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김 여사가 1차 '주포'로부터 받은 4700만원에 대한 성격이나 '김 여사만 빠졌다'는 2차 주포의 편지, 김 여사도 'BP패밀리'라고 진술한 부분 등은 불기소결정서에서 다뤄지지도 않았다. 김 여사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과 검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다.
"인정할 뚜렷한 자료가 없다"는 판단의 행간
24일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김건희 여사 불기소결정서는 20쪽. 문서 양식과 각주 등을 제외하고 검찰이 김 여사에 대한 불기소 이유를 담은 내용은 19쪽 분량이다. 이 가운데 검찰은 김 여사의 혐의점에 대해 "이를 달리 인정할 뚜렷한 자료가 없다"는 표현을 15차례나 사용했다.사건번호가 적힌 첫 장부터 피의사실 요지, 피의자 요지, 관련 법리 등 김 여사 피의 사실에 대한 쟁점을 다루기 전까지 5쪽 이상이 할애된 점을 감안하면, 한 페이지에 '자료가 없다'는 표현을 1번 이상 사용한 셈이다. '증거가 없다'는 점이 검찰의 판단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여사의 쟁점 중에서 검찰이 가장 길게 불기소 이유를 설명한 부분은 이른바 '3분 거래'와 '7초 거래'다. 검찰은 지난 17일 불기소 처분 직후 브리핑에서도 이 부분을 가장 의심스러웠던 거래라고 지적했다. '3분 거래'는 2010년 10월 28일 블랙펄인베스트먼트 이사 민모씨가 2차 주포 김모씨에게 '지금 처리하시고 전화 주실듯'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직후 김 여사가 10만주를 매도주문했던 것이고, '7초 거래'는 2020년 11월 1일 김씨가 민씨에게 '매도하라 하셈'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7초 뒤 김 여사 계좌에서 8만주가 매도됐던 거래다.
김 여사는 검찰 조사에서 해당 거래는 자신의 의지로 체결한 거래라고 진술했고, 검찰도 대신증권은 타인에게 운용을 맡긴 계좌가 아닌,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과 상의해서 운용한 계좌라고 판단했다. 주가조작으로 판단된 거래를 김 여사가 직접 했다는 것이다.
2차 주포 김모씨→블랙펄 이사 민모씨→블랙펄 이종호 대표→도이치모터스 권오수 회장. 검찰이 수사를 통해 확인한 연결고리는 여기까지다. 문제는 '권 회장→김 여사'의 연결고리다. 검찰은 이 부분에서 "이를 인정할 뚜렷한 자료가 없다"고 했다. 즉, 김 여사의 주문이 통정매매에 포함된 건 우연의 일치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증거는 없지만, 김 여사의 거래는 주가조작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검찰이 김 여사에 대한 휴대전화나 주거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 하지 않았던 사실은 부실수사 논란을 계속 부채질할 전망이다.
아울러 권 회장과 가깝게 지낸 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씨에 대한 강제수사가 없었다는 점도 부실수사 논란을 키우고 있다. 최씨 역시 김 여사가 마찬가지로 도이치모터스 초기 투자자다.
김 여사가 받은 4700만원 성격은?
김 여사에 대한 불기소결정서에는 김 여사가 주가조작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과 연관된 정황들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부분이 김 여사가 1차 주가조작 선수 이모씨로부터 4700만원을 받은 사실이다.
이씨 측은 김 여사에게 2010년 3월 4일 4700만원을 송금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투자에 대한 손실을 이씨가 보전해 준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검찰도 이와 관련해 이씨에게 직접 돈을 전달한 배경을 캐묻기도 했었으나, 해당 돈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손실 보전금이라고 하기에는 돈이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 여사는 주식을 팔지 않아 손실액이 확정된 것도 아니었고, 손실평가액도 4700만원보다 더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돈의 성격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김 여사와 이씨 간 개인적인 금전 문제로 받은 돈이라는 게 김 여사 측 입장이다.
'김 여사만 빠진다'는 편지는 묻지도 않았다
2차 주가조작 선수 김씨가 도피 중에 작성한 편지에서 김 여사가 언급된 부분이나 검찰 조사에서 김 여사를 'BP패밀리'라고 진술한 부분 역시 불기소결정서에 등장하지 않는다.검찰 관계자 역시 브리핑에서 편지에 김 여사가 언급된 부분에 대해서 "(그 부분은) 묻지 않았다"고 했고, 김 여사가 BP패밀리라고 진술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BP패밀리에서 BP는 블랙펄인베스트먼트를 '블랙펄'로 줄여 부른 것으로 보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검찰은 편지를 작성하고 BP패밀리 관련 진술을 한 김씨뿐만 아니라 BP패밀리로 언급된 이종호 대표 등을 모두 불러 조사했지만, 이들 모두 '김 여사가 주가조작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편지나 BP패밀리 진술 등과 관계없이 관련자들이 모두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인지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 여사가 현재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김 여사에 대한 이들의 진술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김씨가 도피 생활 중 작성한 편지에 '내가 가장 우려한 김건희 여사만 빠지고 우리만 달리는 상황'이라고 적은 내용이 오히려 신뢰할 만한 상황으로 볼 여지도 있다.
'항고'하면 검찰총장 손으로…'반전'될까
김 여사에 대한 수사는 우선 고발인들의 항고 여부에 달렸다. 2020년 4월 김 여사를 고발했던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황희석 변호사는 이미 항고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항고가 되면, 서울고검에서 관련 내용을 살펴보게 된다. 서울고검은 항고를 기각하거나 공소제기 명령, 관할청에 재기수사 명령 등을 내릴 수 있다. 재기명령이란 일선에서 다시 수사하라는 뜻이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지난 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항고가 되면 제가 철저하게 다시 한번 점검할 수 있도록 지휘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2020년 10월 19일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도이치 사건 등과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한 명령은 더는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추 장관이 행사한 수사지휘 문서에는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대검찰청 등 상급자의 지휘 감독을 받지 아니하고 독립적으로 수사한 후 그 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할 것을 지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사건이 중앙지검을 떠났기 때문에 심 총장의 수사지휘권에 문제가 없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다만, 항고나 재항고에서 검찰의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전망이다. 심 총장 역시 국정감사에서 "수사팀에서 모든 증거와 법리를 숙고해 처분한 것으로 보고 받았고, 수사팀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법원에 불기소 처분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절차인 재정신청은 불가하다. 재정신청은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고소인만 할 수 있고, 고발 사건 중에서는 직무유기나 뇌물죄, 직권남용 등 일부 공무원 범죄에 한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