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하자 야당은 물론 여권 일각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대통령 대신 참석해 시정연설을 했다. 시정연설은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하는 연설로,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시작했다. 대통령이 매년 시정연설에 나서는 관행이 자리잡은 것은 2013년 박근혜 정부부터다.
윤 대통령 역시 취임 첫해인 2022년에는 시정연설에 나섰다. 지난해엔 연설 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사전 환담도 가졌다. 하지만 김건희 리스크가 심화하면서 여야 대립은 물론 당정 관계마저 악화일로를 거듭하자 올해에는 시정연설에 나서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정연설은) 서비스가 아니라 삼권분립의 민주공화국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해야 할 책임"이라며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을 저버렸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또 원내대변인 서면브리핑을 통해 "국회 개원식 불참에 이어 대통령의 국회 무시가 참을 수 없는 수준"이라며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국정농단 의혹이 정쟁이냐"고 따져물었다.
개혁신당 허은아 대표는 시정연설 대독을 비판하는 한편, 한 걸음 더 나아가 임기단축 개헌까지 주장했다. 허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임기는 더는 국정을 운영하는 데 동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임기단축 개헌으로 새로운 공화국을 준비하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역사 앞에 이행해야 할 마지막 의무"라고 주장했다.
여당 내에서도 친한계를 중심으로 야권의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최근의 각종 논란들이 불편하고 혹여 본회의장 내 야당의 조롱이나 야유가 걱정되더라도 새해 나라살림 계획을 밝히는 시정연설에 당당하게 참여하셨어야 한다"며 "지난 국회개원식에 이어 두 번째로 국회를 패싱하는 이 모습이 대다수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냉철하게 판단했어야만 한다"고 밝혔다.
이어 "거듭, 가면 안 되는 길만 골라 선택하는 이해할 수 없는 정무 판단과 그를 설득하지 못하는 무력한 당의 모습이 오늘도 국민과 당원들 속을 날카롭게 긁는다"며 "국민들께 송구하고 면구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박준태 원내대변인은 "예산은 서민의 삶과 직결되는 생존전략인 만큼, 민주당은 이제 그만 정쟁을 거두고 민생 중심의 예산 심의에 협조해야 한다"며 "국민의힘은 서민의 삶에 온기와 활력을 주는 예산안을 성안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