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일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한반도 안보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여러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현 바이든 행정부 기조를 승계할 것으로 보이는 카멀라 해리스 후보와 달리 트럼프 체제에선 과거 집권 1기 때 경험했듯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트럼프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적 동맹관 등으로 요약된다. 동맹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한다는 바이든 노선과 다른 점이다.
대중국 포위·압박은 공통점이나 트럼프 공화당의 강도가 더 높다. 러시아와 이스라엘에 대한 접근법에서도 큰 차이를 나타낸다. 예컨대 트럼프 후보는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면 24시간 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다.
우리의 관심사인 한반도 정책에선 북미 핵담판 여부, 주한미군과 방위비 문제 등을 놓고 한미 간 갈등이 빚어질 우려가 크다.
북미대화 재개 시도하겠지만 北 시큰둥 할듯…"핵노선 절대 바꾸지 않을 것"
일단, 트럼프 후보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시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그는 유세 과정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잘 지냈다"고 수차례 자랑해왔다.
여기에는 바이든 정부의 외교 실책을 부각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북한 지도자를 국제사회로 끌어냄으로써 나름대로 외교 치적을 쌓을 뻔했던 기억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내는 것조차 매우 어려워졌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노딜'의 수모를 겪을 때와 달리 별로 아쉬울 게 없다. 유엔 대북제재는 이완됐고 러시아와 군사동맹까지 체결했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뒤 "핵무력 강화 노선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임을 확언한다"는 김 위원장의 언명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소장은 KDI 북한경제리뷰에서 "미·중·러 갈등 속에 북한은 아무런 제재 없이 원하는 걸 최대한 해도 된다는 판단 하에 핵·미사일 역량 강화에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다"며 "결국 북한이 비핵화든 무엇이든 대화에 응할 인센티브는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북한이 생존권과 더불어 발전권을 확보하려면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 북러 동맹이 지금은 단단해 보여도 우크라이나전 종전 이후까지 장담할 수는 없다. 러시아는 한국과 여전히 우호관계를 희망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트럼프 당선 시 북미대화의 뜻밖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안보 전문가는 "만약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전을 끝내려 한다면 북한도 어쨌거나 참전국이기 때문에 종전협상에서 대화의 통로는 만들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우리 정부가 예상하듯 북한이 미국 대선 후 7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북미대화 재개 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 트럼프 후보로선 바이든 정부의 외교 실패와 대비시키며 자신의 해결사 이미지를 부각하려 할 것이다.
미국 내 핵군축 협상론 고개…한미공조 실패시 韓 '패싱' 가능성
이처럼 북한을 어떻게든 비핵화 협상에 복귀시키려는 시도는 오바마-바이든-해리스로 이어질 수 있는 '전략적 인내 3.0'에 비해 긍정적 측면도 있다.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북한을 방치해 북한 핵무력을 고도화하는 결과만 낳았을 뿐이라는 비판이 많다.문제는 북미 간 핵군축 협상 가능성이다. 이는 공화·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미국 내에서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미라 랩 후퍼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지난 3월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의 '중간단계 조치'(interim steps)를 언급했다. 최근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 '비핵화' 단어가 빠진 것도 예사롭지 않다.
존 메릴 전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분석실장은 내셔널인터레스트(NI) 기고에 "워싱턴 정책전문가들 사이에 차기 미국 행정부가 대북정책의 핵심 목표를 재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의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에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단계적 위험축소나 군비통제 협정을 방해한다고 주장해왔다"며 "미사일, 확산, 북핵 프로그램 중단 또는 축소 등에 관한 중요한 합의(Valuable deals)와 협정이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추세가 트럼프 당선으로 현실화된다면, 대북 강경압박으로 일관해온 우리 정부로선 미국과의 대북공조에 혼선을 빚게 되고 자칫 '통미봉남'의 패싱 사태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지난달 14일 이슈브리프에서 "트럼프 재집권 시 김정은과의 정상외교가 재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따라서 미북 정상회담이 추진되더라도 한국이 배제됨 없이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진행될 수 있도록 긴밀한 협의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방위비 재협상·주한미군 감축 요구 확실시…"韓 불리하지만은 않아"
트럼프 체제에서 주한미군 문제 및 이와 연계한 방위비 재협상은 거의 확정적 사실이다. 트럼프 후보는 집권 1기 때 방위비 분담금을 한꺼번에 5배나 올려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번 대선 유세 과정에서도 우리나라가 방위비를 더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거듭 으름장을 놓았다. 그나마 트럼프 1기 때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같은 '어른들의 축'이 제동을 걸었지만 2기 때는 그런 견제 기능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현 소장은 "주한미군 철수 혹은 감축, 방위 분담 증액 요구 등은 거의 확실시되며, 한국으로서는 트럼프의 요구를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이고 어떤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인지가 중요한 정책 사항"이라고 짚었다.
이에 더해 권보람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동아시아연구원 이슈브리핑에서 "워싱턴은 중국의 공세적 행동에 대한 외교적 비판과 함께 더욱 공세적인 연합군사훈련과 무기체계 도입과 운용, 한미일 안보협력 추가 확대 및 미사일 방어체계 통합 등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트럼프 후보의 요구는 특유의 사업가적 기질과 방식을 반영한 것으로서 우리 정부의 대응 가능한 범위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먼저 주한미군 철수·감축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관한 문제로 미국 국방수권법에도 현 수준을 유지하도록 명시돼있다. 공화당 의원 다수가 동맹을 여전히 중시하고 있고, 해외 미군기지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쉽게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다.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는 미군 해외기지 가운데 최대 규모에다 최첨단 시설을 자랑한다. 특히 중국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
방위비 문제의 경우도 현 바이든 정부와 협정(12차 SMA)이 이미 체결된 이상 트럼프 정부에서도 결과를 뒤집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다.
김태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지역전략연구실장은 "트럼프가 집권해도 상당한 인수위 기간이 필요하고, 우크라이나와 중동 문제에 우선 집중하다보면 방위비는 두번째 문제로 밀리게 되며, 그러다 보면 한국은 2026년 중반이면 대선 정국에 들어가 버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또 "트럼프 1기 때는 미국이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를 지렛대로 써서 우리 정부가 압박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이미 협정이 타결이 된 상태여서 재협상을 하더라도 인건비 압박을 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유독 한국에 냉엄해 보이는 트럼프라지만, 거래적 관점을 충족한다면 오히려 바이든 정부에서 얻을 수 없었던 성과를 낼 수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