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기관장 '늑장인사'…겉도는 정부 인사시스템

경북대 노천박물관의 모습 사진 오른쪽으로 3층 석탑이 현대식 건물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재기 기자
'인사는 만사다'라는 말을 흔히 하지만 이 정부들어 지적되고 있는 늑장인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시스템 속의 사람이 일을 하고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체는 경영자다. 공기업이나 대학은 이사장이나 총장이 그 역할을 한다. 최근 일부 국립대학과 공공기관의 수장 인사가 지연돼 기다림에 지쳐가는 기관들이 많다.
 
국립 경북대학교는 총장이 지난달 20일 임기가 끝나 퇴임했다. 부총장이 권한대행을 맡아 학교를 이끈 지 3주가 지났다. 이 학교는 총장 임기 만료에 대비해 선거를 거쳐 후보자를 확정한 뒤 지난 8월 교육부에 추천했다.
 
총장선거로부터 4개월, 교육부 추천으로부터 2개월이 넘도록 총장 임명은 감감소식이다. 이 기간 중 용산 대통령실에서 해당 후보자 2명에 대해 인사검증을 실시한 뒤 아무런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업무공백에 대비해 부총장 대행체제를 가동했지만 주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은 올스톱된 상황이다. 학교 구성원들은 임명이 지연되는데 대해 아무런 설명없이 차일피일 지연되기만 하자 학교업무에서 벌어지는 부작용과 관련해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학교 A교수는 "총장이 공석이라 불편한게 적지 않다. 예를들어 학교에서 첨예한 쟁점이 되는 학과구조조정만 봐도 자기들 과를 없애는 데 찬성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한데 임시체제로는 업무 추진이 될 수가 없다. 지금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B교수는 "글로컬 사업도 착수를 해야 하고 라이즈 사업도 있는데 지금으로선 힘을 갖고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의대문제도 해결이 되지 않았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총장)공석 사태가 길어진다면 학교 운영에 어려움이 더 커질 것이라 생각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학교측은 정부지원사업인 라이즈사업 계획서 준비작업 등 의사결정 없이 가능한 일상(루틴한) 업무를 중심으로 학사일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립대 총장 인사가 지연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정부들어서도 이같은 문제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학들이 총장 임기만료에 대비해 선거를 치르고 관련 절차를 서둘러봤자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대통령실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상황이다. 
 
인사지연의 문제는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공기업의 기관장 인선은 차일피일 지연되는 정도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CBS취재 결과, 2024년 공기업의 대표적인 늑장인선 사례는 한국전력기술과 한국연구재단, 부동산원 등 이다. 
 
한국전력기술은 지난 5월 현 이시장의 임기가 만료됐다. 이사장의 임기가 종료되고도 근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김태균(전 한국전력 본부장) 이사장 후보자가 지난 5일 추천됐다. 산업부 추천과 기재부 주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등의 절차를 감안할 경우 인사절차를 더욱 서둘러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5개월여 늑장인사가 된 건 인사권 행사단계에서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부인선과 무관하게 사내 절차인 이사회 일정을 감안하면 근 1년 가까이 새사업이나 핵심업무 처리가 늦어진 경우다.
 
한국연구재단 역시 이광복 이사장의 임기가 9월 26일로 만료됐지만 후임인선은 현재까지 진행중이다. 재단에서는 이미 지난 8월 임원추천위원회를 가동해 후보자 선발 절차를 서둘렀지만 후임자가 언제 부임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커다란 원형의 고리는 학문의 순환과 끝없는 창조 및 한국연구재단의 세계화를 상징하고, 두개의 띠는 인문과 과학의 통합을 의미한다. 한국연구재단 제공

부동산원은 지난 2월 현직 원장의 임기가 만료된 뒤 공모절차가 진행중이지만 후임자가 언제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정부 출범 초기인 지난 2022년초에 있었던 공기업 인사적체가 정권이 반환점을 돈 시점까지도 계속 이어지는 것은 인사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시각도 있다.
 
정권초기에는 정권교체로 인사요인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사적체를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돈 시점까지도 비슷한 적체가 계속되고 일부의 반년~ 근 1년에 가까이 지연된 사례는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장 인선은 해당기관이 후보자를 확정 소속된 정부부처에 추천을 하면, 용산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인사검증과 대통령의 임명 순으로 진행된다. 적임여부와 흠결을 찾기 위해 검증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걸 이해해야 한다 하더라도 지연된 기간이 반년이나 된다면 시스템의 문제를 따져봐야할 수준이다.
 
인사는 오로지 인사권자에 귀속되는 권한이라도, 많은 기관들이 법규에 따라 정한 임원 선임의 프로세스가 지켜지는 선에서 행사되는 것이 당연하다. 대통령실은 인사의 지연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해당기관은 물론이고 국민생활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나 공공기관들은 저마다 정해진 분야에서 국민들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고유의 업무가 있고, 그 기관이 인사지연으로 부작용이나 피해를 입을 때 국민에게도 그 여파가 미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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