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올 여름 전기세 5만 원…지구를 위한 응답이에요" ②"기후위기, 혼자 아닌 함께"…순천생태학교 '첫 발' ③"이렇게 하면 바뀌겠죠" 효천고 기후환경 동아리 '센트럴' ④뚜벅이 환경공학자의 '자동차와 헤어질 결심' (계속) |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 불평등을 줄이는 게 '기후정의'예요. 정치가 정책 결정을 통해 기후 약자들을 대변해 줘야 하고요. 기후정의와 기후정치가 중요한 이유죠."
국립순천대학교 환경공학과 박성훈 교수(53)는 편도 30여 분이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한다. 기록적인 폭염에도, 이례적인 가을 폭우에도 예외는 없다. 우비와 장화를 마련했다. 10년간 편도 4km 거리에 거주할 때는 자전거가 교통수단이었다.
박 교수의 부인 김인아씨의 생활도 마찬가지. 10km 걷는 건 일상이다. 대중교통과 걷기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부부가 선택한 일들이다.
박 교수는 대기 오염을 전공한 기후전문가로서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자동차 사용을 꼽으면서, 이를 주제로 한 강연이나 포럼장에 갈 때 자동차를 끌고 가는 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가 자동차와 헤어질 결심을 한 가장 큰 이유이다.
"대기 환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동차 위주로 된 교통문화가 기후위기의 주범이자 도심 대기 오염원이라는 걸 알죠. 특히 교통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대기 환경을 못 살린다는 건 더 잘 알구요. 그런데 이런 내용을 전달하는 제가 정작 자동차를 타고 가는 모습이 스스로 부끄럽더라고요."
박 교수는 대기오염 모델링을 연구하는 환경공학자이다.
환경공학에 관해 묻자 그는 "공학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대기가 더러워지지 않게 미리 대비하는 기술로, 현재의 대기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 어떻게 기후가 변할 것인지 예측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기후 정책을 제시하는 게 이 분야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10년 째 기후위기 관련 강의에서 그가 강조하는 내용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기후정의·기후정치이다. 이 중 '기후정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모든 정책의 전제가 되는 개념이다. 기후정의가 성립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 나라 안에서도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자는 저소득층과 농민, 어민, 노령층, 기성세대보다 청소년 세대에, 현세대보다 미래 세대에 더 가혹한 현실이 되고 있죠. 온실가스의 약 70%는 세계 인구의 20%인 선진국들이 배출하면서 그 피해는 온실가스의 약 3%만을 배출하는 저위도 개발도상국의 10억 명이 겪어요."
이러한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게 '기후정의'이다. 그리고 기후정치는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한데, 기후 약자들을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논해야 할 정치가들이 극소수라는 것. 대의민주주의는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대의민주주의는 기후정치를 일궈낼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게 명백히 보이는 상황에서 단순히 탄소중립이 아니고 정의로운 전환을 통한 탄소중립으로 가자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에너지를 훨씬 덜 소비하는 사회로 개편해 가면서,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받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가 자동차와 헤어질 결심을 한 이유도 기후정의와 맞닿아 있다. '공공재'인 도로를 차를 가진 사람들이 독점하고 차를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외되지만 대기오염 피해는 차가 없는 사람이 더 크게 입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의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건 어떤걸까?
박 교수는 교통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의 에너지 사용 수준을 줄여야 하는데 교통 정책으로서는 '차 수요'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이 대폭 수정돼야 한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교통정책은 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피해 기후정의와 대응까지 실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2050년을 목표로 탄소중립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비현실적인 방법론이예요. 자동차를 줄이는 정책은 없고 전기차로 바꾸자는 정도에 그치고 있잖아요. 그리고 속도도 처음부터 대폭 탄소를 줄인 후 서서히 줄여가는 방식으로 가야 하는데 그 반대이고요. 탈원전과 지금의 에너지 사용 수준을 줄이는 일이 필요함에도 이에 대한 정책은 아직 뚜렷하지 않아요."
대자보 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순천시에 대해서는 말뿐인 구호라고 꼬집기도 했다. 버스 노선을 증편하고 도시 인프라를 조성하는 일이 함께 추진돼야 하는데 삶의 방식을 전환하는 방향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탄소중립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삶의 방식을 바꿀 정도의 정책 전환이 필요한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조곤조곤한 말투를 잃지 않으면서 날카롭게 핵심을 뚫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터뷰를 포함한 모든 강연에서 그렇다. 아울러 그의 철학 저변에 있는 생태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노래하는 공학자'란 별명이 있는 박 교수는 작곡으로 전국오월창작가요제에서 두 차례 수상하고 대상까지 받은 가수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남성중창 그룹 '중년 시대'와 순천지역의 시 노래밴드 '등걸'에서 작곡자 겸 가수로 활동해 왔다. 지금은 순천 지역에서 '월간 박성훈'이라는 콘서트도 매달 연다.
과학이 일상으로 들어온다는 건/밥과 물과 똥과 모든 것이 돌고 돈다는 것/그것은 우리가 지구를 세상 모든 생명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죠/(과일집에서)
오랜동안 민중가요와 같은 음악이 그의 인생에서 주를 이루다 3년 전부터는 환경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2021년 그의 지인인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의 제안으로 과학예술융합 프로젝트에서 '과학과 생태계의 만남'을 주제로 한 음악 작업을 맡게 됐다. 그때 완성한 창작곡 '똥이 돈이 되고 돈이 똥이 되는 이런 상상', '과일집에서', '코로나 이후' 등 10곡을 앨범에 담았다. 이제는 의도적으로 환경을 노래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후정치'를 실현할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다.
"텀블러와 에코백 사용과 같은 개인적인 실천을 넘어 사람들이 연대해 힘을 모을 수 있는 큰 실천이 필요한데 이게 바로 '기후정치'입니다. 기후정책에 의지가 없는 거대 정당을 압박해 정책적인 변화를 일궈내야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기후정치의 역할이죠. '이거 안 하면 표 못 얻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 기후정의를 위한 기후정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을 위한 정치가 발현될 수 있도록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연대해서 함께 목소리를 높여야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