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7일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여론 악화가 심화되자 사과를 표명한 것이다. 김 여사의 대외 활동에 대해선 "국민들이 싫다고 하면 안 해야 한다"고 했으며, 김 여사를 공식 보좌할 제2부속실장을 발령했다고 공개했다.
명태균 씨와 통화 녹음 공개, '공천 개입' 의혹에 대해선 "부적절한 일을 한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다"며 적극 반박했다. 야당이 추진하는 '김건희 특검법'과 관련해선 "사법 작용이 아닌 정치 선동"이라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尹, 125분 간 27개 질의응답…"국민들께 걱정 드려" 사과 표명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8월29일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 이후 70일 만에 기자들 앞에 선 것이다.윤 대통령은 브리핑룸 단상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준비해 온 대국민 담화를 약 15분 간 읽은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지난 8월의 경우 집무실에서 국정브리핑을 40여 분간 진행한 뒤 브리핑룸으로 이동해 단상에 서서 질의응답을 했는데, 형식면에서 다소 달라진 셈이다.
짙은 남색 정장에 보라색 넥타이 차림을 한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경기와 물가를 걱정하며 "국민 여러분 보시기에는 부족함이 많겠지만 저의 진심은 늘 국민 곁에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저의 노력과는 별개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린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담화에서는 '국민'이 25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됐고 '미래'와 '개혁'이 각각 8번, '민생'과 '위기'가 각각 7번 언급됐다.
회견은 125분 간 진행됐고 총 27개의 질문이 나왔다. 김 여사 논란 및 대외 활동 중단, '정치브로커'로 알려진 명씨와의 관계와 '공천개입' 의혹,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 입장 등 갖가지 주제로 질문이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회견이 2시간 가까이 이어지자 다소 힘든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계속 나오는 질문에 회견을 종료하지 않고 답변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문제에 대해선 "매사에 더 신중하게 처신해야 하는데 이렇게 국민들한테 걱정을 끼쳐드린 것은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과 함께 선거도 치르고 대통령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라며 "예를 들어 대통령이 참모를 야단치면 (부인이) '당신이 부드럽게 하라'고 하는 것을 국정 관여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 선거도 치르고, 국정을 원만하게 하길 바라는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하면 국어사전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국정 개입' 의혹엔 선을 그었다.
김 여사 대외활동과 관련해선 "결국 국민들이 좋아하시면 하고 국민들이 싫다고 하면 안 해야 한다"며 "지금의 여론을 충분히 감안해 외교 관례와 국익상 반드시 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중단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답변 과정에서는 "앞으로 부부싸움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며 "어떤 면에서 보면 (아내가) 순진한 면도 있다.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바탕에서 잘못을 엄정히 가리자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김 여사는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해외 순방에 동행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개인 전화로 사적인 소통을 이어가며 각종 논란이 불거진 게 아니냐는 질의에 대해선 "저도, 제 처도 취임 후 휴대폰을 바꿨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나중에 무분별하게 언론에 (통화 내용이) 이렇게 까지고(까발려지고), 이런 생각을 그때 못했던 것 같은데 이게 전부 제 책임"이라고 답했다. 또 2021년 국민의힘 입당 직후 연락이 쏟아지자 김 여사가 대신 답변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조금이라도 누구한테 도움받으면 말 한마디라도 인연을 못 끊고 고맙단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이런 문제가 좀 생긴 거 같다"고도 덧붙였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조만간 개인 휴대전화 번호도 바꿀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또 "아내가 의도적인 악마화나 가짜뉴스, 침소봉대로 억울함도 본인은 갖고 있을 것이지만 그보다는 국민에게 걱정 끼쳐드리고 속상해하시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다"며 "아내는 '괜히 임기반환점이라 해서 그동안의 국정 성과만 얘기하지 말고 사과를 많이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밖에 김 여사의 공식 활동을 보좌할 제2부속실을 정식으로 출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尹, '김건희 특검법' "사법 작용 아닌 정치 선동" 반대 입장 명확
윤 대통령은 야당이 추친하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선 "이미 2년 넘도록 수백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을 조사하고, 기소할 만한 혐의가 나올 때까지 수사했다"며 "사법 작용이 아닌 정치 선동"이라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국회가 특검을 임명한다는 것 자체가 반헌법적 발상이라며 "아내에 대한 사랑과 변호 차원의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명태균 씨와의 통화 녹음이 공개된 데 대해선 "부적절한 일을 한 것도 없고, 또 감출 것도 없다"며 "대선에 당선된 이후 축하 전화를 받고 어쨌든 선거 초입에 여러 가지 도움을 준다고 움직였기 때문에 수고했다는 얘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분명히 있다고 비서실에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또 김 여사와 명 씨가 연락한 데 대해서는 "한 몇 차례 정도 문자나 이런 걸 했다고는 얘기를 하는데, 좀 일상적인 것들이 많았다"고 했다.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해선 "당에서 진행하는 공천을 제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며 "(선거 당시) 당선인 시절 장·차관 인사도 해야 하고, 인터뷰도 직접 해야 하고, 인수위에서 진행되는 것을 꾸준히 보고받아야 하고, 저는 나름대로 그야말로 고3 입시생 이상으로 바빴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창원 제2국가산단 관련 정보가 명씨에게 사전 유출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창원 산단을 포함해서 열 몇개의 국가산단은 제 대선공약"이라며 "산단 지정은 오픈해서 진행하는 거지, 비밀리에 진행하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임기 후반 국정 쇄신 방안에 대해선 "국민 여러분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 쇄신에 나서겠다"며 "저는 2027년 5월 9일 저의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모든 힘을 쏟아 일하겠다"고 강조했다.
개각과 대통령실 개편과 관련해선 "적절한 시기에 인사를 통한 쇄신의 면모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벌써 인재풀에 대한 물색과 검증에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론에서도 자꾸 (한 대표와) 갈등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개인적 감정을 갖고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공통·공동의 과업을 찾아나가고 공동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해 나갈 때 강력한 접착제가 되는 것"이라며 "국정감사도 끝났고, 순방을 다녀오면 당과의 자리를 이어가며 빠른 속도로 편한 소통 자리를 만들려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 가족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임명에 대해선 "국회에서 추천하면 당연히 임명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특별감찰관 임명 문제가 국민의힘 친한(친한동훈)·친윤(친윤석열)계 간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친한, 친윤이라는 게 과연 그렇게 뭐 딱 존재하는 건지(모르겠다)"며 "그걸 저는 그렇게 민감하게 보지는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尹, '구체적 사과' 재차 질문에…"팩트 갖고 다툴 수 없는 노릇"
기자회견 말미에는 윤 대통령이 표명한 사과에 대한 추가 질문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지켜보는 국민들이 과연 대통령께서 무엇에 대해서 우리에게 사과했는지 어리둥절할 것 같다'고 보충 설명을 요청하는 질의에 "국민들께서 좀 오해하시는 부분은 팩트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과 또 잘못한 게 있으면 딱 집어서 이 부분은 잘못한 것 아니냐고 해 주시면 제가 거기에 대해서 딱 그 팩트에 대해서 사과를 드릴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워낙 많은 이야기들이, 저도 제 아내와 관련한 기사들을 꼼꼼하게 볼 시간이 없다"며 "'이런 것들이 많이 있구나'(정도)만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어떤 것을 딱 집어서, 왜냐하면 이것도 사실과 다른 것들도 많다. 그렇다고 제가 대통령이 돼서 이 기자 회견을 하는 마당에 그 팩트를 가지고 다툴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사실은 잘못 알려진 것도 굉장히 많다"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하고는 얘기한 적이 없는 것을 가지고 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언론에, 민주당이 (통화 음성) 공개를 했는데 그게 무슨 짜깁기가 됐느니, 소리를 집어넣었느니, 그러면 그걸 가지고 대통령이 맞네 아니네 하고 그걸 다퉈야 하겠나. 그런 점은 양해를 좀 해 주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또 '대통령께서 그러면 인정하실 수 있는 부분, 사과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부탁드린다'고 묻자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좀 어렵지 않나. 지금 언론보도 등을 보면 너무 많은 얘기가 다니고 있어서 저도 그것을 (모두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어쨌든 제가 사과를 드리는 것은 처신이 올바르지 못했고 과거에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의 소통 프로토콜(protocol·상호 간 원활한 교류)이 제대로 안 지켜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또 불필요한 얘기들, 안 해도 될 얘기들을 해서 생긴 것이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사과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해서 예를 들어서 무슨 창원 공단 어쩌고 하는 것을, 사실도 아닌 것을 가지고 '제가 거기 개입해서 명태균 씨에게 알려줘서 죄송합니다' 그런 사과를 기대하신다면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인정할 수도 없고, 그것은 모략"이라며 "그런 것은 사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견을 앞두고 김 여사가 국민에게 '제대로 사과하라'고 조언했다고도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회견 소식이 발표된 지난 4일 밤 집에 가니까 아내가 그 기사를 봤는지 '사과를 제대로 해라. 괜히 임기 반환점이라 해서 그동안의 국정 성과만 얘기하지 말고 사과를 많이 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것도 국정 관여고 국정 농단은 아니겠죠"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