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재무부담 가중으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가운데 정부가 전력사용량 절반을 차지하는 산업용에 한해 전기요금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서민경제에 부담을 주는 주택용 및 소상공인용 전기요금은 동결을 결정했는데, 이를 두고 국민 여론을 크게 의식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자릿수' 인상 강조…전력사용 많은 반도체 기업 등 10.2% 인상
23일 한전은 24일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이 평균 9.7% 인상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발표를 하면서 서민경제를 고려한 산업용 전기요금 한자릿수 인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산업용 중에서도 사용량에 따라 인상 폭에 차등을 뒀는데 대용량 고객 대상인 산업용(을) 전기요금은 1kWh(킬로와트시)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0.2%로 인상폭이 가장 크다.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갑) 전기요금은 164.8원에서 173.3원으로 5.2% 인상된다.
산업용(을) 적용대상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제철, 포스코, 삼성디스플레이 등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과 철강 등 제품 생산 과정에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들이 그 대상이다.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산업용(을) 적용을 받는 기업은 연평균 한 1억 1천만 원 내외의 요금 증가가 예상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의원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20대 법인이 납부한 전기요금은 12조4430억원인데, 이번 전기요금 인상분을 적용하면 내년에 이들 기업이 납부할 전기요금은 1조2천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정부는 물가 인상 등 서민 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주택용을 올릴 경우 악화할 여론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주택용 전기요금은 지난해 5월 이후 계속 제자리인 반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지난해 11월 이후 11개월 만에 또 인상을 결정한 것이다.
관련업계 한 전문가는 "지금 경기 상황이 워낙 안 좋기 때문에 여론의 눈치를 많이 본 것 같다. 우선 산업용을 올려 분위기를 지켜본 뒤 내년 상반기 쯤 주택용 인상도 시도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산업용, 전력사용 절반 넘어…"저항은 적고 인상효과 커"
산업용은 전체 이용자의 1.7%(약 44만호)에 불과한데, 전체 전력사용량의 53.2%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적용 대상은 적지만 전력 사용량은 많아 인상에 따른 효과가 크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대기업에 대해 고통 분담 차원이라는 게 하나가 있고, 부담 여력이라는 부분이 있다"라며 "이번 인상은 수출 중심의 대기업이 고통을 분담했으면 좋을것 같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경제계에서는 기업경쟁력 약화에 대한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전력 사용량이 많은 반도체, AI 산업 등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기업경쟁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한상의는 "제조원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연속해서 인상하는 것은 성장의 원천인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고 산업경쟁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전기요금 인상요인은 반영하되 산업계뿐 아니라 사회전반의 전기소비자들이 비용을 함께 분담하고 에너지효율화에 적극 동참하게 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도 "대기업에 대한 차등 인상으로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 상황에 놓인 국내 산업계의 경영활동 위축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업계와 학계 등에서는 현재 한전의 적자를 해소하고 전력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전기요금 현실화의 타이밍은 지금이 적절하다"면서도 "다만 산업용에 국한할 게 아니라 취약계층을 제외한 전반적인 전기요금에 대해서 에너지 절약에 대한 동력을 좀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좀 더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