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전자) 기타 연주가 격해졌고, 무대 위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왔다. 익숙한 전주가 나오자, 관객석은 단숨에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9일 저녁 6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케이스포돔)에서 김재중과 김준수가 '제이엑스'(JX)라는 이름으로 연 합동 콘서트 '아이덴티티'(IDENTITY) 둘째 날 첫 곡은 동방신기(TVXQ!)의 대표곡인 '라이징 선'(Rising Sun)(순수)이었다.
유노윤호·영웅재중·믹키유천·시아준수·최강창민까지 총 5인으로 데뷔해 신드롬적인 인기를 끌고, '2세대를 열었다'라는 평가를 받는 그룹 동방신기는 전속계약 분쟁으로 인해 김재중·박유천·김준수가 팀을 탈퇴하고 현재 유노윤호·최강창민으로 활동 중이다.
이날 JX의 콘서트 세트 리스트는 5인 시절 동방신기 곡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앙앙코르였던 '러브 인 디 아이스'(Love In The Ice)까지 총 25곡(완곡하지 않고 일부만 부른 곡까지 전부 포함) 중 18곡이 동방신기 시절 노래였다. 양쪽 소속사에 따르면, 이번 '아이덴티티' 콘서트 세트 리스트는 '팬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곡들로 의견을 모아' 구성했다고.
두 번째 곡은 일본 발표곡으로 한국어 번안 버전도 나온 '퍼플 라인'(Purple Line)이었다. 곡명에 맞게 무대 위 조명도 보랏빛으로 변한 가운데, 일렉 기타와 드럼 사운드가 특히 돋보이는 밴드 라이브 연주와 함께 모처럼 두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는 '퍼플 라인'이 체조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대표적인 SMP(SM Music Performance) 곡으로 꼽히는 '오정반합'(O-正.反.合)에서는 고음은 물론 댄스 브레이크까지 너끈히 소화했다.
합동 콘서트를 위해 15~20년 전 노래의 무대를 준비한 것에 관해, 두 사람은 어느 정도 걱정했다고 밝혔다. 김준수는 "사실 어제(8일) 좀 긴장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거의 20년 만에 부르는 곡들이 있다 보니까… 물론 우리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여러분들이 이걸 얼마나 좋아해 주실까 하는 기대 반 걱정 반이 있었는데 어제 무사히 잘 끝났다. (오늘도) 여유롭게 즐기면서 그렇게 잘 마지막까지 잘 가볼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제가 어제 느낀 게 있다"라고 한 김재중은 "저희가 오랜만에 부르는 노래와 음악이 있다 보니까 '어, 내가 단숨에 같이 따라 불러도 되는 건가?' 하고 몇 초의 딜레이(지연)하는 분들을 (관객석에서) 발견했다. 생각나시면 바로 부르셔도 좋다, 한마음으로"라고 권했다.
"여러분들은 저희 (공연에서) 뭐 부르는지 전혀 모르시지 않나"라고 하자 "네!"라고 하는 관객을 향해 김준수는 "거짓말하네~"라며 웃은 후, "그러면 너무 놀라시겠다. 여튼 여러분들의 연기가 참 대단한 걸 알았다. 마지막까지 정말 오랜만에 듣는 곡들로 거의 모두가 꾸며져 있으니까 여러분들은 그저 즐겨주시면 된다"라고 말했다.
예고한 대로 김재중과 김준수가 속해 있던 시절 동방신기 노래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발라드 섹션이었다. 밴드는 금세 감미로운 분위기로 변했고, 두 사람은 핸드 마이크로 '왓에버 데이 세이'(Whatever They Say)를 라이브를 들려줬다. 후렴을 포함해 화음 파트가 특히 많았던 '믿어요'를 부른 두 사람은 손을 잡는 것으로 훈훈하게 무대를 마무리했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만큼, '스카이'(Sky) '스탠드 바이 유'(Stand By U) '아스와 쿠루카라'(明日は來るから, 내일은 오니까) '도우시테 키미오 스키니낫테시맛탄다로'(どうして君を好きになってしまったんだろう?, 왜 너를 좋아하게 돼 버렸을까?) '비긴'(Begin) '프라우드'(Proud)처럼 '토호신기'(Tohoshinki)로 발표한 곡도 이날 공연에서 무대에 올렸다. 토호신기는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불린 이름이다. 또, 일본어 곡은 좌우 전광판을 활용해 일본어 가사와 한국어 뜻을 띄워 관객들을 배려했다.
가벼운 안무를 곁들인 밝은 분위기의 '스카이'를 부를 때, 김준수는 "여러분 이 노래 아시나?"라며 관객들을 일으켜 세웠다. 같이 춤춰달라고 요청한 김준수는 화려한 골반 돌리기는 물론 꽃받침 포즈로 어마어마한 환호를 끌어냈다. '스탠드 바이 유'부터 '아스와 쿠루카라' '도우시테 키미오 스키니낫테시맛탄다로'의 발라드 섹션에선 두 사람의 20대 시절 영상이 등장해 장내를 뭉클하게 했다.
"이번 콘서트가 너무 오랜만이기도 하고 사실 또 언제 다시 하게 될지 모를 콘서트이기 때문에"라고 운을 뗀 김준수는 "좋은 곡들을 많이 들려드리고 싶어서 일본에서 들려드렸던 토호신기의 노래를 불러봤는데 어떠셨나. (여러분) 입 모양을 보니까 다 따라 불러주시더라. 너무 감사하다. 너무 꿈만 같다"라고 감격스러워했다.
김재중은 "저희 둘이 함께해서 그동안 부르지 못했던 노래를 여러분들 앞에서 부르고는 있지만 아직도 못했던 이야기가 참 많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사실 '저희들은 그랬었지' 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뭔가 말 못 할, 그리고 말 못 한 이야기가 어쨌든 이 음악 속에 놓여 있다. 이 음악을 느낄 때, 노래를 할 때 답답함이 좀 해소되는 게 있는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그러자 김준수는 "노래할 때 팬분들 보면서 노래하는 것도 너무 울컥하지만, 제가 발라드 하면 거의 오른쪽 끝에 있고 재중이 형이 가운데쯤 있었고 화음 할 때 이런 식으로(서로 바라보며) 했다. 막 그 생각이 나면서… 형 눈을 보고 싶은데 울까 봐"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도 그때 시절로 돌아간 듯하고 그 시절이 저희에게는 어떻게 보면 아프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하고 그게 되게 복잡미묘하게 있는 추억들"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 노래를 또 여러분들이 들으러 와 주셨고 여러분 앞에서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영광스럽고 너무나 기쁘고 오늘 너무나 행복한 거 같다. 너무나 감사드린다"라고 부연했다.
공연 중반부는 개인 무대가 등장했다. 김준수는 '타란탈레그라'(Tarantallegra) '꽃' '락 더 월드'(ROCK THE WORLD)를, 김재중은 '디보션'(Devotion) '서머 제이'(Summer J) '글로리어스 데이'(Glorious Day)로 각자의 개성이 담긴 음악색을 보여줬다.
베이스와 기타 연주가 인상적이었던 '더 웨이 유 아'(The Way U Are)에서는 팬들의 응원법이 뒤따랐다. 김재중과 김준수가 노래 한 소절을 부르고 나면 '영웅재중' '시아준수'라는 옛 활동명을 외치는 함성이 우렁찼다. 기세를 이어받은 마지막 곡은 '주문-미로틱(MIROTIC)'이었다. 밴드 라이브로 편곡해 새로운 강렬함을 선사했다. 이렇게 본 공연이 끝났다.
앙코르곡은 '허그'(Hug)였다. 교복 스타일링을 하고 나온 두 사람은 앉아서 그들의 '처음'을 노래했다. 가장 어렸을 때 부른 데뷔곡이라 그런지, 특히 멤버들의 깜찍함이 두드러졌다. 댄스 브레이크에서 작은 실수를 하고 "내가 틀렸다!" 하고 큰 소리로 실토한 김재중은 '야옹' 하며 고양이 같은 포즈를 취했고, 손하트를 그렸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어깨동무한 채로 노래하기도 했다.
김재중과 김준수의 미성이 인상적인 '풍선'(Balloons)을 부를 때는 무대를 벗어나 1층과 2층 객석으로 가 팬들과 더 가까이 호흡했다. 이동차를 타고 2층을 돌아다닐 때 어느 때보다 큰 함성이 쏟아졌다.
JX로 뭉친 후 '5세대 아이돌'을 자처하는 이들은 노련하게 다양한 표정과 애교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준수는 김재중을 바라보며 "형은 진짜 잘한다. 오늘 재중이 형이 론칭한 그룹분들이 오셨는데, 대표님이 이러고 있는 모습 보는 거 어떻냐?"라고 해 폭소를 자아냈다.
김재중은 '21년 차의 진득한 애교를 보여줬다' 같은 제목의 기사가 나갈 수 있게 하자며 김준수에게 애교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김준수는 "애교를 보여준다? 사실 제가 이런 걸 잘 부끄러워하고 민망해한다. 은근히 좀 이런 게 낯간지럽고…"라고 경계하다가 꽃받침을 한 모습으로 호응을 받았다. 김준수를 보고 "진짜 변한 게 없다. 화면으로 보니까 너무 똑같다"라고 한 김재중은 "요즘 많이 하는 거"라며 아궁빵(아기궁뎅이빵) 포즈를 취했다.
팬들과 함께 완성한 노래도 있었다. '넌 언제나' 무대 때 김준수가 "지금부터 여러분만 노래 불러보겠다. 어제보다 더 잘 불러야 한다"라고 하자, 팬들은 정연한 떼창으로 화답했다. 본 공연을 마친 후 앙코르 시간에는 팬들이 '돈트 세이 굿바이'(Don't Say Goodbye)를 부르는 이벤트도 있었다. 김재중은 "너무 잘 불러. 아니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하냐"라고, 김준수는 "옷 갈아입으면서 감동받았다"라고 감탄했다.
"불러줘! 불러줘!"라는 연호가 나오자, 김준수는 원래 이 곡을 세트 리스트에 넣을까 고민했다는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을 드리고 싶어서" 결국 빠졌다고 덧붙였다. 김재중은 다시 한번 팬들이 부르는 '돈트 세이 굿바이'를 듣고 싶다며 밴드 연주를 부탁했다. 두 번째로 부른 '돈트 세이 굿바이'는 김준수도 함께 불러 아름답게 완성했다.
김재중은 "저는 화면 속 여러분을 봤었는데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을 보면서도 사실 저는 되게 속으로는 너무 미소를 짓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뭔가 그립고 슬프고 외롭고 그런 감정보다도 결국에 지금 같이 있지 않나. 지금 함께하고 있는 이 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JX 콘서트를 다시 연다면 '돈트 세이 굿바이'를 부르겠다고 밝힌 김준수는 "이 노래는 정말 부르기 힘들더라. 정말 눈물 많이 나오고. 이 노래가 저희가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불렀던 한국에서의 노래여서 그런지 몰라도 유독… 의미가 남다른 곡"이라고 고백했다.
코러스, 댄스 크루, 밴드 등 공연을 함께 만든 주역을 소개한 후, 이번 공연 안무를 전담한 정건영 퍼포먼스 디렉터를 무대 위로 올려 고마움을 전했다. 제이와이제이(JYJ) 시절의 곡 '엠프티'(Empty)로 공연을 끝내는 듯했으나, 앙앙코르(앵앵콜)곡 '러브 인 디 아이스'로 180여 분의 공연을 끝맺었다.
빠르게 전석 매진돼 시야제한석까지 추가 판매한 이번 서울 공연은 관객의 열기로 가득했다. 소속사는 오늘(10일) 열리는 마지막 날 공연까지, 회당 1만 명씩 총 3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설명했다. JX는 12월 14~15일 일본 사이타마 베루나 돔에서도 '아이덴티티' 공연을 잇는다.
▶ 11월 9일 '아이덴티티' 세트 리스트 |
1. 라이징 선 2. 퍼플 라인 3. 오정반합 4. 왓에버 데이 세이 5. 믿어요 6. 스카이 7. 넌 언제나 8. 그리고… 9. 타란탈레그라+꽃 10. 락 더 월드 11. 디보션 + 서머 제이 12. 글로리어스 데이 13. 스탠드 바이 유 + 아스와 쿠루카라 + 도우시테 키미오 스키니낫테시맛탄다로 14. 비긴 + 프라우드 15. 더 웨이 유 아 16. 주문 (앙코르) 17. 허그 18. 풍선 19. 엠프티 (앙앙코르) 20. 러브 인 디 아이스 ※ 완곡하지 않고 일부만 부른 노래도 모두 세었을 때 25곡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