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변요한 "변영주 감독, 터프한 리더십"[EN:터뷰]

배우 변요한. TEAMHOPE 제공

배우 변요한에게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이하 '백설공주')은 마치 운명처럼 다가왔다. 마침 누명을 쓰고 징역을 산 실존인물의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 '백설공주' 대본이 그에게 왔다. 살인죄 누명을 쓰고 10년 간 복역하다 나온 고정우는 그에게 철저히 외로운 인물이었다. 휘몰아치는 감정과 상황에 호흡곤란이 와서 산소통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약자란 표현이 조심스러운데 정우는 그렇게 되어버렸죠.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말의 힘이 없어요. 대본을 봤을 때 기댈 곳도 없었지만 그 편에 서서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었어요. 얕은 감정과 보잘것없는 몸뚱이지만 던져서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딜레마의 연속이었고, 사연이 많으면서 힘이 없는 주인공이라 대사가 뒤로 갈수록 '감사합니다' 밖에 없더라고요. 씁쓸하고, 힘들고, 그런 말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모습이 연기하면서도 쉽지 않았어요."

촬영은 마쳤지만 편성 문제로 2년 간 방송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변요한은 분명한 확신을 갖고 '백설공주'를 기다렸다. 간절했던 작품이었던만큼, 오히려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 나가서 홍보하지 않았다. 작품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변요한의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백설공주'는 '굿파트너'란 막강한 경쟁자와 겨루면서도 기죽지 않았다. 시작은 2%대 시청률이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8.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무려 4배 가량의 상승을 이뤄냈다.

"'굿파트너'도 재미있게 보고 있었어요. 딱히 경쟁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편성이 미뤄진 것도) 부담감은 없었어요. 작품에 자신감이 있으니까 많은 분들이 봐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유튜브 채널이나 예능에 나가서 홍보를 해야 될 수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하지 않았고요. 일단 나가서 웃거나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작품만 바라보고 싶었어요. 옛날 감성이긴 하죠. 우리가 열심히 한 부분에 대해 우리가 자신감을 가져야 되는 거니까요. 매 순간 너무 치열했고, 고민이 많았어요. 선배님들이 그럼에도 정말 뜨겁고 대단한 연기를 보여주셔서 밀도가 높았거든요. 변영주 감독님에게도 신뢰가 있었죠."


배우 변요한. TEAMHOPE 제공

원래 변요한은 캐릭터와 현실의 '나'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편이라고. 그러나 '백설공주'의 고정우만큼은 아니었다. 캐릭터와 변요한의 균형을 잘 맞춰갔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번엔 계속 고정우를 바라보며 인간 변요한의 욕심을 다스렸다.

"'백설공주'는 우울감이 좀 있었어요. 더 깊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요. 지금 고정우는 다 빠져나갔거든요. 그래서 제 일상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다시 드라마를 매주 보니까 너무 마음이 무너져 보이더라고요. 확실히 정우를 봤을 때도 저는 약자 편에 서는 입장인 거 같아요. 정우는 최대한 지켜주고 싶었어요. 캐릭터에 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다른 작품들과는 좀 달랐어요. 그냥 계속 고정우를 바라본 거죠. 변요한이었다면 욕심을 낼 수 있는 순간들에서 정우가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가만히 있게 하자, 그랬던 순간들이 많아요."

변영주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이미 앞선 인터뷰에서 변영주 감독은 변요한의 연기와 캐릭터 해석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은 터. 변요한은 변영주 감독과의 작업을 '현장에서 처음 느껴보는 리더십'이라고 표현했다.

"처음 느껴보는 기질과 에너지였어요. 굉장히 터프하세요. 그러면서 연출가로서 가져야 하는 섬세함과 삶의 경험이 많으세요. 영화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분이고 장르 자체를 초월하는 분이거든요. 처음엔 제 컨디션을 체크하는 줄 알았는데 시작한 순간부터 '고정우'를 체크하시더라고요. 거의 '죽은 자는 말이 없다'의 수준이라 너무 리액션이 없으니까 연기가 단절되는 거 아닌가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더 깊은 본질을 함께 이야기하고, 정우 마음을 느끼면서 침묵을 선택하게 됐어요. 이게 엄청나게 넓은 통찰력과 리더십이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어른들은 변요한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과연 그 선배들만큼 연기를 사랑할 수 있을지 딜레마에 빠졌다. 주연의 무게를 여러 번 감당하면서 변요한은 때로 '버거움'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선배들에게서는 정말 '처음'의 마음이 느껴졌다고.

"모든 선배님들이 정말 순수하셨어요. 제가 딜레마가 오더라고요. 경력이 많은데도 순수하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연기를 사랑하시는데, 정말 열정이 지치지 않는 거예요. 저는 제 앞에 놓여 있는 것도 버겁거든요. 물론 사랑의 크기는 각자 다르지만 전 가끔 (연기를) 너무 사랑해서 힘들 때가 있어요. 선배님들은 마치 처음 연기하는 사람처럼 하시는데 '연기를 너무 사랑하시는구나' 싶었어요. 그게 어렵거든요."


배우 변요한. TEAMHOPE 제공

촬영을 하며 다친 다리가 말썽을 부려 난관도 겪었다. 독립영화를 찍었을 당시 다리 부상을 입어 수술을 했는데 이후 물리치료를 제대로 안 받다 보니 연골에 염증이 생겼다는 전언이다. 아예 많이 움직이거나 운동을 할 수 없어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촬영에 들어갔는데 다리 수술한 게 재발했어요. 사실 저는 이런 불편함조차도 정우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요. 촬영이 끝나면 매주 침을 맞으러 가고, 줄기세포 주사까지도 맞았거든요. 너무 당황스러운 게 운동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 올해 초에 수술을 했는데 이제 살 거 같아요. 그 때 하차할 수는 없었고, 완주해서 다행이죠. (정우 연기에)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리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컨디션이 안 좋은 얼굴이 그대로 나왔는데 그게 참 정우 같았어요."

이제 40대를 코 앞에 둔 변요한에게 30대란 연기와 뜨겁게 사랑한 시간이었다.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갈 때 되면 가겠죠. 자연스러운 현상을 믿습니다"라고 여유를 보였다. 사랑이 없으면 배우를 할 수 없지만 우선 40대가 되면 스스로를 정리정돈 할 생각이다.

"보통의 감정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고 늘 생각해요.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죠. 음식을 먹었을 때 과식하지 않거나, 내려놓는 것, 또 운동을 하기 싫은데 선택할 수 있는 것, 연기를 할 때도 좀 더 고심하고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뒤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하고요. 그렇게 안하고 살았던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거니까요. 20대에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지금도 그래요. 30대 시절에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도전은 다해본 거 같아요. 40대는 사람으로서 행복한 기준은 찾았고, 배우로서 어떻게 가야 할 지 정돈해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의 행보에서도 변요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의 '몰입'이다.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선 굵은 작품들이 그의 필모그래피에 가득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변요한이 선택해왔고, 또 선택할 작품은 그가 자신을 온전히 내던질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장르도 하고 싶은데 모든 작품들이 원하는대로는 안되는 거 같아요. 작품을 선택해야 되는 순간에 결국 제 본질과 맞닿게 되거든요. 이제 저만을 위해서 연기하지 않기도 하고요. 같은 상황이 왔을 때, 저는 조금 더 저를 작품에 던지고 싶어요. 그런 장르를 선호해서 본의 아니게 진중한 분위기의 작품이 많았던 거 같아요. '백설공주'처럼 제가 좀 힘들고, 단순히 히어로의 권선징악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잘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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