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가시밭길 위 유가족 향한 '독설'…사회적 방패막도 '희미'

오늘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2년간 판결문 보니…'2차 가해' 관련 판결 상당수
모욕 인정했지만…"표현 적나라하지 않아" 무죄도
방심위 심의는 올해 0건…"문제 게시글 없다"는데
유가족 "2차 가해 여전" 토로
급기야 언론에 '댓글창 닫아달라' 요청

10.29 이태원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에 국화가 놓여 있다. 황진환 기자


"이곳을 찾아왔던 아이들이 그렇게 숨을 거두고 많은 부상을 당했는데, '왜 여기를 찾아왔느냐', '여기를 왜 놀러 왔느냐'고 말을 하는 그런 모욕적인 이야기들 때문에 너무나 힘들고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두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 선 고(故) 이주영씨의 아버지이자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 운영위원장은 이같이 말했다.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지난 2년 동안 세상을 향해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 함께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외쳐왔다. 그런 그들에겐 매일 같이 독설이 날아와 꽂힌다. 잠깐이라도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차마 하기 힘든 말이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오프라인과 기사 댓글 등 온라인에서 가시 돋친 말들을 마주한다"며 절망감을 토로했다.
 
"놀러간 사람들이 잘못"이라며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글들은 법원에서 유죄판결까지 이뤄졌지만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 급기야 유가족들이 언론사에 '댓글창'을 닫아 달라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현실은 이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방패막도 점점 희미해지는 모양새다. 특히 온라인 속 '2차 가해성' 글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심의는 사실상 올해부터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원참사' 판결 상당수 2차 가해 관련…'표현 적나라하지 않다' 무죄도

10.29 이태원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에서 열린 빌보드 개막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29일 CBS노컷뉴스가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 등에서 '이태원참사'가 언급된 형사 재판 판결문을 살펴본 결과 총 14건 중 6건이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 사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6건 중 5건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가 적용된 사건이었다. 5건 중 4건은 벌금형이 선고됐고 1건은 무죄가 나왔다.
 
나머지 1건은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된 사건이었는데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22년 11월 23일 휴대전화로 한 희생자에 관한 기사에 성적인 표현과 함께 "(거기에) 몰려간 게 자랑이냐"는 댓글을 남겼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피고인은 국가의 보호 의무 방기 속에 아들을 잃고도 국가로부터 따뜻한 위로조차 받지 못한 유족에게 격려와 위로를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그 가슴에 못을 박는 혐오적 선동들에 허위 사실 공표의 방법으로 가담함으로써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감과 좌절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하는 점, 별다른 전과 없는 점, 피고인에게 진지한 성찰의 계기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점"을 이유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5개 사건은 모두 온라인상에서 희생자를 향한 성희롱성 글을 올린 경우였다. 4건은 1심에서 모두 벌금형이 선고됐는데 벌금은 150만 원~1천만 원 사이였다.

나머지 1건은 그 표현이 적나라하진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와 관련해 1심 재판부는 "메시지가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을 성적 대상화 해 비하하고 모욕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노골적인 방법으로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선고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한 느낌을 넘어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 역시 1심의 판결을 인용하며 항소를 기각했다. 비슷한 사건들에 대해 법원이 유가족들의 겪었을 고통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처벌엔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고(故) 진세은(당시 21세)씨 아버지 진정호(50)씨는 "(유가족들이 보고 듣는 2차 가해에 비하면) 기소되는 건 자체도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며 "희생자들을 향한 2차 가해 사건은 엄연히 사자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음에도 정보통신망법으로만 다뤄지는 경우가 많아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유가족 고소도 고려 중인데…방심위 "올해 문제 된 게시글 없었다"

10.29 이태원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에서 빌보드 개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

유가족들은 참사 2주기인 최근까지 자신들의 목소리를 다룬 기사에 '악플'들이 넘쳐나자, 급기야 언론사에 '댓글 창 폐쇄'를 요청했다. 피해 당사자가 대책을 스스로 강구한 것이다.

진정호씨는 "유튜브 등에서 친구인 희생자들에 대한 2차 가해 댓글에 노출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참사 피해자도 있는 상황"이라며 "유가족에게 '돈 때문에 이런 짓 하냐'를 넘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행사나 집회에서도 많이 듣고 있어 참담함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유가협은 지난 25일 포털 사이트와 언론사 측에 "혐오·모욕성 내용으로 2차 가해 우려가 커진 뉴스 댓글 창에 대해 26일부터 31일까지 6일간 일시 중지를 요청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전달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태원 참사 관련 심의현황.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온라인에서의 혐오·모욕성 발언들을 심의·제재하는 시스템이 사실상 멈춘 것도 유가족들이 직접 나선 배경으로 분석된다. 방심위의 '이태원참사 관련 잔혹, 혐오, 차별·비하 정보 심의 현황'을 보면 2024년엔 심의나 시정 요구가 이뤄진 사례가 0건이었다. 2022년에는 총 1082건, 지난해에는 924건을 심의했지만 올해는 단 한 건도 살펴보지 않은 셈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방심위는 2022년 1082건 중 1032건에 대해 시정 요구를 조치했다. 지난해에는 924건 중 916건을 시정 요구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문제 되는 내용이 발견되면 심의를 하는 건데 올해는 문제가 되는 게시글이 없어서 통계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유가족 측은 올해 초 작성된 일부 커뮤니티 글에 대해 경찰 고소 등 법적 대응도 준비하고 있다. 진씨는 "권한을 가진 방심위, 경찰청, 행정안전부 등 국가기관이 (2차 가해 문제에)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또 포털도 일부 적나라한 비난 글을 그대로 노출시키지 않고 막아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이정민 유가협 운영위원장은 "유가족들이 2차 가해성 댓글을 보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서 최소한의 조치로 댓글 창을 닫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며 "일부 게시글에 대해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지만 유가족들이 고소해서 재판하는 그 과정도 굉장히 괴롭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2차 가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시민들이 알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2차 가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서에 담아 (이 부분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한편 이태원참사 2주기인 이날 전국 곳곳에선 추모 행사도 열린다. 오전 11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한국인과 외국인 유가족들이 모두 참석하는 '이태원참사 2주기 진실과 기억 추모식'이 열린다. 오후에도 경기 수원, 강원 강릉, 대구시 등에서 각각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지역 추모행사가 진행된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