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으로 경기가 하루 더 연기되면서 결정을 바꿀 수 있었다. 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은 한국시리즈 1차전이 중단된 이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시리즈 전체 판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서 경기가 멈췄기 때문에 대비책을 세워야 했다.
KIA는 지난 21일 광주 기아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한국시리즈 1차전을 0 대 1로 뒤진 채 일단 경기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6회초 무사 1, 2루 삼성 타석에 김영웅이 선 상황에서 경기장에는 많은 비가 쏟아졌고, 심판진은 가을야구 최초로 서스펜디드 게임을 선언했다.
이 경기는 22일 재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날 내린 폭우 탓에 그라운드는 경기를 정상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범호 감독의 고민은 하루 더 늘었다. 가장 큰 숙제는 투수 기용이었다. 이 감독은 김영웅에 가장 강한 투수를 투입할지, 번트 수비가 가장 좋은 투수를 기용할지, 좌투수를 쓸지, 우투수를 올릴지, 젊은 투수를 내보낼지에 대한 고심이 깊었다.
중단일로부터 2박 3일이 지났고, 이 감독은 마침내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 감독은 23일 "작전상 말씀드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22일 내렸던 결정과 23일 선택이 바뀌었다고도 귀띔했다.
결국 마운드에는 우완 전상현이 섰다. 이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전상현은 6회 삼성 타선을 상대로 압도적인 구위를 자랑하며 무실점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어 7회에도 등판해 아웃카운트 2개를 처리하고 임무를 마쳤다. 말 그대로 KIA를 엄청난 위기에서 끄집어낸 영웅이었다.
재밌는 점은 당초 이 감독의 결정은 전상현이 아닌 이준영이었다는 것. 이 감독은 23일 열린 두 경기가 모두 끝난 뒤 "원래는 좌투수 이준영을 넣으려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준영으로 아웃 카운트를 하나 올리려 했다. 그게 만약 안 됐다면 노아웃 만루 상황에서 전상현을 투입할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투수 코치들과 상의한 끝에 결정을 바꿨다고 했다. 이 감독은 "(김영웅이) 번트를 댈지, 강공으로 갈지 고민이 많았다. 비가 와서 하루를 더 고민했다. 불펜진 중 어떤 투수가 가장 구위가 좋을지 고민했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불펜 투수 중 정해영을 제외하고는 전상현이 제일 좋았다. 정공법으로 밀고 나갔다"고 설명했다. 또 "구위만 믿고 올렸는데 잘 막아줘서 1차전을 이겼다. 그래서 2차전도 더 쉬운 경기를 운영할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한 이닝 위기 상황에서 최상의 결과를 끌어낸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분위기를 제대로 탄 KIA는 1차전에서 결국 5 대 1 역전승을 거뒀다. 곧장 열린 2차전에서도 기세는 이어졌다. KIA는 1회부터 5점을 뽑아냈고, 필요한 순간마다 타점이 터지면서 8 대 3 완승을 거두고 하루에만 2승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