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국제행사를 치르기 위해 미완성된 호텔을 매입했다가 건물도 다 짓지 못하고 재산권 행사 제약, 공사비 미지급 등의 문제만 야기한 채 15년 넘게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최근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또다시 수년이 소요될 소송전을 준비하면서 이 문제를 '풀지 못할 숙제'로 만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천도시공사, 송도센트럴파크호텔 관련 고발 및 소송전 돌입
5일 인천시와 인천도시공사 등에 따르면 공사는 연수구에 있는 송도센트럴파크호텔(이하 E-4호텔)의 운영사 ㈜미래금과 시공사 대야산업개발을 상대로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공사는 이와 함께 미래금과 대야산업개발이 진행 중인 공사비 청구 소송의 보조 참가자 신분으로서 법원의 강제조정결정에 이의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소송으로만 10년을 보낸 E-4호텔 문제는 앞으로 수년을 더 허비할 상황에 놓였다.
송도 '미완성 호텔' 매입한 인천시…재정 악화로 수년간 방치
E-4호텔은 관광호텔과 레지던스(장기숙박)호텔 등 2동으로 구성됐다. 송도국제도시 노른자 땅 가운데 한 곳이었던 'E-4구역'에 지어졌기 때문에 E-4호텔이라고 불렸다.
이 호텔은 '2009인천세계도시축전' 숙박시설로 2007년 4월 착공됐지만 공정률 18% 상태에서 시공사 부도로 2008년 11월 도시공사(당시 인천도시개발공사)가 488억원에 인수하면서 인천시 손에 들어왔다. 이는 안상수 당시 인천시장의 지시로 이뤄졌다. 그러나 공사의 재정건정성 악화로 직접 시공이 어려웠고 수년간 '미완성 건물'로 방치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2010년 초 부채가 8조원에 육박했던 인천도시공사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해 E-4호텔을 매각하라는 명령을 받고 2012년까지 5차례 입찰공고를 냈지만 모두 유찰됐다.
'건설비 외상' 방식으로 관광호텔 완공해 '2014 아시안게임'에 활용
이 호텔은 2012년 7월 송영길 시장이 취임한 이후 매각 방식을 변경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시 인천시와 인천도시공사는 이 호텔을 민간사업자 제안공모방식으로 개발해 2014년 9월에 인천에서 개최되는 제17회 아시안게임의 국내·외 미디어 숙소로 활용하려고 했다. 그 결과 인천도시공사는 2013년 3월 교보증권컨소시엄과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을 통해 E-4호텔은 관광호텔과 레지던스호텔로 나뉘어 건설하기로 결정됐다. 당장 아시안게임에 사용할 관광호텔을 우선 짓고, 레지던스호텔은 나중에 짓겠다는 계산이었다.
그 결과 관광호텔은 교보증권 컨소시엄이 건설비 802억원을 우선 투입해 아시안게임 개최 전까지 완공한 뒤 5년간 호텔을 운영하다가 도시공사로부터 1100억여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레지던스호텔은 미래금이 178억원에 매입해 완공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 계약에 따라 공사비 자금조달은 교보증권에서 만든 특수목적법인 OBK글로벌이 제공하고, 시공은 대야산업개발이, 호텔 운영은 대야산업개발이 설립한 미래금이 각각 맡았다.
건설업과 관광호텔업을 병행했던 대야산업개발은 2004년 11월 경기도 부천에 고려호텔(특급·객실수 127개)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E-4호텔을 계기로 호텔업 영역 확대를 꾀했고, E-4호텔을 전문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미래금을 설립했다.
이에 따라 미래금은 건설비에 대한 이자를 부담하고, 최장 10년간 호텔을 임차 또는 재임차해 운영한 뒤 10년 후 관광호텔을 1100억여원에 우선 매입할 권리를 얻었다.
또 만약 컨소시엄이 우선매입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도시공사가 건설비 802억원을 모두 갚기로 했다. 사실상 '건설비 외상'으로 호텔을 지은 셈이다.
당시 이 계약을 두고 인천시와 인천도시공사가 손해보는 행정을 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도시공사가 앞으로 지출할 비용이 E-4호텔 매입비용으로 기존에 지출한 488억원에 건설비 802억원을 더하면 1290억원이지만 관광호텔과 레지던스호텔의 총 매각비용은 1278억원이었기 때문이다. 도시공사가 미래금한테 E-4호텔을 최종 매각하면서 12억원을 지급해야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당시 인천시와 공사는 '행정안전부의 경영개선명령을 이행하고, 호텔 건설 등에 소용되는 금융비용을 절감한 데다 2014아시안게임을 위한 호텔을 얻는 1석 3조의 효과가 있다'며 이를 일축했다.
관련 규정 없어 호텔 영업허가에도 '진땀'
관광호텔이 영업하기까지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E-4호텔은 이른바 '복도건물'을 사이에 두고 관광호텔과 레지던스호텔이 이어진 '한 건물'이다. 즉 건물을 절반만 짓고 운영하려 했는데 이 과정에서 암초를 만났다.
E-4호텔은 인천경제자유구역인 연수구 송도동에 있다. 이곳은 '경제자유구역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하 경제자유구역 특별법)'의 특례 조항에 따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건축물에 대한 인·허가권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송도동은 '정부24' 홈페이지에서도 건축물대장 열람이 불가하다.
인천경제청은 E-4호텔의 관광호텔만 운영할 수 있도록 임시 사용승인을 허가했다. 문제는 호텔 영업허가를 받기 위한 서류 구비가 불가했다는 것이다. 호텔 영업허가는 관광진흥법에 따라야 하는데 이 법은 관할 지자체에 건축물관리대장 등의 서류를 구비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E-4호텔은 관광호텔 부분만 지어진 '반쪽짜리 건축물'이기 때문에 당시 건축물관리대장이 존재할 수 없었다. 경제자유구역 특별법에 따라 반쪽짜리 호텔 건물의 임시 사용승인은 가능했지만 관광진흥법에는 반쪽짜리 호텔에 대한 '임시 영업허가' 규정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인천시는 관할부처인 국토교통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유권해석을 요청했지만 원하는 대답을 받지 못했다. 결국 "E-4호텔 내 관광호텔의 임시 영업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아시안게임을 중계·보도할 국내·외 언론 관계자들의 숙소를 타 지역에 배정하는 국제적 망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의 호소 끝에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직전인 2014년 9월에서야 간신히 영업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전임 시장의 잘못된 사업' 아시안게임 치른 뒤 입장 바꿔
E-4호텔의 운명은 2014년 7월 유정복 시장이 취임하면서 또다시 바뀌었다. 미래금은 인천시와 도시공사의 요구에 따라 관광호텔 공사 규모가 커지면서 당초 예산보다 45억원가량 추가 지출이 있었다며 이를 보존해달라고 공사에 요청했다. 그러나 공사는 전임 시장 시절 약속이었고 문서화된 기록도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미래금 입장에서는 레지던스 호텔을 짓는데 써야할 돈을 아시안게임을 위해 관광호텔 공사비로 끌어썼는데 도시공사가 이를 외면한 꼴이 된 것이다. 이에 미래금은 레지던스호텔 공사를 중단했다. 당시 레지던스호텔은 골조 공사와 외벽마감공사까지만 진행된 상태였다.
이후 도시공사는 2014년 11월 '관광호텔 공사 면적 증가는 미래금 등의 책임이므로 추가 공사비를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작성을 강요했다. 확약서를 쓰지 않으면 레지던스호텔 건물에 대한 근저당권을 설정하겠다고 으름장도 놨다. 미래금은 레지던스호텔에 근저당권이 설정되면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확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인천시는 다음 해인 2015년 5월 E-4호텔과 관련해 인천도시공사를 종합감사한 뒤 "아시안게임 협력호텔로 사용하기 위해 불합리한 사업구조로 그릇된 사업협약에 근거해 사업을 추진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보고서를 보면 '관광호텔의 공사비 적정 사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문회계법인의 감사를 실시하고, 이런 진행이 어려울 경우에는 국세청 조사 및 수사기관에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취하라'고 적혀 있다.
관광호텔 건립 사업 자체가 전임 시장 시절의 잘못된 사업이었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인천시는 미래금의 공사비 지출 내역이 투명하지 않다며 불신을 표했고, 미래금은 인천시장이 바뀐 뒤 트집잡기를 하고 있다고 반발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레지던스호텔 매각 해지 빌미로 수년째 소송전 돌입
급기야 인천도시공사는 2018년 1월 미래금에게 레지던스호텔 매매계약 해지 통보를 보냈다. 이에 대야산업개발은 공사비 450억원을 받지 못했다며 레지던스호텔에 유치권을 행사했다.
이를 계기로 E-4호텔은 소송전에 휩싸였다. 미래금은 인천도시공사에 레지던스호텔 매매계약 해지 관련 계약 반환 청구 소송을, 인천도시공사는 미래금이 관광호텔 재임차 계약기간이 끝났지만 호텔 영업을 유지하고 있다며 부동산 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미래금과 계약하고 관광호텔과 레지던스 호텔을 짓던 대야산업개발은 미래금에 공사비 청구 소송을 냈다.
E-4호텔과 관련한 소송전들의 핵심 쟁점은 대야산업개발의 유치권이다. 도시공사가 매각 계약을 해지한 레지던스호텔을 직접 시공하거나 다른 업체에 맡기려면 대야산업개발에 미지급된 공사비 450억원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는 미래금과 대야산업개발 사이의 계약 문제이기 때문에 도시공사가 지급해야 할 의무가 없다. 미래금의 관광호텔의 영업은 레지던스호텔과 별개로 임대차 계약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보장해줘야 했다.
법원도 소송 당사자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그만 싸우자" 협약 맺었지만 "믿을 수 없다" 찬물 끼얹은 인천시
결국 인천도시공사가 먼저 화해의 손을 뻗었다. 공사는 올해 5월 미래금, 대야산업개발과 E-4호텔 정상화 촉진을 위한 협약서를 체결하고 문제해결에 나섰다.
이 협약은 E-4호텔 내 레지던스호텔 유치권 해소, 관광호텔과 관련한 채권 청산, E-4호텔 전체 사용승인 및 소유권 확보를 포함한 문제 해결 등을 주내용으로 한다. 소송 당사자들의 법원의 강제조정을 받아들이고 원만하게 해결하자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법원은 지난 7월 E-4호텔에서 관광호텔을 운영을 하는 미래금이 시공사인 대야산업개발에 지급해야 할 레지던스호텔 공사비 원금 409억원과 지연손해금 272억원 등 681억원 가운데 미래금의 채권 51억원과 E-4호텔(관광호텔 및 레지던스호텔) 매매계약금 171억원을 뺀 나머지 459억원을 인천도시공사가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미래금이 이 돈을 대야산업개발에 전달해 유치권을 풀게 하려는 것이다. 또 법원은 E-4호텔 전체 매매대금을 기존 1278억원이 아닌 감정평가액인 1719억원을 조정했다. 이와 함께 미래금이 호텔 사용승인 완료일이나 2027년 8월까지 공사에게 중도금(171억원)과 잔금(1377억원)을 공사에 지급하면 공사는 E-4호텔 전체 소유권을 미래금에 넘겨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법원의 강제조정에 따르면 인천도시공사가 E-4호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출해야 할 비용은 최초 매입비용 488억원과 공사비 802억원에 강제조정에 따른 추가 비용 459억원 등 모두 1749억원이다. 법원이 감정평가액으로 조정한 전체 호텔 매각 대금 1719억원과 비교하면 30억원 차이다.
공사는 지난 7월 경영회의를 열어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뜻을 모았지만 8월1일 열린 도시공사 이사회는 법원이 공사비 감정을 과도하게 했다며 경영회의 결정을 부결했다. 이사회의 부결에는 황효진 인천시 정무부시장의 의견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황 부시장은 2015년 인천시가 도시공사를 종합감사할 당시 도시공사의 감사를 지냈고, 2018년 미래금에게 레지던스호텔 매매계약 해지를 통보할 때는 도시공사 사장이었다.
이와 관련해 인천시는 최근 도시공사의 E-4호텔 공사대금 및 유치권 대응과 관련한 특정 감사를 벌여 대야산업개발이 각종 공사비와 이자 등을 부풀렸고, 무단으로 공사를 진행했다는 의견을 냈다. 미래금과 대야산업개발의 재무제표 및 공사실적 등을 분석한 결과 최소 수십억원의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소송 싸움 해결하겠다"→"소송으로 해결하겠다"로 말바꾸기
인천도시공사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 "E-4호텔 문제 정상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공사가 내놓은 해결책은 미래금과 대야산업개발에 대한 형사 고발과 법원 강제조정에 대한 이의 신청이다.
하지만 법원이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봤던 '유치권 문제 해소'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두 업체가 주주 구성이 비슷하고 같은 인물이 번갈아가며 대표이사를 지낸 점으로 미뤄 사실상 동일업체라는 등 문제 해결 의지보다는 적대감만 더 드러내는 모양새다.
결국 수년에 걸쳐 진행된 소송전은 또다시 반복될 전망이다. 인천도시공사 관계자는 "이번 정상화의 목표는 공사의 재산권 확보"라며 "임대차 계약이 끝났는데도 버티면서 관광호텔 영업을 하는 미래금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