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을 앞두면 '앨범을 낸다'라는 사실이 새삼 "너무 떨리고 설레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첫 싱글 '조금만 더 방황하고'로 데뷔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혼자서 작업실에서 곡을 쓰고 녹음하고 모니터하는 과정을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풍파도 있었다. '이게 최선의 표현인가?' 하고 고민하던 시기를 지나, 7곡을 모아 아홉 번째 미니앨범 '폴린'(FALLIN')을 가지고 돌아왔다.
앨범 발매를 약 일주일 앞둔 지난달 29일, 헤이즈는 '폴린' 발매 기념 라운드 인터뷰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열었다. 취재진을 향해 "감사합니다"라고 한 인사로 말문을 연 헤이즈는 "고민하는 시간도 되게 길었는데 그런 시간이 잘 지나가고 올해가 가기 전에 제가 좋아하는 계절에 새로운 앨범을 드려드릴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했다.
직접 가사와 멜로디를 쓰는 싱어송라이터이기에 헤이즈는 앨범을 만들 때마다 자기만의 싸움을 거쳐야 했다. 작업하며 느낀 풍파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묻자, 그는 "제 안에서의 의심과 확신의 반복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오늘 들었을 땐 '괜찮다, 좋다!' 했던 게 내일이 되면 '아, 이게 괜찮나?' 하게 되는 거다. 헤이즈는 "적당한 선에서 끝마치는 것도 어렵고, 이쯤에서 그만하자 하기까지 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 풍파가 저한테는 제일 큰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제일 갈등한 부분은 "당연히" '가사'였다. 헤이즈는 "조금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 위로받고 공감할 수 있을 만한 게 없을까? 하고 가사 수정을 많이 하는 거 같다. 그 외에는 편곡적으로 사실 채우면 또 한도 끝도 없어지는데 채워서 화려해진다고 무조건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 그 과정에서도 많이 고민했다"라고 답했다.
가장 고민한 가사는 '미래일기'에 등장하는 "영락없이 우리 얘기야"라는 부분이다. 헤이즈는 "가사에 잘 쓰지 않는 말이라… '여지없이'나 '틀림없이' 요런 표현도 있지 않나"라며 "'영락없이'가 괜찮은지 많이 생각했다. 이런저런 표현을 붙여봐도 이건 다른 거로는 다 표현 못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썼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락없이'는 발음도 쉽지 않고, '영락'이 너무 강조되면 그 단어가 확 들릴 수 있으니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발음하려고 고민 많이 했다"라고 덧붙였다.
"나 잘 지내 / 빛이 나 / 이대로도 괜찮아 / 설마 너까지 그렇게 믿는 건 아니지?"라는 '겉마음'의 가사도 언급했다. 헤이즈는 "혹시나 내가 이런 가사를 써서 팬분들이 너무 걱정하실까 봐 거기서 고민했지만, 이런저런 고민 하다 보면 이 곡이 담고 있는 메시지 다 담아내기 힘들 거 같아서 그대로 썼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겨울에 나온 '라스트 윈터'(Last Winter) 이후 11개월 만의 새 미니앨범 '폴린'은 늦가을에 발매하게 됐다. 헤이즈는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다. 타이틀곡 '폴린'이 정해지고 나서 이 계절이랑 너무 잘 어울리고, 제가 써 두었던 곡들을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메시지로 모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가을이라는 계절까지 오게 된 거 같다. 만약에 여름이었다면 이렇게 내진 않았을 거 같다"라고 돌아봤다.
이어 "그리움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가을이랑 닮아있다고 생각해서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가을은 사람들에게 너무너무 낭만적인 계절이지 않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잎도 다 떨어지고 초라해졌다가 또 다음 계절이 되고. (무언가) 사라지지만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계절인데, 이 앨범도 묵어있던 그리움을 털어내고 새로운 거로 채우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얘기라, 정말 감사히도 잘 맞아떨어진 거 같다"라고 부연했다.
총 7곡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주제는 '그리움'이다. 직접적인 그리움의 대상이 있었던 걸까. 헤이즈는 "살아오면서 제가 떠나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저를 지나온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되게 많은 시간과 대상을 떠올릴 수 있었던 계기였다. 그러면서 또 느낀 것은 지금 없고 사라지고 변해야 그런 그리운 감정들이 떠오르는데, 그리워지는 것들은 사라지는 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너무 자연스러워지는 거 같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누구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당연한 것"이라고 표현한 헤이즈는 "그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깨닫게 된 것은, 어떤 지나간 순간을 그리워하면서 지금을 놓치고, 지금 내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거 같다는 거다. 지금 이 순간도 미래에 돌아봤을 때 너무 그리워질 순간이라는 걸 항상 잊지 말자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비아이가 단독 작사하고 작곡에 참여한 '폴린'이 타이틀곡이다. 타이틀곡을 정하는 것도 "하나의 풍파"였다고 고백한 헤이즈는 "하…" 하고 짧게 한숨을 쉬며 "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의견이 달라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중, 회사가 보유한 데모(임시)곡을 듣다가, 피네이션의 대표 싸이가 '이 곡 한번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고 그때부터 속도가 붙었다. 싸이는 헤이즈의 녹음본을 듣고 '너무 좋다'고 칭찬했다고.
헤이즈는 "만장일치로 '이 곡이 타이틀이다' 했다. 너무 좋다. 메시지도, 곡 분위기도 좋고. (이 곡을 통해) 지금 써 둔 곡을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타이틀로 하게 됐다. 되게 잔잔하고 자극적인 단어나 멜로디가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사랑하게 되고 그것을 잃게 되고 헤어짐의 무게를 알게 되고 관계에 있어서 적당함이라는 걸 배우게 된다는 이런 메시지가 저는 너무 좋더라"라고 격찬했다.
'폴린'은 연주곡인 '노벰버 송'(November song)을 제외하고 이번 앨범에서 헤이즈가 작사·작곡에 참여하지 않은 유일한 곡이다. 헤이즈는 "원래 되게 강렬하고 파워풀한 노래들을 많이 쓰신다고 생각했는데 하 이렇게 감성적이고 순수한 감정을 풀어낼 수 있구나, 역시 다 잘하시는 분이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 곡도 풍파는 있었다. 헤이즈는 "(비아이 가이드)감정선을 해치지 않아야 하니까, 톤을 잡는 거에서부터 이 감정을 표현하는 데까지 녹음에 제일 긴 시간이 걸렸다. 이 곡을 해석하고 총 수정까지 해서 거의 한 2주 정도 걸렸다"라고 전했다. 또한 헤이즈는 "(비아이와) 아직 대화 못 나눠봤는데 나중에 앨범 드리면서 메시지 주고받거나 하면 좋을 거 같다. 회사 통해서는 제가 부른 거 듣고 너무 좋다고 잘 어울린다고 해 주셔서 참 다행"이라고 전했다.
이번 앨범에는 '모든 걸 가르쳐 준 사람이니까' '미래일기' '겉마음' '점' '내가 없이'와 연주곡 '노벰버 송'까지 총 7곡이 실렸다. 타이틀곡 '폴린' 외에 본인 일화를 염두에 두고 쓴 곡이 있는지 질문이 나왔다.
헤이즈는 "다 저만의 이야기가 있겠지만 '모든 걸 가르쳐준 사람이니까'라는 곡은 지금의 제 모습이 되기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영향을 줬는데 그 안에서 또 콕 집어 말하자면 (그 주체가) 첫사랑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의 취향이라든가, 제가 생각하는 방식이라든지, 음악을 듣는 취향,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나는 나 혼자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썼던 곡"이라고 소개했다.
'미래일기'는 예전에 썼던 일기장을 우연히 펼쳐봤다가 쓰게 된 곡이다. '겉마음'에 관해 헤이즈는 "항상 다들 밖에서는 사람을 대할 때도 일할 때도 늘 환하게 웃고 있지만 그 마음 안에 웃지 못할 사정이 있다는 걸 되게 많이 느꼈던 거 같다. 그 마음을 나에게 털어놓을 때는 그런 마음을 단 한 사람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는 거구나. 이 곡이 제가 조금 더 애착이 가는 이유는 첫 번째는 그런 마음이 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점'을 두고는 "항상 어떤 관계에 있어서 점을 시작점으로 선도 그어보고 이렇게 색칠해서 우리가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늘 기대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는 얘기"라고, '내가 없이'에 관해서는 "여태까지는 나를 떠난 대상에 관한 곡들을 쓰면서 내심 '내가 괜찮지 않은 것처럼 너도 괜찮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이 조금씩은 담겼던 거 같은데, 이제는 정말 진심으로 '내가 없어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의 변화를 겪으면서 썼다"라고 말했다.
'비도 오고 그래서'를 비롯해 피처링이 있는 곡이 특히 큰 사랑을 받았지만, 이번 앨범에는 피처링곡이 하나도 없다. 헤이즈의 목소리로만 채웠다. "피처링이 한 분도 안 계신 게 거의 처음인 것 같다"라는 헤이즈는 "제 얘기를 온전히 들려드리는 과정에서 더 진솔하게 다가가려면 저 혼자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피처링 가수가 있으면 삭 분위기 전환도 되고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왠지 혼자 부르는 게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될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