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조 세수 계산 틀린 정부, 기금 '가용재원'에서만 최대 16조 원 끌어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24년 세수재추계에 따른 재정 대응방안'을 밝혔다.
올해 국세수입은 예산안에서 전망했던 367조 3천억 원보다 29조 6천억 원 덜 걷힐 것으로 지난달 다시 추계됐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각종 기금의 여유자금이 예탁된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의 여유재원에서 4조 원을 가져다 사용한다. 또 서민들을 위한 주거복지, 도시재생사업에 사용해야 할 주택도시기금에서도 2조~3조 원을 활용한다.
정부는 공공자금관리기금의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예탁분을 4조~6조 원 가량 축소하면서, 본래 9조 7천억 원을 덜 보낼 뻔했던 지방교부세·교부금을 그나마 3조 2천억 원 더 내려보내서 유보분 규모를 줄이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계산 틀려놓고…외환 방파제, 서민 청약통장, 지자체 재정이 정부 쌈짓돈인가
이 가운데 외평기금은 원화 가치를 유지하고 외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조성하는 기금이다. 환율이 급등락하는 비상 사태에서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위해 모아둔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다.
그런데 정부는 56조 4천억 원이라는 역대급 세수 결손을 빚었던 지난해에도 외평기금 19조 원을 동원한 데 이어 이번에도 외평기금을 쌈짓돈처럼 사용하고 있다. 비판 여론에 지난달 국회 기재위에서 최 부총리가 외평기금에 관해 "20% 범위에서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하는 것을 현재 단계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는데, 부총리가 한 달여 만에 국회에서 한 말을 바꾼 꼴이 됐다.
연세대학교 김정식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환율이 내려갈 때는 환율을 올리기 위해 달러를 사야 하니 원화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환율이 너무 올라 야단이니 당장 궁여지책으로 원화 외평기금을 조금 전용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애초 정부가 세수 결손 때문에 2년 연속 외평기금에 손을 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우리 정부의 외환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로 실감했던 한국 경제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외평기금이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수준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명지대학교 우석진 경제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우리가 댐을 지을 때 다른 나라가 30년에 한 번 올 홍수를 기준으로 짓더라도, 우리나라는 홍수가 자주 발생하니 100년, 200년을 기준으로, 더 엄격하게 짓는 것이 당연한 것과 같다"며 "정부가 재정을 잘못 운영해 세수 결손을 내놓고 '외평기금이 많이 쌓여있다'며 돌려쓰는 것은 한심하고 악질적인 얘기"라고 비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6월 청약저축에서 공공분양주택을 청약할 때 인정되는 월 납입 인정액을 10만 원에서 25만 원으로 높인 바 있다. 당시 정부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에 건설 경기를 부양하느라 끌어다 쓴 주택도시기금이 바닥을 드러내자 서민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냐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지방 집값 양극화 속에 가계대출 관리로 은행권 대출 문턱까지 높아졌는데, 정작 부동산 주택도시기금의 본래 목적인 주거복지·도시재생 사업에는 소극적인 정부가 엉뚱한 곳에만 돈을 허비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충남대학교 정세은 경제학과 교수는 "여유 자금이라지만, 결국 기금은 조성해야 하는 사업이 있고 대응하는 자산이 있는데 이를 뺏어 쓰는 것"이라며 "따로 빚을 내지 않아 전체 부채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금으로 해야 할 사업 자금이 사라진 셈이니 본질적으로는 빚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와 같은 기금 활용이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중앙정부 내 돌려막기라면, 받아야 할 지방교부세를 2년 연속 눈 뜨고 빼앗긴 지자체들에게는 재정난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기초단체 중에서 통합안정화기금의 잔액이 0원인 곳이 17곳"이라며 "지자체 비상금이라고 할 수 있는 통합안정화기금에서 예치금 잔액을 감소시키는 것은 지방소멸을 정부가 자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성장률 하향조정 불가피한데…"세수 결손도 못 막고 재정 역할도 못하면 어쩌나"
김정식 교수는 "계속 이런 식으로 메꾸기는 어렵고, 결국 경기가 살아나야 세수가 들어와 재정 적자를 메꿀 수 있는데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이면서 내수 경기가 줄어들어 세수가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며 이번 정부 방안이 결코 중장기적 대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 2분기 GDP(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역성장(-0.2%)한데다 3분기에도 전기대비 0.1% 성장에 그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마당에 '전년과 같이 예산 불용액이 발생할 것이니 이를 활용하겠다'는 정부의 접근법부터 틀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석진 교수는 "애초 현재 세수 결손 규모는 기존의 경제성장률 예측을 기준으로 계산했는데, 절대로 정부가 예상한 2.6% 성장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 있는 재정을 모두 써도 불황을 막지 못해 확장 재정을 펼쳐도 모자랄 판에 불용분이 발생할 것이니 이를 활용하겠다는 것부터가 정부의 경기 판단과 민생에 대한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 나아가 정세은 교수는 "지난해에도, 올해도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기금을 전용하는데도 국채를 발행하지 않으니 부채가 없다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고 "현재 세수 결손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을 지고 추경을 통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