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총선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가 승기를 잡은 것일까. 명씨는 당초 16일부터 자신이 보유 중인 2천장의 텔레그램 캡처를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이날 오전 자택에서 외출한 뒤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날 국민의힘 실세 정치인들의 움직임을 볼 때 명씨의 요구 조건이 일부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명씨에 대한 고발 방침을 취소했고, 김재원 최고위원 역시 '침묵'이라는 간접적 행위를 통해 사실상 '유감' 메시지를 내보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2022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윤 후보는 정치 신인이라서 정치판의 생리를 모르는 관계로 윤 후보 캠프에는 온갖 정치브로커와 잡인들이 들끓고 있었고, 명씨도 그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홍 시장은 "윤 후보나 김 여사께서 명씨의 허무맹랑한 소리를 당시 분별하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연유한다고 본다"며 "국민들과 당원들도 이런 윤 후보의 입장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선거브로커가 자기가 살기 위해 지껄이는 허무맹랑한 헛소리에 국민과 당원들이 현혹되지 말았으면 한다"며 "한국 정치판이 원래 그렇다.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홍 시장은 이날 이보다 앞서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더 이상 선거브로커의 거짓말에 대응하지 않겠다"며 "내가 이런 자와 같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모욕이고 창피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경선 당시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선거브로커에게 당원과 국민들이 속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고소나 고발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홍 시장은 "더 이상 날 끌어들이지 말라. 혼자 헛소리 실컷 떠들다가 감옥에나 가라"며 "도대체 검찰은 이런 자를 즉각 구속하지 않고 무엇하고 있는가"라고 덧붙였다.
홍 시장은 '여론조사 조작' 의혹과 관련된 정책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등 사안의 핵심 쟁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대책 마련에 앞장서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 사이비 여론조사 기관들 정비를 강력히 추진했지만, 야당이고 소수당이라서 성과가 없었다"며 "명태균 사기 여론 조작 사건을 계기로 민주당이 앞장서서 잘못된 여론 조작 기관들을 정비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또 "ARS 기계 몇 대 설치해놓고 청부, 샘플링 조작, 주문 생산으로 국민 여론을 오도하고 응답률 2~3%가 마치 국민 전체 여론인 양 행세하는 잘못된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극단적인 찬반파만 응답하는 ARS 여론조사는 폐지돼야 하고 응답률 15% 미만은 공표가 금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명씨의 폭로의 배경에는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과의 갈등이 있었다. 명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최고위원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며, 과거 자신과 김 여사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캡처본을 공개했다. 김 최고위원은 명씨에게 "사기 전과가 있는 허풍쟁이" 등 맹비난을 퍼부었고, 명씨는 이에 반박하기 위해 여사와의 대화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공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명씨가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방송에서 왜 근거 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항의했다"며 "그래서 제가 "당신이 근거 없는 소리를 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명태균이) 김재원 때문에 다 폭로한다고 하므로 "다 해봐라. 허위면 교도소에 가야지"라고 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명씨와의 관계를 부인하던 김 최고위원은 공개된 카톡 내용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에서도 명씨와 김 여사와의 관계를 부인하지 않은 만큼 현재 김 최고위원보다 명씨 주장에 힘이 실린 분위기다.
한편 명씨가 이날부터 윤 대통령 부부와 나눈 대화 내용 등을 추가 폭로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명씨가 사는 경남 창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명씨 입장을 듣기 위한 취재진이 몰렸다. 다만 전날까지 언론과 활발하게 소통을 이어갔던 명씨가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현장에는 '긴장감 속 고요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