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혐오와 차별을 오감 중 하나로 느낄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 다가올까. 우리 사회를 통찰해 온 강유가람 감독은 첫 장편 극영화 '럭키, 아파트'에서 '악취'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상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영끌로 마련한 아파트는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가 꿈에 그린 보금자리다. 하지만 선우의 예기치 못한 실직으로 희서 혼자 대출이자를 떠안게 되자 둘 사이는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한다. 한편, 언제부턴가 아파트를 감도는 악취 때문에 두 사람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선우는 악취 원인을 밝히려 애쓰다 아파트 주민들과 충돌을 빚는다.
'이태원' '우리는 매일매일' 등을 통해 현시대에 대한 뛰어난 통찰과 해석을 보여준 강유가람 감독이 처음으로 장편 극영화를 선보였다. '럭키, 아파트'는 여성, 노인, 소수자 등을 향한 혐오와 차별을 감각적인 방식으로 포착해 '아파트'라는 일상적이면서도 사회 속 작은 사회 안에서 풀어냈다.
'럭키, 아파트'는 공동체인 듯 파편화된, 주거 공간인 듯 사유 재산인, 복합적인 현대 사회의 상징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혐오와 차별, 그리고 단절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다.
안정적인, 그야말로 '보금자리'라고 불려야 마땅한 주거 공간인 아파트는 악취로 인해 점차 불편한 공간이 된다. 그리고 악취는 아파트에 서서히 퍼져 나가며 불안과 아픔, 혐오와 차별을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악취 그리고 혐오와 차별은 닮은 꼴이다. 영화에서 악취를 가장 크게 느끼고 불편해하는 인물은 바로 선우다. 성소수자라는, 일부 사회가 정상성을 벗어났다고 말하는 선우를 향한 혐오와 차별의 시선은 당사자인 선우 자신이 가장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다른 아파트 주민들 역시 악취를 느끼긴 하지만, 선우만큼 예민하지 않다. 오히려 예민하지 않은 척하려 한다. 그렇지만 주민들도 악취를 느낀다는 것은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이 알게 모르게 혐오와 차별이었음을 알려준다.
악취를 인지한 후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역시 선우와 다른 주민들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인다. 선우는 가장 적극적으로 악취를 없애기 위해 나서지만, 아파트 주민들의 고민은 오직 한 가지다. 바로 '집값'이다. 여기서 현대 사회의 또 다른 그림자가 하나 더 모습을 드러낸다.
악취의 원인은 선우와 희서의 아랫집 1310호에 사는 할머니의 고독사로 인한 것이다. 선우는 1310호 할머니가 홀로 외롭게 죽은 후 방치됐다는 사실을 안 후 악몽을 꿀 정도로 그 죽음을 마음 깊이 신경 쓴다. 극 중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선우가 1310호 노인에게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격리되고, 단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아파트라는 공간은 집합체이지만, 파편화된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노인의 죽음에 애도하기는커녕 혹시라도 아파트 바깥으로 사실이 알려지며 집값을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선우가 악취를 없애고자 하는 것도, 1310호 할머니를 애도하고자 하는 것도 못마땅하기만 하다.
그러나 선우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악취를 없애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악취를 없애려 나선 과정에서 할머니의 지인을 만난 선우는 할머니를 진심으로 애도하고자 하는 지인의 부탁까지 들어주고자 한다.
가장 낮은 곳, 사회 보장제도의 바깥, 공동체라는 울타리 밖에 놓인 약자이기도 한 선우는 같은 약자를 보듬고 도와주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작은 연대이고, 제대로 된 애도다. 그리고 이는 지금 세상에 가장 필요하면서도 절실한 가치들이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그런 아파트라는 공간 안에서 악취라는 소재를 통해 벌어지는 일들, 보이는 모습들은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식으로 작동되고 있는지 압축해 보여준다.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여성과 노인, 소수자 심지어 길고양이라는 약한 존재들을 향한 여러 가지 혐오와 차별이 계속해서 드러난다. 이는 '정상성' '보통'이라는 말을 갖고 혐오와 차별임을 부정하며 나타난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다 보면, 절대 스크린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악취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즉, 혐오와 차별이라는 악취를 느끼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게 바로 강유가람 감독의 힘이다.
'럭키, 아파트'는 혐오와 차별을 말하는 영화인 동시에 선우와 희서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관계와 각자의 내면에서 갈등과 충돌을 빚는다. 또한 각자가 어떻게 세상의 혐오와 차별에 맞서고 있는지, 그 안에서 그들이 어떤 고민을 안고 불안을 지니면서 살아내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렇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두 사람은 혐오와 차별 앞에 함께 맞서고 서로를 좀 더 이해하며 둘의 관계는 물론 각자도 한층 단단해진다.
단편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주로 다큐멘터리를 연출해 왔던 강유가람 감독은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혐오와 차별을 '악취'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으로 치환해 보여줬다. 우리 사회를 깊이 있게 들여다봐 온 감독의 시선이 장편 극영화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펼쳐지는 것을 목격한다는 건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여기에 손수현, 박가영이 보여준 현실에 발붙인 연기는 관객들을 '럭키, 아파트'에 발붙이며 선우와 희서의 성장에 함께 참여하게 만든다. 두 배우의 다음, 그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96분 상영, 10월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