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무죄…유가족 "납득 못 해"

법원 "업무상 과실·인과관계 증명 불충분"
서울청 지휘부 '무죄'…현장경찰 '유죄'와 대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검찰에 항소 촉구

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7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무죄를 확정받자 유가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10.29 이태원 참사(이태원 참사) 당시 부실한 대응으로 피해를 키운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권성수 부장판사)는 17일 오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에 대해 이같이 선고했다. 김 전 청장은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경찰 최고 윗선이다.

김 전 청장은 2022년 10월 29일 핼러윈 축제를 맞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도 다중 운집 안전 관리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사상자 규모를 키운 혐의로 지난 1월 기소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이 사고 전과 사고 당시, 사고 이후 모두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서울경찰청장이 다중 운집으로 인한 인파 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은 서울경찰청 정보과의 정보보고와 용산경찰서의 2022년 이태원 핼러윈데이 종합 치안 대책 등을 보고 받았지만, 대규모 인파 사고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며 "서울경찰청 차원의 별도 경비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이 감독 책임을 회피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7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또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사건 발생 이후인 밤 11시 36분쯤 전화 보고를 받고 사고를 인지한 직후에 서울경찰청 경비과장에게 경찰관 기동대 급파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김 전 청장의 대응이 사고 피해 확대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참사 당일 서울청 상황관리관 당직 근무자였던 류미진 전 서울청 인사교육과장과 정대경 전 112 상황3팀장에게도 이날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류 전 과장과 정 전 팀장은 112사건 처리 감독과 상황 보고에 미흡한 대응을 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재판부는 이들의 업무상 과실과 사고 발생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류 전 과장에 대해 "112상황실에 정착해서 즉시 보고를 받는 것과 유사한 정도의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면서도 "사고 당시 서울경찰청 112상황실 내 상황관리관 자리에는 112시스템이 설치돼 있지 않는 등 현실적으로 상황관리관으로서 먼저 사건을 파악해서 지휘·감독하기가 쉽지 않았던 상황"이라고 봤다.

정 전 팀장에 대해서는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에 사건 당일 저녁 9시 코드 제로 신고에 대해서 무전으로 용산경찰서에 알렸지만, 용산경찰서는 현장 조치 후 종결 처리해 특이사항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정치적·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평범한 시민들로, 국가가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태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라며 "그 믿음은 처참히 부서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찰로서는 다중 운집으로 인한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고 당시 이태원 일대에 질서 유지를 전담하는 소수의 인력만 있었더라도 피해가 현격히 줄었을 가능성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을 포함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권한과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좀 더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안전사고 방지 대책을 마련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국민의 일반적인 기대"라며 "사건 재판 심리 과정에서 살펴본 관련 규정이나 매뉴얼은 여전히 상당히 추상적이거나 미흡한 부분이 있고, 재난 예방과 관련된 경찰 조직 전반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안일한 인식이나 문화가 여전히 보인다"고 질타했다.

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7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무죄를 확정받자 유가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무죄 선고 직후 방청석에 있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인재가 아니냐", "국민은 누구를 믿느냐", "(이태원 참사로) 159명만 죽지 않았다. 그날 부모 형제도 다 죽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김 전 청장에 대한 무죄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고 "서울경찰청 주요 책임자 3인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전원 무죄로 선고한 판결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이번 재판에서 김 전 청장이 참사 한 달 전부터 인파 밀집으로 인한 사고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에 관해 스스로 언급하거나 수차례 보고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파 집중에 따른 사고를 사전에 예측해 대책을 마련하고 각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조치할 책임은 김 전 청장에게 부여된 것"이라며 "김 전 청장은 참사 당일 출근했었기에 이태원 인파 사고를 방지할 조치를 취하는데 장애가 될만한 사정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전 청장은 그럼에도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 현장만 챙기는 소홀한 대처, 그보다 중요한 국민 안전에 대한 직무방기에 가까운 과실로 인해 피해가 확대되게 했다"고 비판하며 검찰의 항소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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