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광'으로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골프 외교'가 주목받고 있지만 트럼프 당선인과 골프를 함께 친 국가정상급 지도자는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유일한 것으로 파악됐다.
1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서울 노원구의 태릉체력단련장(태릉CC)을 찾아 4시간가량 골프 라운딩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10일 "윤 대통령이 주위의 조언에 따라 트럼프 당선인과의 '골프 외교'를 위해 최근 골프 연습을 시작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골프광'임을 감안해 외교 행사를 대비해 골프 연습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 출범 분석 끝에 나온 대응이 고작 골프연습이라니, 실망을 넘어 실소가 나온다"며 "대통령이 국가 전략은 내팽개치고 외국 정상과 폭탄주나 마시고, 골프를 치려 하다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고 비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트럼프 1기' 4년간 골프장을 315회 방문했을 정도로 골프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재임 시절 주말이면 거의 빠짐없이 골프장을 찾았고, 휴가 중에도 매일 같이 골프장에서 포착됐다.
라운딩에는 참모진과 각료, 가까운 상·하원 의원뿐만 아니라 타이거 우즈, 잭 니클라우스 등 전현직 골프스타들이 동행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16년 11월 트럼프가 대선에 승리한 지 9일 만에 뉴욕을 찾아가 1천만원이 넘는 골프 드라이버를 선물하는 등 골프를 외교에 적극 활용했다. 두 정상이 골프를 함께 친 횟수는 총 5회로 16시간 10분에 달한다.
다만 아베 전 총리를 제외하고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골프를 친 국가정상급 지도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 소유 골프 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하다가 역풍을 맞아 골프를 취소하고 장소를 변경한 사례만 있었다.
지난 2019년 5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아일랜드를 방문하면서 현지 총리와의 정상회담 장소를 자신의 골프 리조트로 정했다가 아일랜드가 난색을 보이자 장소를 변경해 회담을 진행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듬해 열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본인이 소유한 골프 리조트에서 열겠다고 발표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틀 만에 취소했다.
'트럼프 2기'가 다가오는 지금도 골프 외교에 대한 각국의 언급이나 외신 보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현지 외신에서 다룬 골프 외교에는 우리나라가 등장한다.
11일(현지시간) 미국 NBC뉴스는 미국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 그룹 관계자가 "윤 대통령은 아베 전 총리의 전략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브리핑한 내용을 소개했다.
그들은 "아베가 트럼프를 상대하는 데 매우 유능했다"며 "지난해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인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 눈길을 끌었던 윤 대통령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아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골프를 많이 치지는 않는다고 들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그린에 오를 수 있다면 스윙을 한두 개 정도는 배울 수 있을 것"이라며 "이시바(현 일본 총리)는 골프를 잘 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우리나라 대통령이 골프를 외교로 활용한 첫 번째 사례는 고 전두환 씨다. 전 씨는 1981년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친선 골프를 치며 환담한 적이 있다. 이후 싱가포르, 캄보디아에서도 각국 정상들과 골프를 친 사례가 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 총리 등이 함께 골프를 치자는 의향을 내비쳤지만 재임 중 골프를 치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깅 등 다른 행사로 대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