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아들, 코피 흘리며 당구 치더라" 역대 최연소 챔피언, 부모가 들려준 탄생 비화

김영원이 1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 24-25' 남자부 결승에서 오태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숫자로 자신의 이름을 표현하는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PBA

코피를 흘리면서도 큐를 놓지 않았던 12살 꼬마가 당당히 프로당구(PBA) 챔피언에 올랐다. 17살 천재 김영원이 PBA 최연소 우승을 이루며 화려하게 잠재력을 꽃피웠다.

김영원은 1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 24-25' 남자부 결승에서 '토르' 오태준(크라운해태)을 눌렀다. 세트 스코어 4 대 1(15:13, 15:5, 7:15, 15:12, 15:8) 승리로 정상에 등극했다. 이닝 평균 1.595점으로 1.293점에 그친 오태준을 압도했다.

17세 23일, 김영원은 역대 최연소 챔피언에 올랐다. 2019년 출범한 PBA에서 10대 우승도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2020-21시즌 개막전인 SK렌터카 챔피언십에서 여자부 김예은(웰컴저축은행)이 20살 11개월 13일 우승이 최연소 기록이었다.

그야말로 천재의 탄생이다. 김영원은 2022-23시즌 챌린지 투어(3부)에서 만 15세로 PBA에 데뷔해 지난 시즌 드림 투어(2부)로 승격해 두 차례 준우승을 기록했다. 1부에서도 지난 시즌 휴온스 챔피언십에서 벨기에 강호 에디 레펀스(SK렌터카)를 꺾는 등 32강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김영원은 올 시즌 1부 투어로 승격해 개막전인 우리금융캐피탈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그러더니 6차 투어에서 기어이 정상에 올라 상금 1억 원을 차지했다.

4강전에서 김영원은 시즌 3번째 우승을 노리는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크라운해태)를 누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김영원은 결승에서도 1, 2세트를 따내며 기세를 이었다. 2번째 결승에 오른 오태준도 3세트 6이닝 뱅크 샷 2방 등으로 15 대 7(6이닝)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김영원은 17살답지 않게 노련했다. 4세트를 15 대 12(12이닝)로 따내며 승기를 잡은 뒤 5세트 2이닝 6점을 퍼부어 오태준의 기를 꺾었다. 오태준도 안간힘을 썼지만 김영원이 뒤돌리기와 옆돌리기를 침착하게 성공시켜 우승을 확정했다.

김영원이 1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 24-25' 남자부 결승에서 오태준을 상대로 샷을 구사하고 있다. PBA

경기 후 김영원은 "첫 우승이라 얼떨떨하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어 "개막전 때 결승에 올라갔는데 준우승이 좋은 경험이 됐고 그래서 우승할 수 있었다"면서 "개막전 때는 초반 앞섰는데 강동궁(SK렌터카) 선수가 오히려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쫓아오는 게 압박이 되더라. 그래서 '템포를 차분하게 유지하는 게 좋겠구나'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당시와 달리 김영원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머리를 짧게 깎았다. 이에 대해 김영원은 "개막전 이후 초반 탈락했는데 많아진 생각을 비울 겸,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머리를 밀었다"면서 "대회 3일 전에 거의 삭발을 했는데 주위에서 엄청 당황을 하고 놀라더라"고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김영원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 김창수 씨(43)와 어머니 안효정 씨(42)다. 경기장에서도 마음을 졸이며 아들의 우승을 바랐던 부모는 기자 회견실에도 함께 했다.

김 씨는 "평소 내가 당구를 즐기는데 아들이 따라와서 배우더라"면서 "초등학교 6학년인 12살 때 처음 큐를 잡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다른 운동도 했지만 잘 하지 못했는데 당구는 달랐다"면서 "12시간씩 당구를 치더니 코피가 나는데도 공을 뺏을 때까지 치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김영원은 "아버지가 당구를 좋아하시는데 28점 정도 치신다"면서 "아빠랑 같이 당구를 하고 싶어서 12살 때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1년이 지나 중학교 1학년 때 25점 정도 치고 선수를 해도 되겠다 싶어서 결심을 했다"고 덧붙였다. 김영원은 2021년 전국종별학생당구선수권대회 3쿠션 중등부 1위에 오른 뒤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고교 진학 대신 PBA로 뛰어들었다.

이후로는 자신과 싸움이었다. 김영원은 아침 8시부터 저녁 6, 7시까지 홀로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개막전 준우승 뒤 눈물을 흘린 김영원은 "그동안 훈련을 해왔던 게 생각나서 벅차올랐다"면서 "노력한 게 갑자기 생각났고, 힘들었던 게 기억났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영원이 기자 회견 뒤 아버지, 어머니와 흐뭇한 우승 포즈를 취하고 있다. PBA

부모도 그런 아픔을 알고 있다. 김 씨는 "아들이 선수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동호인 수준이라 가르쳐줄 수 없으니 네가 알아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면서 "초창기 가장 기본적인 레슨을 빼고는 거의 아들이 동영상 등을 보면서 독학으로 실력을 키웠다"고 돌아봤다.

물론 스승이 없지는 않았다. 김영원은 "해커 삼촌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해커는 유명 당구 유튜버로 PBA에 와일드카드로도 나와 '최강'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을 꺾는 등 만만치 않은 실력을 뽐냈다. 아버지 김 씨는 "초창기 아들이 해커를 비롯해 여러 삼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귀띔했다. 김영원은 강동궁 아카데미에도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각고의 훈련이었다. 김영원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동호인 분들, 선수들과 당구를 재미있게 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에는 점심에 당구장에 나와서 몸을 풀고 손님들과 경기를 많이 했다"면서 "8시 이후 귀가해서는 경기를 복기했다"고 덧붙였다.

김영원이 올 시즌 개막전 결승에서 패배가 확정되자 눈물을 쏟는 모습. PBA


고교 진학은 포기했지만 영어 공부는 놓지 않고 있다. 이것도 당구 때문이다. 김영원은 "외국 선수들과 소통이 되면 공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다"면서 "그래서 영어를 필수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17살에 거금 1억 원을 거머쥐었지만 오로지 당구 생각뿐이다. 김영원은 "상금을 어떻게 할지 상상해본 적은 없다"면서도 "아버지와 개인 훈련실을 마련하자고 얘기했다"고 귀띔했다. 물론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만나 밥도 먹고 게임도 하고 놀러도 가는 10대지만 최대 관심사는 당구다.

이제 10대 천재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린다. 김영원은 "우승을 1번 했기 때문에 2번째, 3번째 우승을 목표로 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롤 모델은 3쿠션 세계 랭킹 1위 딕 야스퍼스(네덜란드)와 PBA 2년 연속 대상을 받은 조재호(NH농협카드), 원조 당구 천재 김행직(전남-진도군청)이다. 이런 기세라면 이들과 충분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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