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입시 공정성 논란' 진화 못한 채 "경찰이 밝혀줄 것"

연세대, 대통령 나서자 사흘만에 공식 사과
"입시 공정성 침해 사실은 미발견" 입장 고수
세부 의혹 충분한 설명 건너뛴 채 경찰 수사의뢰
재시험은 "가능성 열려있지만…여전히 고려 안 해"
응시생 혼란 지속…"관리·감독 부실 책임 물어야"
학원가에선 "충분한 설명 필요…제한적 재시험도 고려돼야"

12일 연세대학교 2025학년도 수시모집 논술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연세대학교가 2025학년도 수시모집 자연계열 논술 시험 과정에서 시험지가 일찍 배부됐다가 회수된 사고와 맞물린 문제 유출 논란과 관련해 수험생과 학부모에 사과했지만, 여전히 '재시험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입시 공정성을 훼손하는 객관적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연세대의 자체 판단 근거이지만 이와 배치되는 여러 문제 제기들에 대한 충분한 공식 설명 없이 수험생·학부모 혼란이 커진 상황에서 행정 편의주의적 입장부터 앞세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통령 나서자 사흘만에 사과…學 "재시험 여전히 고려 안해"

연세대는 시험지 조기 배부 사고 사흘 만인 지난 15일 밤 홈페이지를 통해 "2025학년도 수시모집 논술시험의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겪었을 혼란과 정신적 고통을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재발방지책을 내놨다.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논란과 관련해 교육부에 "책임자는 철저히 문책하고,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엄정 조치하라"고 지시하고 나서야 뒤늦게 사과 메시지를 내놓은 셈이다.

재발방지책에는 △시험 관리 시스템 재점검 △감독위원 실수 예방 위한 교육 진행 △고사장 자유좌석제에서 지정좌석제로 변경 △문항 오류 방지를 위한 사전 검토 단계 세분화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 검토 후 개선 등 내용이 포함됐다. 연세대는 올해 말 시험을 앞둔 편입학 전형 시험에서부터 이런 대책들을 적용할 계획이다.

연세대의 홈페이지 게시글에는 "대학에서 철저하게 사고 경위 등을 조사한 결과 이번 논술시험에서 시험 시작 전 촬영된 문제지가 유출돼 입시의 공정성을 침해한 객관적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재차 포함됐다. 이는 연세대가 줄곧 강조해왔던 주요 입장이다.

연세대 관계자는 16일 통화에서 이런 입장을 토대로 "재시험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재시험) 가능성이 열려 있기는 하지만 문제 사전 유출이라든가, 공정성 훼손 이런 건 없다고 보는 판단은 그대로 유효하다"고 밝혔다.

"공정성 훼손 없다고 본다"면서 여러 물음표에 "경찰이 밝혀줄 것"

연합뉴스

연세대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판단과 배치되는 여러 문제 제기들에 대해선 세부적인 공식 설명은 내놓지 않았다.

조기 배부 사고로 인해 시험지 회수 전 응시자들이 문제를 봤을 가능성, 이 때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시험장 사진이 온라인에 나돌았다는 점에서 학교 설명과 달리 휴대전화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가능성, 조기 배부 시험지 회수 후엔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했던 만큼 문제 풀이나 관련 학습이 이뤄졌을 가능성 등 다양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는 입시 공정성 논란이 확산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연세대는 여러 물음표들에 대한 상세 설명은 사실상 생략한 채 경찰 수사 의뢰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모양새다. 연세대는 이날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이번 논란의 진상 규명을 위한 전반적인 수사를 의뢰했다. 앞서 시험지를 찍어 올린 수험생 2명과 4건의 게시물 작성자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한 데 이은 추가 조치다.

학교 측은 이번 수사 의뢰 건에 대해 "특정 건에 대한 수사가 아닌 전반적으로 공정성 훼손이 있었는지에 대한 모든 것들을 수사를 해 달라는 취지"라며 "경찰 분들이 다 밝혀주면 신뢰성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는 '입시 공정성 훼손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학교 측의 주요 입장을 자체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한계에 부딪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학 측이 문제지를 촬영해 온라인에 올린 수험생 고발 조치엔 발 빠르게 나서면서도 시험 관리 실패에 대한 책임 조치에는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후속 조치에 대해 묻자 "(감독 위원의 징계 등 절차는) 아직까지 고려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60여명과 함께 이번 시험의 무효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응시자 A씨는 "(연세대가 공개한 사과문이) 형식적으로 느껴지고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이번 논란이 학교의 관리·감독 부실에서 비롯됐는데 어떻게 감독 위원을 처벌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유웨이 이만기 교육평가연구소장도 "감독 위원의 관리 미흡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논란이 온라인에서 학생들끼리 공유되면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감독 위원이 실수를 했다면 대학 고사본부에 바로 보고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성 논란' 진화 사실상 실패…"충분한 설명 부족"지적

12일 연세대학교 2025학년도 수시모집 논술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연세대가 입시 공정성 논란 조기 진화에 사실상 실패한 만큼,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안심시킬 만한 책임있는 설명과 대안 마련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재시험을 본다고 하면 일정 조정의 어려움이 있기에 교육부 등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논란이 된) 특정 학과에 한해서 범위를 정해 놓고 재시험을 보는 방법도 현재로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험 당일 날 문제를 파악하고 현장 조사를 해서 명확히 결론을 내려야 했다"며 "감독관 뿐만 아니라 이 사태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자들이 사고를 저질러놓고 수험생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메가스터디 남윤곤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이번 논란에 대해)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등을 상세히 밝혀야 한다"며 "(설명이 없다면) 다른 수험생들에게는 시험지를 미리 배부했다는 것이 그 교실 학생들이 혜택을 본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의 관리와 감독이 미흡했다는 점을 먼저 인정하고 이에 대한 자체 조사 내용을 충분히 밝히는 것이 최선의 조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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