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고 배구부 해체, 프로배구도 한숨…"뿌리 약해지면 안 되는데"

한국중고배구연맹 제공

"선수들이 불쌍하다."

약 두 달 전 한국 배구계에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배구 명문'으로 이름을 날렸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위치한 송산고등학교가 배구부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배구부 1개 사라지는 게 대수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비단 남자 고등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남고부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여고부, 여중부 관계자들까지 이에 대한 쓴소리를 남긴 바 있다.

장기적으로는 프로배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송산고 배구부 해체 소식에 전현직 프로 지도자들과 선수가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송산고 배구부는 지난 2009년 창단해 4년 만에 전국체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놀라운 속도로 실력을 키웠다. 2016년에는 전국체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남자 고교 배구 최강자 자리에 올랐다.

명실상부 배구 명문 송산고 출신 선수들은 프로 무대까지 뻗어 나갔다. 박경민(현대캐피탈), 홍상혁, 홍동선(이상 국군체육부대), 한국민(KB 손해보험) 등이 V-리그에서 준주전급으로 매 시즌 활약하고 있다. 상무 소속 황택의는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까지 누볐다.

지난 8월 학교 측은 내년부터 더 이상 배구부 신입생을 받지 않겠다고 학부모들에게 통보했다. 사실상 해체 선언이다. 현재 송산고 배구부에는 3학년 5명, 2학년 2명, 1학년 2명이 뛰고 있다. 올해를 끝으로 졸업하는 3학년들이 배구부를 떠나면, 남는 배구부원은 고작 4명이다.

2009년 송산고 배구부 창단식. 경기도체육회 제공

한국전력 권영민 감독은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도드람 2024-2025 V-리그 남자부 미디어데이'를 앞두고 "아쉽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권 감독은 "뿌리가 탄탄해야 한국 배구가 전체적으로 강해지는데, 송산고 해체 소식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당연히 송산고 배구부가 유지되는 게 프로에도 좋다. 타협점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프로배구에 미칠 영향은 "매우 크다"고 단언했다. 권 감독은 "고등학교팀들이 많아져야 인재가 많아지는데, 오히려 줄어들어서 안타깝다"며 "중, 고등학교 배구가 활성화돼야 한국 배구가 살아난다. 영향을 엄청나게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불쌍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삼성화재 아웃사이드 히터 김정호의 낯빛도 어두웠다. 모교인 충남 오가초등학교 배구부 역시 해체 위기에 빠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오가초는 '소멸 위기 도시'인 예산군 오가면에 위치해 있다. 전교생은 46명 뿐. 배구부 소속 선수는 6명이다.

김정호는 "제가 오가초에 다닐 때도 많아야 1~2반 정도 있었다. 학생들이 많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재작년에 모교에 방문했었는데 선수들이 6~7명 정도 밖에 없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김정호는 "선수들이 운동하는 것을 봤는데 열정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며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팀들이 없어진다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이어 "한국 배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유소년, 청소년 선수들부터 잘 다져져야 한다"고 첨언했다.

지난 8월 열린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작년까지 우리카드 지휘봉을 잡았던 신영철 전 감독 역시 배구 전체가 위기를 맞닥뜨릴 수 있다고 걱정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제2의 송산고가 나오지 않기 위해 배구인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 감독은 16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뿌리가 건강해야 열매가 열릴 것 아니냐"며 입을 열었다. 신 감독은 "인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조금 있던 팀들도 해체되면 뿌리가 약해진다"며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얼마 못 가서 한국 배구는 무너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로 감독직을 내려놓은 이후 신 감독은 중고 배구에 큰 관심을 가지고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신 감독은 "올해 쉬면서 중고배구대회를 많이 다녔다. 현장에 가보면 환경 자체가 너무 열악해서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학생들이 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어른들이 잘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새싹들이 없어지면 한국 배구는 위기에 봉착한다. 전체 배구 인프라가 위축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2의 송산고가 나오지 않게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송산고 배구부 해체가 다른 학교 배구부에도 악영향을 미쳐 힘없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 감독은 "제2의 송산고가 나오지 않게 방지책을 잘 세워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어 "왜 송산고 배구부가 이런 상황을 맞게 됐는지 분석해야 한다"며 "대한배구협회, 한국배구연맹, 중고배구연맹 등 관계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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