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무소 옛터에서 75년 전 행방불명된 제주4·3 희생자 유해가 발굴됐다. 제주가 아닌 다른 지방에서 4·3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된 건 대전 골령골에 이어 두번째 사례다.
제주도와 4·3평화재단은 광주형무소 옛터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1구가 제주4·3 행방불명 희생자의 신원으로 확인됐다고 12일 밝혔다.
해당 유해는 4·3 당시 제주시 연동리 출신의 양천종(1898년생) 희생자로 양성홍 제주4·3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의 할아버지로 확인됐다.
양천종 희생자는 광주 북구 옛 광주형무소터 무연분묘에서 지난 2019년 12월 발굴된 261구의 유해가운데 1구다.
광주형무소는 1908년 광주감옥으로 출발해 1923년 광주형무소로 개칭됐고, 1961년에는 광주교도소로 명칭이 변경됐다. 1971년에는 현재의 북구 문흥동으로 이전했고 바로 이곳 무연분묘터에서 법무부 관리 111구를 포함해 모두 261구의 유해가 발굴된 것이다.
특히 광주형무소에는 179명의 제주도민이 재판을 받고 수감됐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도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광주형무소 옛터 발굴유해의 유전자 정보를 4·3 희생자 유가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한 결과, 양천종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주4·3 평화재단에 따르면 양천종 희생자는 4·3 당시 집이 불에 타자 가족들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에서 피신 생활을 했고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공작으로 귀순했다.
또 주정공장에서 한 달여간 수용생활을 한 후 풀려났지만 1949년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다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
같은해 11월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내용의 안부편지 이후 갑자기 12월 4일자로 사망했다는 광주형무소의 통보가 가족들에게 전해졌고 끝내 시신은 수습하지 못했다.
양천종 희생자의 유해는 오는 12월 16일 광주에서 유가족과 제주4·3 희생자유족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계 절차를 거쳐 유족회 주관으로 화장된다.
다음날인 12월 17일에는 항공편으로 75년 만에 고향 제주로 유해가 돌아와 봉환식과 함께 신원확인 보고회가 열린다.
광주형무소에서 양천종 희생자가 발굴됨에 따라 지난해 9월 신원이 확인된 대전 골령골 김한홍(제주시 조천면 북촌리 출신) 희생자에 이어 다른 지방에서 발굴된 제주4·3 희생자 두번째 사례가 됐다.
제주도와 다른 지방에서 유해가 발굴돼 신원이 확인된 4·3 희생자는 145명으로 타지방 2명을 제외한 나머지 143명은 제주도내에서 발굴됐다.
제주도는 올해 대전 골령골 70구와 경산 코발트 광산 42구 등 도외지역 발굴유해 112구에 대해 행방불명 4·3희생자 유가족 2233명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또 대전골령골과 경산 코발트광산, 전주 황방산, 김천 등의 발굴유해에 대해서도 다른 자치단체와 협력해 4·3 희생자 신원을 확인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