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품종견 450여 마리를 번식 목적으로 사육하던 불법 번식장이 적발돼 동물단체가 대대적인 구출 작업에 나섰다.
열악한 환경에 방치된 탓에 일부 개들은 시력을 잃거나 자기 머리보다 큰 종양이 생기는 등 처참한 몰골로 구출됐다.
17일 오전 부산 강서구 대저동. 언뜻 봐도 허름해 보이는 건물로 가까이 다가가자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수백 마리의 개들이 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날 국내 15개 동물단체로 이뤄진 '루시의 친구들'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 외국 동물구조단체는 불법번식장에서 사육되는 개들을 구조하기 위해 모였다.
이 곳은 무려 25년 간 일명 '강아지 공장'으로 불리는 불법 번식장으로, 번식만을 위해 수많은 품종견들을 철장에서 사육하는 곳이다.
현행 동물보호법 상 반려동물을 생산, 판매하려면 지자체에 시설 허가 등을 받아야 하지만, 이 번식장은 어떠한 허가도 없이 불법 운영되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번식장 소유주는 "25년 동안 자식같이 사랑으로 키운 아이들"이라며 번식장 자체를 부인했지만 현장에서는 이 소유주가 지난 7월까지 경매장에서 강아지들을 판매한 거래 전표도 발견됐다.
동물단체는 소유주가 경남 김해에 소규모 강아지 번식장을 허가받은 뒤 불법 번식장에서 키운 강아지를 합법 번식장에서 태어난 것처럼 위장해 거래해온 것으로 추정한다.
불법 번식장을 적발한 동물단체와 부산시, 강서구 관계자들은 이날 구출 작업을 벌이기 위해 소유주를 설득한 끝에 소유권 포기각서를 받아내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동물단체에 따르면 560㎡에 달하는 내부는 마치 미로같은 구조로 4층으로 칸칸이 철제 뜬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각 철장 마다 20여 마리의 개들이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환경에서 서로의 배설물을 밟고 살고 있었다.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던 개들의 수는 무려 455마리로, 대부분 푸들과 말티즈, 포메라니안 등 대중적인 반려동물로 인기가 높은 견종이었다.
동물단체 관계자는 "내부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며 "저기서 수백 마리 강아지들이 새끼를 낳는 기계 취급을 당하며 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생지옥"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응급치료가 필요한 개들이 먼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햇빛을 본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내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기력 없이 누워만 있었지만 수의사 품에 안겨 꼬리를 흔들었다.
급하게 마련된 처치대 위로 눕혀진 리트리버는 갈비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영양이 부족한데다, 뒷다리를 사용하지 못해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연이어 구출된 치와와는 두 눈 모두 시력을 잃은 상태였고, 비글은 자신의 머리보다 더 큰 거대한 유선 종양 덩어리를 갖고 있는 등 처참한 모습이었다.
좁은 철장에서 다리가 다친 상태로 방치돼 걸을 수 없게 되거나 피부에 진드기와 기생충이 들끓고, 고령에도 최근까지 출산을 해 몸이 약해지는 등 심각한 건강 상태의 개들도 속속 구출됐다.
치료가 필요한 개들은 먼저 동물병원으로 이송됐고, 나머지에 대한 구조 작업에는 이틀 이상이 소요될 예정이다.
동물단체들은 부산시와 강서구의 안일한 행정과 방관이 사태를 키웠다고 비판하면서, 동물학대의 온상이 되는 불법번식장의 뿌리를 뽑기 위해 반려동물 경매장과 '펫샵'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단체 관계자는 "이곳은 2020년도에 불법 건축물로 강제이행금이 부과됐지만, 수 년동안 지자체에서 이 장소를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며 "합법 소규모 번식장 명의를 이용해 불법 번식장에서 태어난 강아지를 판매하는 구조를 없애기 위해선 경매장과 펫샵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동물보호 단체연대 '루시의 친구들'은 동물학대를 막기 위해 반려동물 경매장 철폐와 반려동물의 생산과 판매를 제한하는 법 제정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