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친밀관계 폭력…'관계 회복 활동' 나서는 경찰들

강력 범죄로 악화되기 전 '갈등 관리' 노력
대화 모임 참여자들 "갈등 해결에 도움…경찰 개입에 안도감"
전문가 "'대화 기회' 제공 중요…무조건적 적용엔 신중해야"

연인 또는 가족 사이에서 발생한 '친밀 관계 폭력' 신고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사회적 우려도 커지면서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요구에도 힘이 실리고 있지만, 또 한편에선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 전 '관계 회복'을 통해 재발을 막으려는 경찰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친밀 관계 폭력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분류되는 경우가 다수여서 수사기관 개입에 한계가 있다는 진단이 꾸준히 제기됐는데, 이 한계를 극복하고 피해자 보호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이뤄지고 있는 게 이른바 '회복적 경찰활동'이다.

사각지대 많은 친밀 관계 폭력…'회복적 경찰활동'으로 해결 모색

경찰청 통계를 보면 가정폭력 신고건수는 △2021년 21만 8680건 △2022년 22만 5609건 △2023년 23만 830건으로 매년 증가했으며, 교제폭력 신고 역시 △2021년 5만 7305건 △2022년 7만 790건 △2023년 7만 7150건으로 2년 새 34.63% 증가했다.

이런 친밀 관계 폭력 신고 사건의 절반 이상은 현장에서 종결 처리되고 있다. 올해 1~7월 경찰청 112신고 처리 현황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의 52.4%, 교제폭력 신고의 55.1%가 현장에서 종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현장 종결 건수가 많은 주요 이유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꼽고 있다. 또 폭행 없는 단순 말다툼 등 경미한 사안으로 판단되거나, 현장에서 피해 사실이 발견되지 않은 경우에도 현장 종결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특성이 있는 친밀 관계 폭력은 강력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 경찰이 관행적 처분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적극적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런 시각과 맞물려 활기를 띄고 있는 회복적 경찰활동은 사건·분쟁 당사자 간 갈등을 전문가가 중재해 피해 회복과 재발 방지를 도모하는 관계 회복 활동을 의미한다. 사건을 경찰서 내 수사부서 등에서 피해자전담경찰관에 연계하면, 담당 경찰관의 검토를 바탕으로 전문기관이 피해자와 가해자 간 대화 모임 등을 주관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경찰은 2019년 수도권 지역 15개 경찰서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해 2023년 전국 259개 경찰서로 확대했다.

5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9월 회복적 경찰활동은 총 156건 시행됐으며 이중 145건이 가정폭력 사건이었다. 특히 서울경찰청 관할 경찰서 가운데 해당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운영된 곳으로 꼽힌 서울 용산경찰서는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가정폭력 등 사건 당사자들로부터 대화 프로그램 참여 신청 71건을 받아 68건(95.7%)을 조정 성사 시켰다. 용산서는 대화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했으며, 전문 심리 상담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사건 담당 수사관이나 지역 경찰이 갈등을 (피해자보호) 담당 경찰관에게 연계하고 있다"며 "초창기에는 담당 수사관들이 가해자와 피해자 대화 모임을 주선한다는 게 합의를 종용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도 있었다. 지금은 양 당사자 간 조정이 성사될 수 있다는 인식이 조금씩 정착돼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용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가정폭력 사건은 단발성 신고도 있지만,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로 다발성 신고자를 중심으로 대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회복적 경찰활동이) 걸음마 단계이지만 점차 활성화되면 2차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경찰, '대화 모임'으로 갈등 관리…참여자 "경찰 개입에 안도감"

회복적 경찰활동과 연계된 대화 모임에 참여해 관계 회복에 도움을 받은 이들 사이에선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던 사실을 깨달았다", "경찰이 직접 개입한다는 점에서 심리적으로 안도감을 느꼈다"는 호평도 많았다.

남편이 술에 취해 문을 발로 차는 등 행패를 부려 경찰에 신고했던 40대 여성 A씨는 "(대화 프로그램에서) 남편이 한 말을 제가 그대로 반복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며 "서로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그간 남편이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아, 술을 마시고 와서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발로 차는 행위도 폭력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경찰관이 '그것도 폭력'이라고 말해줘서 남편이 이후로 조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대 아들의 폭력 성향으로 경찰에 수차례 신고했지만, 아들의 미래를 걱정해 처벌은 원치 않았던 50대 어머니 B씨도 지난 7월 경찰의 권유로 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B씨는 "(폭력 상황이 발생해도) 자식이기 때문에 걱정되는 게 엄마 마음"이라며 "상담사 두 명이 양쪽 이야기를 균형 있게 들어주니, 마치 양쪽에 변호사가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는 (가족 간 폭력 때문에) 집을 나가거나 다치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한 번씩 (경찰이 개입해) 객관화된 상황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게 도움 됐다"며 "조금만 도와줘도 괜찮아질 수 있는 가정이 많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회복적 경찰활동을 지원하는 한국회복적정의협회 윤구식 소장은 "관계성 폭력의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처벌보다는 관계상의 불편함을 끊어내고 재발을 방지하고 싶다는 기대가 크다"며 "단순 처벌 만으로는 피해자가 원하는 바를 충족하기 어려워 민간 전문가를 통해 대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 회복적 경찰활동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회복적 경찰활동이 단순히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며 "(교제폭력 사건 등의 경우) 오히려 대화를 통해 잘 헤어지는 것도 대화 모임의 결과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친밀 관계 폭력 사건과 관련한 대화 등 관계 회복 시도에도 신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효정 부연구위원은 "명확한 권력 관계가 형성된 상황에서 화해를 권하는 것은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거나 피해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회복적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갈등도 있지만, '가족은 끊을 수 없는 평생의 공동체'라는 인식이 가정폭력 피해자가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