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의 막대한 국세수입(세수) 감소로 지방교부세 등 지방자치단체 주요 재원까지 쪼그라들면서 지역별 '민생' 사업들이 발목 잡히고 있다.
2년간 세수결손 86조 누적, 말라가는 '지자체 곳간'
2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정부의 세수 재추계 결과 올해 세수는 기존 세입예산보다 29조 6천억 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따라 지방교부세도 4조 1267억 원(광역 1조 1830억 원·기초 2조 9437억 원) 삭감돼 지자체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역대급 세수결손 금액인 지난해 56조 4천억 원보다는 줄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2년간 누적 세수결손액이 86조 원에 달해 지방정부 재정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
지방교부세를 비롯한 국가 보조금 등은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시 등을 제외한 대부분 지자체 재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지역별 사업들이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가의 세수결손이 거듭되면 지자체들도 '돈 줄'이 마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자체가 비상 시 끌어 쓰는 통합재정안정화기금마저 큰 폭으로 줄고 있다. 해당 기금은 지난해 기준 30조 7769억 원으로 전년보다 36.5%나 떨어졌다. 잔액이 바닥 난 지자체는 17곳, 기금을 아예 설치하지 못한 지자체도 13곳에 달한다.
특히 이번 세수 재추계에서 기존 예산 대비 금액 규모가 가장 크게 떨어진 세수 항목은 법인세(14.5조 원↓)다. 소득세(8.4조 원↓)보다 낙폭이 컸다. 기업 등에 대한 세금 감면 기조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현 정부는 대기업 등을 대상으로 법인세 인하와 각종 세액공제·비과세 혜택 등을 확대했다. 또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집권 직후 대거 낮췄고, 특별공제와 납부유예를 도입하는가 하면 기본공제금액도 높여 납세 대상을 축소했다. 이른바 '부자 감세' 논란에 휩싸인 배경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경기부양과 긴축재정 등을 도모해 국가재정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지만, 동시에 세수결손의 주원인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부자 감세 기조를 물리거나 별도 추가경정예산 계획 없이, 우선 교부세 등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정감사에서 "관계부처·지자체와 기금 수지, 지자체 부담 최소화 방안 등을 협의하고 있다"며 "감세 정책으로 인해 그런 일(세수결손)이 이뤄졌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국가 '세수 펑크'에 지자체 민생사업 '직격탄'
이 같은 정부의 세수 펑크로 각 지역의 민생도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에서 지자체로 내려가는 '돈 줄'이 마르면서 현안사업들이 중단‧축소되거나 백지화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안양시는 장기미집행 된 도로 개설과 지하차도 보수 등 교통편의와 침수방지를 위한 안전분야 공사비 100억 원을 예산편성 보류했다. 침체된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한 지역화폐 발행 지원금도 기존 132억 원에서 23억 원으로 80% 이상 줄었다.
평택시의 경우 대규모 산업단지와 신도시 건설 등 급격한 도시 팽창으로 교통체계 개선이 시급한데, 이와 관련한 예산 61억여 원이 실시설계용역 도중 반토막이 난 상태다.
사정은 지방으로 갈수록 더 열악하다. 전북 김제시에서는 지방소멸 방지를 위한 마을기업고도화와 청년멘토육성, 농촌축제 지원 사업 등 3개 현안사업을 전면 중단하는가 하면, 지능형교통시스템(ITS) 구축과 소아 야간·휴일 진료센터(달빛어린이병원) 운영, 어르신 건강과 임신·난임 관리 서비스 등 주민 편익과 건강 사업 13개 예산을 대폭 축소했다.
광주광역시 동구의 경우 민원인들을 위한 공공시설인 청사주차빌딩 건립 공사를 멈췄고, 학동 행정복합센터 조성은 133억 원에서 65억 원으로 예산이 줄어든 가운데 사업이 연기됐다.
그나마 재정자립도가 양호한 서울지역도 녹록지 않다. 서울 은평구에서는 상권 활성화를 위한 북한산페스티벌 등 지역 대표축제들이 잇따라 축소되고 있고, 어린이 놀이시설과 노후화된 문화예술회관 건립은 제동에 걸렸다.
이에 최근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자체장 등으로 구성된 단체들은 "윤석열 정부가 부자 감세에 따른 세수결손의 책임을 지방정부에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경기도내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정부 예산 대비 세수결손 만이 아니라 법인세를 크게 줄여 세수 자체가 감소하면서, 실물경기·부동산 시장 침체까지 더해져 '삼중고'에 처해 있다"며 "법인세 변화 추이를 정부가 왜 제대로 예측, 진단하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 때도 이정도까진 아니었다"며 "내년 예산안은 세입이 소폭 증가인 반면 세출은 왕창 늘어난다. 대형 사업과 민간단체 보조금을 크게 줄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미래세대 위한 '교육'분야 사업들도 흔들
지자체뿐만 아니다. 세수 공백은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분야에도 치명적이다.
최근 시·도교육청들 역시 '재정 비상' 선언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정근식 교육감 취임 직후 사상 초유의 4400억 원 규모 지출 구조조정에 나서, 일선 학교 운영비와 공사비 등을 줄이고 일부 교원 채용 계획도 중단하기로 했다. 학생들 안전과 직결되는 시설사업비만 3천억 원 끊기게 됐다.
강원도교육청도 특수교육원 등 내년에 지으려던 교육시설 10여 개에 대한 예산 8천억 원 재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교육교부금 2500억 원 정도가 줄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금에 손을 대야하는 실정이다.
급기야 일부 수도권 지자체에서는 지역아동센터 급식을 도시락으로 바꾸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상대적으로 예산이 덜 드는 방식을 택하려는 것으로 아이들 먹을거리의 '질적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18세 미만 아동, 청소년에게 무료 급식과 교육, 놀이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전문가들 "지방 재정난은 감세의 결과…부담 완화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경기 부진과 함께 정부의 기업 감세·긴축 재정 기조가 맞물려 예산편성 대비 세수결손은 물론, 세수 규모 자체의 감소로 이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구멍 난 나라 살림을 메우기 위해 지방정부에 과도한 부담을 떠넘겨 민생 사업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른다.
다만 전체 경제 사이클이 침체된 만큼, 정부의 재정난에 대해 지자체도 어느 정도 고통을 분담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세수결손보다 세수감소가 더 중요한 현상이다. 예산 대비 개념인 결손과 달리, 세수감소는 감세에 따른 직접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라며 "부동산이나 경기침체 영향도 있지만, 감세 효과도 분명한 세수감소 원인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합)은 계속 3% 안팎을 유지하는데 3년 전보다 국세수입이 감소해 왔다는 건 감세 효과 말고는 설명이 어렵다"며 "이명박 정부는 감세하면서도 지방소비세와 지방소득세 등 지방정부 재원 대책을 마련했는데, 현 정부는 그나마 있던 지방채 매입 관련 예산마저 줄이는 등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지방세연구원 김홍환 연구위원은 "법인세 등 세수 감소가 지방교부세 감소로 이어져 지방재정의 압박 요인이 된 것은 맞다"면서도 "단 전체적인 국가경제 사이클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측면도 있는 만큼, 지자체도 어느 정도 고통을 분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