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성 평가에 노동자 참여? 폭염 에어컨 요구했다 줄해고"

尹정부 산재예방 핵심 대책 '위험성 평가', 현장에선 유명무실?
민주노총 "61.6%만 정기 평가…건설현장선 15분짜리 TBM으로 대체"
실시 대상·노동자 참여 관련 법 조항조차 지키지 않는 곳이 다수
"폭염기 휴게실 요구했다가 팀 전체 해고…고객 갑질 대책에 '스트레스 완화 영상'" 호소도
"해외처럼 노조 참여 의무화하고, 법 위반시 처벌하도록 법 개정해야"

공사현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사진. 황진환 기자

정부가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핵심 대책으로 내세우는 '위험성 평가'가 노동자의 실질적인 참여 없이 형식적으로만 운영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4일 오전 '위험성 평가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현장 증언대회'를 열어 현행 위험성 평가 제도의 실태를 지적했다.

'위험성 평가'는 사업주가 스스로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평가한 뒤 위험성을 낮추기 위한 조치를 직접 마련·실행하는 제도로, 윤석열 정부 들어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세운 '자기규율 예방체계'에서 핵심 제도로 꼽힌다.

하지만 법에 평가를 실시하기 위한 의무사항만 정했을 뿐, 정작 평가 이후 결과를 보고할 의무나 이를 어겼을 때 내려지는 처벌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실제로 민주노총이 지난 8~10월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있는 462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위험성 평가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61.6%만 '정기적으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다'고 답했을 뿐, 22.9%는 아예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또 15.3%는 위험성 평가를 하되 정기적으로는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마저도 대표적인 산재 위험 업종인 건설업 현장 중 83.9%는 고장 15분 내외로 실시하는 TBM(작업 전 안전점검회의)으로 정기·수시평가를 대체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 61.1%만 모든 유해위험업무를 대상으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반면 28.8%는 '실시 대상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할 정도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2.4%는 '감정노동·정신건강 분야는 실시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7.3%는 최근 중대재해가 잇따랐던 '화학물질 분야'에 대해 실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위험성 평가 지침에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도 참여하고, 이를 위해 사업주가 위험성 평가 참여자에게 관련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절반을 넘는 57%가 위험성 평가 방법을 결정할 때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유해위험 요인 파악(57%), 현장 개선안 수집(66%), 현장 개선 이행 점검(67%) 등 법으로 정한 노동자의 참여도 지키지 않는다는 답변이 훨씬 더 많았다.

또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41.2%만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고, 28.8%는 교육을 실시하지 않거나 하는지 여부조차 알지 못했다. 또 관리감독자(22.4%)나 회사 업체만(7.6%) 교육을 실시한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형식적으로 이뤄진 위험성 평가가 실제 현장 개선으로 이어진다고 체감하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았다. 평가 이후 대부분 현장 개선이 진행된다는 답변은 34.2% 뿐, 51.7%는 형식적 개선에 그치거나 일부만 개선됐다고 답했다.

또 34.2%는 원청업체가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에 대해 위험성 평가를 아예 하지 않는다고 답해 3분의 1가량이 현행 법을 위반하고 있었고, 33%는 위험성 평가는 하지만 형식적이라고 지적했다.

안전한 노동 여건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도 잇따랐다.

건설산업연맹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폭염기에 휴게실을 요구했다가 본인이 속한 팀 전체가 해고당하고, 위험상황을 신고했다가 계약해지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건설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위험성 평가에 대해서는 "148개 현장을 대상으로 9월 9일~30일 설문을 진행한 결과 TBM으로 위험성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 확인되는 곳은 59.3%에 달했고, 4곳은 이마저도 아예 하지 않았다"며 "건설노동자 83.9%는 15분 이내에 TBM을 한다고 답한 반면, 노동자 의견을 수렴·반영하는 곳은 17.2% 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정부·관련 업계가 추진하는 '스마트 위험성 평가'의 실상도 "AI가 제시하는 솔루션은 노동자 권한 밖의 사항이 많다"며 "지게차 충돌사고 예방 방법이 모두 원청이 할 수밖에 없는 영역인데 보장되지도 않은 '작업중지권'을 노동자가 요구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옭아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노동부가 직접 내놓은 '최소- 상시 평가 중심의 위험성 평가 실행 안내서'에 원청의 관리감독자가 현장 노동자를 대신하도록 해 노동자의 참여를 제외시킬 수 있도록 명시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비스연맹 안중현 전국가전통신노조 정책국장은 "청호나이스의 경우 전체 직원이 아닌 지점장과 현장 노동자 1명이 설문지를 작성한다"며 "코웨이의 위험성평가 결과를 보면 고객응대 과정에서 발생한 폭언, 인격모독, 폭행 관련한 개선대책이 '고객응대 매뉴얼 실천하기'고, 고객의 폭언 폭행에 대한 개선대책이 '스트레스 완화 영상 시청'인데 이마저도 영상을 틀어주지도 않는다"고 호소했다.

민주노총은 "현행 법에서는 위험성 평가에 대한 아무런 처벌 조항도 없고, 노동부 보고의무도 없어 정부 감독은 커녕 현황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외국은 노동조합 참여가 규정되어 있고, 부적정한 실시에 대한 처벌 조항도 있다"고 관련 법 개정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위험성 평가에 고객에 의한 폭언, 폭행 명시 △위험성 평가 결과에 따른 조치 대상에 종사자 규정 △위험성 평가 시 노동자에게 교육을 실시하고, 위험성 평가 전 과정에 노동자 대표,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노동자 참여 및 활동 시간 보장 △위험성 평가 미(未)실시·부적정 실시에 대한 처벌 조항 도입 △위험성 평가 결과 노동부 보고 의무화 하고, 노동부는 노동자 참여 및 위험성 평가 결과 이행 여부에 대해 정기적으로 감독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 위험성 평가 조항 개정 및 도급인의 의무, 특수고용 노동자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조항,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조항에 위험성 평가 관련 조항 추가 개정 등을 제시했다.

이날 참석한 민주노동연구원 이승우 연구원도 "위험성 평가에 노동조합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활동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며 "위험성 평가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대한 벌칙 조항을 신설하고 사업주 책임성을 강화하는 한편, 관련 노동자 대상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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