하여 용도지역 변경을 해주지 않을 경우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압박 내지 협박한 사실이 없다거나 그런 말을 못 들었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
재판 과정에서 이 대표에게 유리한 진술이 나오기도 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때 함께 일했던 직원 2명은 지난 6월 법정에 나와 국토부의 '압박' 발언을 들은 적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과의 관계, 관련 소문을 말해 준 사람 등을 명확하게 진술하지 못하는 점, 성남시장이던 피고인의 취재 요청에도 불구하고 관련 언론 보도가 없었던 점 등에 비춰 볼 때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4년 전 이 대표 살린 대법 판례…이번에는 적용 안 돼
이 대표 측은 국감이라는 특성상 말이 오가는 과정에서 표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즉흥성'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방점이 찍힌 2020년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이 대표 자신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른바 '권순일 판례'다.
친형 강제 정신병원 입원 의혹과 관련, 이 대표가 경기지사 후보 시절 'TV토론회'에서 했던 발언이 문제가 됐는데, 이 대표는 2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에서 극적으로 파기 환송됐다. 해당 판례는 토론 중에는 후보자 사이 질문·답변이나 주장·반론과 같은 공방에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면,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소 과장된 경우에도 허위사실 공표 행위로 평가해선 안 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 논리를 끌어와 국감장에서 발언 역시 토론회와 같이 봐야 주장했지만, 2024년의 1심 재판부는 대법원 논리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 대표가 국감 전 질의 의원으로부터 사전 질의를 받았고, 발언 도중 보여줄 패널까지 준비해 즉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이미 2017년 성남시의회에서 백현동 특혜 의혹이 한 차례 제기돼 이 대표가 대응한만큼 관련 내용을 환기할 시간도 충분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선거 과정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야 하지만, 허위사실 공표로 인해 일반 선거인들이 잘못된 정보를 취득하여 민의가 왜곡될 수 있는 위험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