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은 29일, 국회 곳곳의 가로등과 가로수에는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보라색 목도리가 둘러져 있었다.
이날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는 국회의원회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제'를 열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가족과 생존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한편 재발 방지와 진상규명을 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국회가 사회적 재난을 추모하는 행사를 공식 주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모식장 무대 배경에는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 159명의 별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렸다. 추모제에는 희생자 유가족 120여 명과 여야 의원 60여 명이 참석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추모사에서 "국가의 책임이 부재했던 시간이었다"며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대한민국 국회를 대표해 사과드린다. 오늘 대한민국 국회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이 자리가 그 상처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 출범한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대해 "은폐와 왜곡, 지연과 방해 없이 특조위가 책임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해 국회가 역할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할 뿐"이라며 "당연하다고 믿었던 일상에 대한 의심을 갖게 한 그날의 참사를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는 "특조위가 독립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국회가 무한한 책임을 갖고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특조위원 임명은 지체됐고, 예산과 인력 지원은 요원하다"며 "특조위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국회가 온 마음을 모아야 한다. 참사의 슬픔 앞에 정치적 유불리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제가 이태원 참사를 대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일부 국민들께서 왜곡된 진영 논리 때문에 희생 당한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을 비난해 왔다는 것"이라며 "저도 결혼하기 전 핼러윈의 이태원을 종종 찾아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곤 했다. 핼러윈의 이태원에 가는 게 뭐가 잘못인가"라고 반문했다.
천 원내대표는 "법적 책임은 권력자와 책임자들이 져야 하는 책임의 최소한"이라며 "물론 법적 책임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법원에서 유죄 판결하지 않으면 '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라고 하는 뻔뻔한 권력자들에 의해 운영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 윤석열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촉구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경질하고 책임자에 제때 책임을 묻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가족과 국민 앞에 겸허히 사과하라"고 촉구하자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 사이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원내대표도 "참사 이후 2년은 대한민국 정부의 지독한 무책임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었다"며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다시 바닥에서부터 만들어내야 한다.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는 것이 바로 그 시작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유족과 생존자 등 피해자들은 참사 진상규명과 2차 가해 중단을 위한 정치권의 노력을 촉구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국회에 도착했을 때 가로등과 가로수에 묶여 있는 보라색 목도리를 보면서 울컥했다. 이제야 비로소 피해자로서, 유가족으로서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아이를 잃은 만큼이나 유가족을 짓누르고 참담하게 만들었던 것은 2차 가해"라며 "감정을 옥죄는 또 다른 범죄다. 그 결과 이태원 참사의 159번째 희생자가 나오고 말았다"고 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로 고통 받았던 생존자와 목격자들도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2차 가해로 그 아픔을 감추고 자신을 드러내기를 주저하고 있다. 이런 사회는 결코 정상일 수 없다"며 "국회 안에서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자리를 만들고, 국회 밖에서 겪는 고통은 외면한다면 결코 신뢰 받는 정치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참사 생존자 이주현씨는 "피해자, 생존자로 봐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피해 사실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버린 피해자들이 많다"며 "수동적인 피해자 조사가 아닌 한 명 한 명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피해자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기춘 특조위원장은 "조사는 수사에 비해 그 대상과 범위가 넓혀져야 한다"며 "수사 과정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참사 희생자 시신 이송 과정이나 유족 간 관계 차단의 시도 등에 대해서도 다룰 것이다. 아울러 희생자나 유족, 생존 피해자 등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해서도 저희가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 위원장은 "(특별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에 부여된 과업을 반드시 완수해 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이소선 합창단과 가수 장필순씨가 참석해 추모 공연을 했다. 여야 지도부를 비롯해 보라색 목도리를 두른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의 영정에 분향·헌화했다. 추모제가 종료되고 참석자들이 하나둘 행사장을 빠져나가자 유가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5분여간 가족을 잃은 슬픔에 통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