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카드마다 대박이다. 사자 군단이 박진만 감독이 꺼낸 2번 타자의 힘으로 디펜딩 챔피언 LG를 압도하고 있다.
삼성은 15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뱅크 KBO 리그' LG와 플레이오프(PO) 2차전에서 10 대 5로 이겼다. 지난 13일 1차전 10 대 4 승리까지 신바람 2연승을 달렸다.
정규 리그를 2위로 마친 이후 2주 동안 준비를 잘 했다. 삼성은 상무와 평가전, 자체 청백전 등을 소화하면서 PO에 대비했는데 우려했던 실전 감각 공백은 없었다. 2경기 연속 장단 14안타로 10점을 뽑았다.
특히 2번 타자가 맹위를 떨쳤다. 13일에는 좌타자 윤정빈이, 2차전에는 우타자 김헌곤이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1차전에 앞서 박 감독은 윤정빈의 2번 타자 선발 출전에 대해 "김헌곤의 방망이도 있지만 윤정빈이 출루 쪽에서 더 좋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날 LG 선발이 우완 최원태인 점도 고려가 됐다. 올해 윤정빈은 좌완 상대 타율이 2할4리(24타수 5안타)에 그쳤지만 우완에는 3할4리(125타수 38안타)에 7홈런을 기록했다.
과연 윤정빈은 박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1회말부터 우익수 쪽 2루타로 단숨에 득점권 기회를 만들더니 구자욱의 내야 안타, 디아즈의 중견수 뜬공 때 차례로 진루해 홈을 밟았다.
3회말에도 윤정빈은 김지찬에 이어 안타를 날려 무사 1, 2루 기회를 창출했다. 구자욱의 홈런 때 다시 득점했다. 6회말 몸에 맞는 볼, 8회말 안타로 4출루 경기를 완성했다. 8회말 LG 김대현의 폭투 때 홈을 밟아 3득점째를 기록했다. 테이블 세터로서 완벽한 역할을 해냈다.
경기 후 윤정빈은 경기 시작 4시간 전 라인업 통보를 받았다며 "선발 출전을 기대했지만 2번 타자일 줄은 몰랐다"고 귀띔했다. 박 감독이 '비밀 병기'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었다. 윤정빈은 "감독님의 기대에 부응해 기쁘다"면서 "정규 시즌에서도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큰 경기에서 주목을 받으니 느낌이 다르고 정말 기분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 삼성은 이토록 감이 좋은 윤정빈을 2차전 선발 명단에서 뺐다. 대신 김헌곤이 2번 타자로 나섰다. 경기 전 박 감독은 "PO를 준비하면서 계획을 그렇게 잡고 있었다"면서 "좌완 선발 투수에는 김헌곤으로 간다"고 밝혔다. 이날 LG 선발인 손주영에 대비한 계획이었다.
김헌곤은 1회말 첫 타석에서 우익수 뜬공에 그쳤지만 3회말에는 좌전 안타를 날렸다. 이후 손주영의 견제에 횡사했다. 그러나 5회말 실수를 만회했다. 바뀐 우완 투수 유영찬으로부터 벼락 같은 좌월 2점 홈런을 날렸다. 단숨에 5 대 1로 달아나는 사실상 승부를 가른 한 방이었다.
여세를 몰아 김헌곤은 6 대 1로 앞선 7회말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무사 1루에서 LG 5번째 투수 김유영의 직구를 밀어쳐 이번에는 우월 투런포를 터뜨렸다. 가을 야구 첫 홈런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연타석 아치를 그렸다. 르윈 디아즈까지 터지면서 김헌곤은 2004년 알칸트라, 안경현(두산) 이후 20년 만에 동일 팀 포스트 시즌(PS) 2명 연타석 홈런이라는 사상 2번째 기록도 달성했다.
경기 후 박 감독은 "사실 5회 김헌곤 타석에 대타 투입을 고민했다"면서 "김헌곤이 자신의 스윙을 하면서 타이밍 잡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믿고 내보냈는데 자신이 해결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헌곤은 올해 좌투수 상대 타율이 2할8푼6리로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우투수에 3할2푼2리로 더 강했다.
김헌곤도 5회 상황에 대해 "홈런을 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타격한 건 아니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참 기분 좋다"고 웃었다. 이어 "PO 3, 4차전이 열리는 서울 잠실구장에서도 똑같은 마음으로 임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LG 2번 타자 신민재도 활약이 나쁘지 않았다. 신민재는 1차전에서 5타수 2안타 1타점, 2차전에서 3타수 2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워낙 삼성의 2번 타자들이 맹활약했다.
17일 3차전에서 LG의 선발은 우완 임찬규로 내정이 됐다. 삼성의 계획이라면 좌타자 윤정빈이 2번 타자로 나설 차례다. 작두를 탄 것 같은 박 감독의 계획이 또 다시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